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커뮤니티와 마약이 만나는 지점에 대한 정직한 연구 -《켐섹스》
어떤 것(일)의 후기를 쓰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그것(그 일)을 잘 소개하고 싶은 마음에 비례하는 것 같다. 〈“행복이 들어갑니다?” - 쾌락과 돌봄을 다시 발명하기〉(나영정, 《문학동네》 2023년 겨울호)를 처음 읽은 건 2월 마지막 토요일 오후, 《켐섹스 - 켐섹스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한국 상황에 대한 보고서》(연구모임 POP, 미발행)는 3월 첫 금요일에서 토요일로 넘어가는 새벽이었다. 계속 후기를 쓰고 싶었는데 미루다 잊었다.
그러다 지난 일요일 스피치 수업에서 ‘내가 가장 아끼는 물건’을 주제로 3분 스피치를 준비해서 발표하라는 5분 즉석 미션을 받았는데 갑자기 《켐섹스》를 소개하고 싶어졌다. 내용을 소개하고 앞으로 이런 책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그러고 나니 이 글을 쓰고 싶어졌다.
이름도 생소한 이 보고서를 알게 된 것은 먼저 〈“행복이 들어갑니다?”〉를 읽으면서였다. 주제도 제대로 모르는 무방비 상태에서 읽었다가 충격의 연속이었는데, 왜 충격이었는지 말하기에 앞서 설명해야 할 것이 많다.
먼저 켐섹스란, 남성과 성관계를 가지는 남성이 섹스 과정에서 필로폰 등의 약물을 사용하는 것을 가리킨다. 퀴어 운동에서는 켐섹스의 유행을 가벼운 만남(번개, 캐주얼 섹스)의 보편화, 약물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데이트 앱의 활성화 등의 맥락에 관련된, 게이들이 겪는 외로움, 타인과 연결되고자 하는 욕구, HIV에 대한 두려움, 성소수자를 배제하고 차별하는 문화, 성적 낙인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문제라고 해석하고 있다.
이성애 중심 사회에서, (다른 어떤 에로스적 욕구를 매개로 모이는 경우에도 그렇듯)외모와 HIV 감염 등에 따른 차별이 분명히 존재하고 때로 두드러지는 게이 커뮤니티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친밀한 관계를 만드는 데 실패하곤 한다. 데이팅 앱은 쉽게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해 주는 한편 1:1 관계를 깊게 지속하기보다는 다른 상대를 찾는 것이 낫다는 암묵적인 룰을 형성했다. 그런 상황에서 마약은 “자신의 외모에 자신감을 주고 타인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해 주”는 매개체가 된다.
그러나 모두가 알듯이 마약은 건강에 큰 부담을 주고, 더욱이 마약을 사용하는 것이 범죄 행위이기에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준다. 《켐섹스》에 담긴 마약 사용자들의 이야기는 마약 그 자체보다도 게이, 그중에서도 HIV 감염인과 마약을 복용하는 사람을 대하는 사회문화, 국가와 공권력의 방식이 어떻게 그들의 일상을 망가뜨렸는가를 드러낸다. 〈“행복이 들어갑니다?”〉는 그 경험을 어떻게 읽을 것인가 하는 해제에 가까운데, 꼭함께 읽혔으면 한다. 그 글에 대해 쓰자면 또 글이 두 배로 길어질 것이라서 이 글에서는 《켐섹스》만 다룬다.
이 책의 화자인 마약 사용자들의 경험에서 국가는 잔혹한 처벌자로만 등장한다. 경찰은 실적을 올리기 위해 데이팅 앱을 이용해 함정 수사를 하는데, 그 과정에서 부당한 처우가 빈발한다. 받을 수 있는 처벌의 수위를 부풀리며 협박하고, 업무 시간을 가리지 않고 불시에 피의자를 모텔로 불러내 다른 사용자를 잡아 내기 위한 미끼로 삼는다. 함정 수사는 불법이기에 거짓 조서를 쓸 것을 강요한다. 피의자의 안전이나 치유는 안중에 없는 처사다. 최근 금연구역(몰랐다)에서 담배를 피우다 적발됐을 때 나에게 금연 상담을 이수하면 벌금 감면 혜택을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해 주던 공무원의 관용적인 태도를 떠올린다. 물론 담배와 필로폰은 다르다. 하지만 더 위험하다는 것이 더 가혹하게, 그 사람의 일상을 망가뜨리면서 적발되고 처벌되어야 할 이유가 될 수는 없다. 왜 더 취약한 사람에게 더 섬세하고 느린 지원을 할 수 없는가?
