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프라이드 파티에 다녀와서
오늘은 정말... 여러모로 역사에 남길 그런 날. 묵직한 행사일수록 후기를 묵히게 되는데 다른 사람들에게는 어떤 기억이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오늘 발언들 듣고 싶었지만 듣지 못했을 사람들을 위해서 메모를 올린다.
(1) ‘약 하는’ 마음, 살고 싶은 마음, 사과받고 싶은 마음
오늘 한 발언자는 약물 사용과 관련해서 “살고 싶어서 한다”, “불법적인 행동이라고만 보지 말고 살고 싶은 마음을 봐 주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약을 끊는다고 해도 약을 하게 만든 조건들은 그대로 남는다고도 했다. 쉽게 ‘약은 하지 말아야지/끊어야지’라고 생각할 때 그것이 얼마나 오만하고 편리한지 생각하게 된다. 어떤 사람들을 배제하고 낙인찍어 온 사회와 커뮤니티가 사과했으면 한다고도 했다. 사과했으면 한다는 말은, 용서할 수 있다는 말로도 들려서 마음이 먹먹해졌다. 용서하는 마음은, 용서하고 싶어서 사과를 기다린다고 말하는 마음은 어떤 것일까 오래 생각하게 될 것 같다.
(2) “우리는 마음껏 부끄러워할 권리가 있다!”
오늘 발언한 사람들은 ‘부끄럽게 여겨지는 정체성’이라는 공통의 연결점을 가지고 있었다. 소수자라서, 그런데 또 활동가라서 늘 당당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다른 누구도 아닌 동료들 사이에서 서로 느껴 왔음을 꺼내 놓고 햇볕에 말리는 시간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수치스러워야 한다고 생각되곤 하는 것들을 진실을 드러내는 중요한 이야기로 다시 들을 수 있었다. 그중 하나는 성노동을 했던 어머니와 그 일터에 대한 기억에 대한 발언이었다. 때로는 돌봄에 실패하기도 했지만, 잊을 수 없는 ‘참 좋은’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했던, 그런 당연하지만 이야기되도록 허락되지 않았던 이야기들을 들을 수 있어서 소중했다. 우리의 수치심을, 우리끼리는 수치스러워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같았다.
(3) 아직 너무 모른다 - 연대의 어려움
오늘 가장 절절히 느낀 감정은 ‘모른다’는 것이었다. 어떤 말은 내가 알아먹지 못한다는 것을 깨달은 데서 일단은 첫발을 내딛은 것 같았다. 농인의 관점에서 한글로 쓰인 현수막이 왜 ‘노 프라이드’인지, 외국인 보호소 ‘폐지’와 ‘폐쇄’가 무슨 차이인지, ‘탈분단’은 통일과 어떻게 다른지……. 답답함에서 그치지 않고 계속 궁금해하는 것이 연대의 시작일 것이다. 집에 와서 페이스북을 켜니 노출된 최현숙 님 인터뷰 영상이 연결되어 들려서 약간 연속 발언 보는 느낌이었다. “알고 싶어하고 이해하고 싶어하는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노인들의 ‘노 프라이드’ 이야기도 듣고 싶어졌다. 또 내가 모르는 ‘노 프라이드’의 주체들이 얼마나 많을까.
나영 님은 <선언 - 나는 나의 차이로부터 말한다>를 낭독하며 ‘퀴어는 동사가 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내 소수성을, 정체성을 정의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누군가는 ‘그런 취급 받아도 되는 사람’으로 여겨지고 있지 않은지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 누구도 뒤에 남겨 두지 않는다는 선언을 지키기 위해서, 끊임없이 ‘나’를 고치고 새롭게 하는 것. 퀴어로 산다는 것은, 활동가로 산다는 것은, 우리의 자긍심을 고쳐 쓴다면 그런 것이라고 정리할 수 있을까.
읽고 있는 책 <우리는 당신들이 불태우지 못한 마녀의 후손들이다> 중에 이런 말이 나온다. “지구 곳곳에서 역사적으로 여성은, 기억을 엮어 짜는 사람들로 여겨져 왔다. 즉 과거의 목소리와 공동체의 역사에 숨을 불어넣고 다음 세대에 전승하는 사람, 그럼으로써 집단 정체성을 만들어내고 서로가 단단히 연결되어 있다는 심원한 감각을 창출해 내는 사람으로 여겨져 왔다” 오늘 이 장을 만들고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들 모두 이런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여성’, ‘페미니즘’이라는 개념도 마음 속에서 입체적으로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오늘 파티에는 2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였다. 마지막에 춤을 춘 것과 실내에서 진행했다는 것이 매우 큰 차이점이지만 우리의 마음가짐은 아마 파티라기보다는 집회같았고, 그래서인지 더 퀴어퍼레이드 대오에서 떨어져 여기에 있는 것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하게 되었다. 보기에 따라서는 왜 이런 거센 백래시의 물결 속에서 대오를 분리하는지 안타깝게 여길 수 있다는 것을 의식하고 있다. 입장문에 이미 필요한 이야기들이 담겨 있지만, 참여자 중 한 사람으로서 나는 왜 그랬는지 내 나름의 이유를 정리해 본다면…….
퀴퍼에 편한 마음으로 참여하기 어려웠던 이유 중 하나는, 애프터 파티 청소년 출입금지에서 비롯된 유서 깊은 갈등 때문이었다. 조직위 측에서 직면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이해하는 한편, 배제감을 느꼈다는 청소년들의 이야기도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한 차례 십대섹슈얼리티인권모임의 주재로 청소년 애프터파티가 열렸던 적이 있지만 연대의 결실이라고만 매끄럽게 정리할 수 없는 진통이 있었다. 그 갈등 속에서 느낀 것은 뭘 모르는, 당위만 앞세우는, 말이 통하지 않는 상대라고 어떤 활동가나 조직을 낙인찍는 일이 운동 안에서도 벌어질 수 있다는 데서 오는 불안감이었다. 그리고 지금와서는 나도 끊임없이 스스로 갱신하고 ‘재조직화’하지 않으면 (이미 잘못해 왔지만) 더 큰 잘못을 반복할 거라고 직감한다.
오늘 이 자리는 나에게, 어떤 이를 뒤에 남겨 두지 않도록 노력하자고, 내 삶이 내 조직이 매순간 그럴 수 없음을 인정하면서도 어디론가 조금씩 나아가자고 다짐하는 자리였다. 그런 사람들과 서로 함께라는 것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그래서 오늘 나에게 너무 필요했던, 앞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했으면 하는 자리였다. 퀴어이고 좌파이거나 둘 중에 하나인 우리가 하나의 대오가 되어야 한다면 나는... 이 쪽으로 합치는 게 맞다고 본다.(라고 말하고 속으로 사방팔방 눈치를 본다) 더 많은 자원을 이용해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전에 우리가 뭘 지향해야 하는지 선명하게 알고 행동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