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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경 May 11. 2023

게을러도 된다, 안 된다, 된다, 안 된다

《일할 자격》후기



《일할 자격》, 제목을 자꾸 ‘일할 권리’라고 바꾸어 부르고 있다.   

   

책 속에서 저자 희정은 관찰자에서 시작해 책 중반에는 자신을 인터뷰이들 중 하나로 위치시킨다. 초반에는 “내 동생이었다면 어깨를 붙잡고” 퇴사를 말렸을 거라며, 성실하지 않은 청년들을 이해할 수 없었음을 먼저 고백한다. 그러다 이들의 노동 거부나 태업이 깊숙이 내면화된 정상성 추구와 자기 계발과 공존하는 어떤 ‘분열’이라는 점을 포착하고 그 안으로 파고든다.     


그가 본격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부분은 3장 ‘약봉지를 흔들며 걸어간 곳, 직장 – 정신질환을 겪는 여성들의 직장생활’이다. 토론회 도중 발표문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앞이 흐려졌던 기억으로 소위 ‘운동판’에서조차 상태가 안 좋다고 쉬어 버리면 “‘일할 자격’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에 무리해서 일해 왔음을 털어놓는다. 성폭력 폭로 보도 이전과 이후, 기사의 신뢰성을 담보하고 자기 자리를 지키기 위해 공격 속에서도 끄떡없이 성실해야 했던 기자의 이야기는, 그러지 못해서 자리를 잃어버렸을 얼굴 없는 사람들을 떠올리게 한다. 그는 그런 보도를 하기 위해서 성실했던 거라 말한다. 존경스럽지만 한편으로는 위태로워 보인다. 보도 이후 약물 치료를 받고 있다는 그는 언제까지 끄떡없을 수 있을까.     


한편 나도 누군가에게는 위태로워 보이겠지 하는 생각을 한다. 같이 사는 친구는 ‘너 요즘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아’라고 했다. 같이 집을 치우기로 하고서 비척비척 화장실 청소를 겨우 하고 점심을 먹고 다시 잠이 들어 버린 날 그렇게 확신했을 것이다. 해야 함과 의미 있음과 하고 싶음의 경계가 뚜렷하지 않은 일들로 채워진 스케줄을 소화하며 심장이 너무 빨리 뛴다고 느낄 때가 있다. 이 두근거림은 설렘과 불안 사이 어디쯤에서 오는 것인지 알기 어렵다. 긴장의 끈을 놓는 순간 한없이 게을러지고 후회하기를 반복한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저자에게 선물을 받았고 채효정 샘이 좋은 책이라고 오늘의 교육에도 소개하자고 했고 책 모임에 참여하고 편집자님에게 추천평을 써 달라는 부탁을 받은 일련의 사건들로 인해 의무와 마감이 생겼기에 해낼 수 있었던 일이기도 하다. 그런데 그걸 해내기 위해서 나는 아직 사무실에 있고 슬슬 눈이 감긴다. 집에 가면 늘어져서 해낼 수 없을 거라 생각했기 때문에 그랬다. 방에 가면 책상과 침대맡에 읽어야지 하는 책들이 잔뜩 쌓여 있다. 며칠 내로 열람 기간이 끝나는 인터넷 강의도 두 개가 있다. 물리적으로 다 해낼 수 없는 일인 것을 알고 있다.     


김지하 편집자는 이 책에서 말하는 ‘게으르고 의지 약한’ 노동자가 곧 자기라며 작업을 맡겨달라고 저자를 설득했는데, 이 책을 잘 만들고 싶은 마음이 커지다 보니 워커홀릭이 되었다고 했다. 며칠 전의 책 모임도, 노동절에서 너무 멀지 않은 시기에 책을 홍보하기 위해 다소 무리해서 준비했다고 했다.      


일은 소중하다. 다른 어떤 것에서 충족감을 누리기 어려운 환경일수록 더 의지하게 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리고 스스로 ‘일할 자격’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에 더 잘 해내려고 하게 된다. 하지만 그러면서 동시에 자신을 돌보기는 더 어렵다. 말과 생활이 자꾸 따로 논다. 책 모임에서는 ‘자격을 묻는 구조에 문제의식을 느끼면서도 내가 함께 일할 다른 누군가를 선택할 기회가 생기면 자격 있는 사람을 찾게 되는 모순’에 대해서도 이야기 나눴다. 답이 없더라도 모순을 깨닫는 것은 도움이 된다.      


우리에게는 일할 권리가 필요하다. 이런 모순들에 대해서, 때로 게으름에 대해서도 털어놓을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다.


- 오늘 점심을 먹기 전에 이 책의 네 번째 챕터 ‘늙은 사람을 돌보는 늙은 사람의 노동’을 읽고 속절없이 밥 먹는 내내 눈물을 주룩주룩 흘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털어놓고 싶다. 내용은 전혀 신파스럽지 않았는데, 나에게 나이듦과 질병과 치매와 죽음이라는 일련의 문제가, 우리가 의지하게 되는 어떤 사람들과 함께 어쩔 수 없이 하루씩 그런 미래로 나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나에게 때로 아주 심각하게 빠져들게 되는 어떤 늪이라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


- 후기는 의무감으로 쓴 것은 아니다. 읽다 보니 책이 좋아지고 쓰고 싶은 말이 생겼다. 저자 없이 편집자와 함께 여섯 명이서 진행한 책모임도 정말 좋았다. 세 시간 동안 솔직한 이야기를 나누고 모두와 SNS 주소 또는 연락처를 교환했다. 그 힘으로 읽고 쓸 수 있었기도 했다. 좋은 자리를 만들어 주신 편집자님께 감사드리며... 이제 정말 300자평을 정리하러 간다.


희정(2023),《일할 자격》, 갈라파고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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