한 화자는 자신의 성 정체성을 숨기며 살아온 과정을 숟가락으로 죽을 때까지 맞는 느낌에 비유한다. 게이임을 숨기는 거짓말, HIV 감염 사실을 숨기는 거짓말, 약물 중독 사실을 숨기는 거짓말…… 누군가가 자신의 정체성과 위기, 취약함을 드러내 보이지 못하게 하는 촘촘하고 단단한 낙인과 처벌과 배제가 어떤 사람들을 천천히 납작하게 눌러 죽이고 있다. “약물의 이슈는 없던 문제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니다. 그 사람이 갖고 있는 문제를 확대해서 보여주거나 터트리는 역할을 할 뿐이다”라는 한 화자의 말을 곱씹게 된다.
요즘 ‘가장자리’라는 낱말에 대해서 자주 생각한다. 내가 그랬듯, 이 글을 읽는 독자들도 ‘캐주얼 섹스를 일삼으며 마약에 중독된 게이 남성’이라는 극소수의 문제에 왜 그렇게 관심을 두느냐고 의문을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그렇게 여겨지기 때문에 뒤로 남겨진 사람들이 너무 많다. 나는 주로 학교와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된다. 성별이분법적 공교육 체제에서 자신의 젠더로 입학할 수 없어 반강제로 자퇴하는 트랜스젠더 청소년. 누구를 위해서인지 모를, 농학교에서조차 구화로 이뤄지는 수업 속에서 지식을 얻지 못하는 농인 학생. 가족으로부터 돌봄 받지 못함이 비위생과 정서적 불안정 등으로 외화 돼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청소년. 임신·출산 경험이 학업 중단으로 이어지는 청소년. 정체성 형성은 물론 모든 권리를 유예당하는 미등록 (이주) 아동…….
얼마 전 다른 주제의 세미나에서, 맥락은 조금 달랐지만, “그 소수의 사람들은 얼마나 소외감을 느낄까요”라고 말했다가 “그들이 실은 소수가 아니지요”라는 일갈을 들었다. 그렇다. 그들은 소수가 아닐뿐더러, 우리가 정말 무언가 바꾸고자 한다면 그 자리에 나란히 서야 할 변혁의 최전선에 있다. 가장자리는 변방이지만, 연결되면 중앙을 포위할 수 있는 좌표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 운동이 아직 권력에 위협이 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그런 사람들과 아직 충분히 함께하지 못함에서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것이 내가 이 글과 책을 읽으면서 얻은 충격이다. 아마 더 많은 깨짐이 내 앞에 예비되어 있으리라 생각하게 된다.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과 함께 풍비박산을 겪을 수 있기를.
etc.
나중에 생각해 보니 일요일에 한 스피치는 청자들에게는 여러모로 도전적일 수 있는 내용이었는데, - 선생님은 내 흡연 커밍아웃에 1차, 퀴어 이야기를 꺼냄에 2차, 약물 이야기에 3차로 트리플 충격을 받으신 것 같았다 - 다들 필요한 이야기라고 받아들여 주어서 감사했다. 나는 내 신념이 환대받을 때 가장 힘이 나는 것 같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도 이 글을 도전적으로 느끼는 사람이 분명 있을 거라 생각한다. 그 불편함이 당신에게 가볍지 않았으면, 그래서 언젠가 나에게 이 주제에 관해 말 걸어 줄 수 있기를 바란다.
〈행복이 들어갑니다?〉를 정독도서관에서 읽으면서 왠지 펑펑 울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정독도서관에 있는 《문학동네》 2023년 겨울호는 내 눈물에 젖어서 몇 페이지 귀퉁이가 울고 있다. 요즘 그 공간이 애틋해진 이유 중 하나다.(혹여 잘 알려지지 않았을 수 있다 싶어서 덧붙이면, 많은 도서관 간행물실에서 거치대 안에 과월호를 쌓아 둔답니다. 많이들 읽어 주시란 이야기!)
《켐섹스》PDF 파일은 여기서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