세 편의 영화
우연과 상상 Wheel of Fortune and Fantasy / 하마구치 류스케
영화 속 '우연'과 '상상'이 영화의 것이기도 하고, 현실의 것이기도 해서 균형잡기가 어려웠다고 해야 할까. 바로 어제 있었을 것 같은, 먼 미래에 있기를 바라게 되는 만남과 마주침의 순간이 마법 같기도 하고, 필연적인 운명 같기도 하고 그랬다. 하마구치 류스케의 영화 <아사코>에서부터 느낀 어떤 어려움은 형용할 수 없는 압도의 순간에 있는데, 그 어려움이 그의 영화에 내재된 힘이기도 하다. <아사코>에서는 아사코가 혼자 어두운 바다를 바라볼 때 그러했고, <우연과 상상>에서는 메이코가 정신없이 움직이는 도시의 사진을 찍고 그 한 면을 가만히 바라볼 때에 그랬다. 그의 마음을 알 수 없다. 그곳에 무언가가 있다.
파리의 피아니스트 : 후지코 헤밍의 시간들 Fuzjko Hemming: A Pianist of Silence & Solitude/ 코마츠 소이치로
초반 10분 정도를 어쩌면 그 이상을 잤다. 잠들었다가 일어나니 아름다운 연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의 현재, 유년기에 쓴 일기장, 살아온 궤적은 모두 놀랍도록 연결돼 있어서 그가 가진 일관된 삶의 진동이 그 아름다움을 일궈냈음을 알 수 있었다. 후지코는 많은 것이 불가능한 가운데, 알 수 없는 흐름이 그를 막아서는 가운데 자기대로 사는 것을 멈추지 않은 것 같았다. 그가 사랑한 피아노와 집, 그리고 반려동물들과 친구들. 모든 것이 그를 말해준다. 그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시간을 보냈고 무얼 바라는지. 후지코가 단연코 자신있는 곡이라고 한 '라 캄파넬라' 연주는 전혀 새로운 곡이라 느껴질 정도로 묵직하다. 묵직한 힘이 한 음, 한 음에 실려 있었다. 그의 시간이 오롯이 실려 왔다.
성령의 이름으로 The Sacred Spirit / 체마 가르시아 이바라
전주국제영화제 온라인 상영을 통해 본 영화다. 우연히 마우스 클릭이 돼서 들어간 제목이었는데, 스틸컷부터가 심상치 않아 결제 버튼을 눌렀다. 긴가민가하는 마음으로 영화를 보는데 한 장면, 한 장면이 버릴 데 없이 딱 맞아떨어지는 느낌이 났다. 마지막으로 가서 사건의 실체를 풀어내는 방식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만큼 충실히 자기만의 것을 쌓아 올렸다는 점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영화는 설명이 필요없는 방식으로 꾸준하게 웃겼고, 어떤 장면에서는 초조하고 답답해 힘이 들었고, 다 보고 나서는 생각에 잠기게 되었다. 좋은 영화라는 증거였다. 감독의 다음 영화가 기다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