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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Apr 11. 2023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은 무엇인가?

스피치 수업 숙제 (1)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은 무엇인가?     

이 질문 앞에서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된 것은, 나는 어떤 것에 가장 고통스러워하고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가였다. 내가 가장 고통스러워하는 것은 수치심이다. 그리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부끄러움을 모르게 되는 것이다. 수치심은 존재(being)에 관한 것, 부끄러움은 행동(doing)에 관한 것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나는 자주 부끄러움을 수치심으로 만들고, 그러지 않기 위해서 글을 쓰거나 상담을 받곤 했다. 하지만 수치심을 느끼는 것보다 더 두려운 것은 부끄러움에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무엇이 부끄러운지 모르게 되는 것이다.   

  

‘가난’을 곧장 ‘무능’과 ‘게으름’으로 연결하며 수치스럽게 만드는 사회에서 가난한 부모에게서 태어났다. 부모는 나에게 자신들의 ‘수치심’을 투영하고, ‘자격지심’(엄마는 겨우 초등학생이었던 나에게 자격지심을 느꼈었다고 최근에 고백했다)을 느끼고, “왜 부모를 무시하느냐”며 때렸다. 나는 결코 그들을 부끄러워한 적도 무시한 적도 없다. 나는 우리 부모처럼 힘든 일을 하는 사람들이 가장 인정받지 못하고 가난한 사회에서 부유하게 살면서도 부끄러움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싫었다. 아빠에게 당신은 지식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인데 안타깝다고 위로하면서 서울 말투로 교양 있게 떠드는 ‘잘사는’ 친척이 싫었다. 자기 차에 누굴 태웠다 하면 남이 듣건 말건 끊임없이 떠드는 ‘지식인’이 싫었다. 절대 저렇게는 나이들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이렇게 쓰고 문득 어디선가 투머치토커였던 내가 떠올라서 부끄러워졌다. 위험 신호다. 삐뽀삐뽀 입방정 그만... 정신차려...! 너도 이제 재수없는 지식 노동자라구...)     


그래서 내가 살고 싶은 이상적인 삶의 모습은 ‘어떤 일을 하며 살 것인가’보다는 ‘어떻게 떳떳하게 살 것인가’에 가까운 것 같다. 어떻게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고 환대할 것인가, 잘 비판받고 반성할 것인가, 돌보고 돌봄받을 것인가… 하는 것들. 지금까지 겪어 본 인권운동이라는 출판이라는 일은 계속 무언가를 배울 수 있고 성찰할 수 있고 가치지향적인 일이어서 즐겁다. 하지만 그렇지 못한 일을 하더라도 그 안에서 내가 떳떳할 수 있다면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가출했을 때 한동안 여러 식당을 전전하며 일했었는데 꽤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이었다.(고참에게 갈굼 당하고 동료와 서로 탓하게 되는 건 힘들었지만 그속에서만 찾을 수 있는 동지애가 있다)      


사실 지금 출판과 사회운동의 경계에 걸쳐 일하면서 꽤나 호사로운 관계 자본을 누리고 있는 사람으로서 약간 떳떳하지 못한 면이 있다고 느낀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이타적이고 성찰적이고 사려깊고 똑똑한 사람들에 둘러싸여 있는 기분. 그래서 약간 현실 감각을 잊어버린 것 같은 느낌. 그 속에서 행복한 순간이 많지만 왠지 김초엽의 소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서처럼 누군가와 비바람을 함께 맞고 싶을 때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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