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가 잊혀 간다. 소리는 원래 거기에 있었으나, 사라지고 있었다. 사라짐이 익숙한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다. 물이 바닥을 조금씩 점령해갈 때 무언가 쓸려 나갔다. 창밖엔 이름을 알 수 없는 거대한 수초가 물을 기다리고 섰다.
돌이 중심을 잃는다. 돌은 원래 물 아래에 있었다. 붉은색 이끼가 그것을 감싸고, 물결이 세질 때마다 돌은 그 흐름과 함께 물밖으로 나아갈 마음의 준비를 한다. 돌이 이야기하는 것은 해방이나 이동이 아니라 보는 것. 시야를 갖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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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가 많이 오는 오후에 집 밖을 나서면 금방 운동화가 젖는다. 열심히 피해 걷는, 움푹 파인 물웅덩이가 검다. 검은 웅덩이 아래 연한 색의 돌이 비와 만나 있다. 그 돌 다음엔 자갈 박힌 돌길이 나온다.
나는 그 길을 걸어, 집 주변을 빙 둘러 걸어 머리를 자르러 갔다. 무거운 검은 머리를 덜어내러 갔다. 미용실에서 만나는 밝은 빛을 상상하며 어둑어둑한 빗길을 걸었다. 2주 전에 머리를 잘랐는데도 여전히 머리카락이 무거운 것은 여름 때문이다.
미용사는 나에게 왜 머리를 또 자르는지 물었다. 머리 말리기가 귀찮아서라고 나는 말했다. 정말 그랬다. 긴 머리카락은 습한 날씨에 잘 마르지 않는다. 더워서 머리를 묶고 싶어도 머리가 다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할 때가 있다. 그리고 머리를 자르면 머리를 감는 것도 간단해질 것이었고, 또…
머리를 자르고 운동을 갔다. 머리끈에 간신히 묶인 머리카락을 보며 잠시 후회했다. 그렇지만 간단한 후회. 그 정돈 충동을 실행에 옮기기까지 계속해서 그 충동이 머릿속에 떠오르는 문제에 비하면 아무렇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