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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비아부 May 23. 2020

<비행일기> 방글이네

Dhaka, Bangladesh

방글라데시 다카 비행 이야기


아빠: 딸! 오늘은 어디야?
나: 나 방글라데시 왔어
아빠: 또 방글이네 갔냐?


다카 시내로 구경간 날 거리의 모습


비행한 지 고작 2년 조금 넘었는데, 방글라데시 비행을 간 횟수는 10번은 족히 넘는 것 같다.

다카비행은 마음보다는 몸이 힘든 비행이다.

정신적인 스트레스는 전혀 없지만 일이 많아서 몸이 고단한 비행.. 

돌이켜서 다카 비행을 생각해보면 그냥 마음이 따뜻해진다.  

몸이 힘들지만 힘든 만큼 마음은 채워진달까


보통 이 비행의 승객들은 대부분 아니 거의 다 중동에서 일하고 있는 노동자분들이다.

그들에게 이 비행은 가족을 만나러 고국으로 돌아가는 기쁜 귀향길 혹은 다시 일을 하러 중동으로 돌아가는 무거운 발걸음이다.

초콜릿 꾸러미, 오렌지 탕(Tang/물에 타 먹는 가루 주스), 인형 장난감 등등. 

비행기에 탑승하는 그들의 손에는 선물꾸러미로 가득하고,

가족들을 보러 가는 설레임과 기대로 가득 찬 그들의 표정을 보고 대리 만족하며

같은 외국인 노동자인 그들에게 왠지 모를 동지애를 느낀다.




사실 방글라데시 다카로 비행을 가기 전 많은 얘기를 들었었다.

"너 아직 다카 안 가봤지? 그 비행 최고야 넌 꼭 해봐야 해" 

"언니 다카 비행은 정말 자원봉사하고 오는 느낌이에요" 

"다카 비행 가기 전에는 꼭 밥 많이 먹고 잠 많이 자!"

세세하게 설명하기 힘들지만 여러 의미로 다이내믹하다는 다카 비행

그래서 그런지 어떨지 궁금해서 한번 해보고 싶은 비행이기도 했다.

스케줄팀이 내 맘을 읽었는지 내 첫 레이오버(현지 나라에 도착해서 체류하는 비행)는 방글라데시 다카를 받았다.

정말 amazing 했다.

1. 난 그들이 가방에 바퀴벌레를 데리고 다니는 걸 보았다.

(FYI 걸어 다니는 꽃게를 본 크루도 있다. 그 꽃게는 어디서, 어떻게, 왜 온 걸까?)

2. 그들의 몸속에는 연가시가 있다.

(비행기에 제공되는 물을 다 쓰고 없어서 뜨거운 물을 식혀서 제공한 적도 있다. 다카 비행은 대부분 물이 동난다.)

3. 변기가 있는데 왜 뚜껑에 큰 일을 보았을까요..?

(더한 것도 있는데........ 여기까지)

4. 숟가락 사용법을 잘 몰라 손으로 기내식을 먹는다.

(그래도 숟가락 비닐을 뜯어서 꺼내드리면 옆 승객, 뒷 승객에게 그 사용법을 공유하기 때문에 처음 몇 번만 도와드리면 된다.)




승객은 내 또래에서 아빠와 비슷한 연배이신 분들까지 20-50대 남성이 대부분이다. 대략 승객 300명 기준으로 치면 280명 이상이 남자이다.

그분들을 보고 있으면 드라마 응답하라 시리즈나 영화 택시운전사에서 볼법한 7080년대 우리나라 회사원 아저씨들을 보는 것 같아 귀여워서 피식 웃음이 나온다.

사실 처음에 그분들을 보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비행기에선 트레이닝복 입고 쉬면서 가야지 왜 불편하게 차려입고 왔지?'

'이 셔츠와 바지 조합은 뭐지' '넥타이가 너무 촌스럽잖아!'

우리나라 옛날 복고 스타일을 연상케 하는 잔뜩 꾸미고 온 아저씨들을 보고 귀여워서 웃으면 영문도 모른 채 아저씨도 같이 빙그레 웃어주는 그런 비행. 그래서 계속 웃게 되는 비행이랄까

단지 일을 하며 그들을 만나봤지만 내가 만났던 방글라데시 사람들의 눈은 유달리 초롱초롱하다.

초롱초롱한 눈으로 나를 보고 같이 웃어주면

그 마음이 너무 순수해서 내 마음도 같이 순수해진다.


파키스탄 국적의 크루가 그려준 정체모를 작품


방글라데시 국적의 크루와 대화를 하며 알게 되었다.

그들에게 비행은 우리나라에서처럼 마음먹으면 쉽게 이용할 수 있는 단순한 여행이 아닌,

인생에 몇 번 있을까 말까 한 아니 어쩌면 평생 해보지 못할 대단한 경험이라는 것을.


그 사람들에게는 이 비행은 쉽게 경험하는 것이 아니기에 중요한 일이고,

멋있는 ‘아빠', '아들', '남편'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서툴지만 멋스럽게 손질한 머리와 촌스럽지만 반듯한 양복을 입고,

공항에서 그들을 기다리는 가족들의 품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이라는 것을.


그런 얘기를 들은 이후, 그럴듯하게 차려입은 아저씨 승객들을 볼 때마다 괜스레 마음이 뭉클해졌다.

나는 유독 다카 비행을 하면서 내 앞자리에 앉은 승객들과 대화를 많이 했던 것 같다.

처음엔 그들이 나에게 많이 물어봤었고, 지금은 내가 먼저 이것저것 물어본다.

얼마 만에 돌아가는 건지, 얼마나 자주 가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

운전기사 아저씨, 공장에서 일하는 아저씨, 엔지니어, 비즈니스맨 등등

그들의 영어가 서툴기에 간단한 대화만 한다.

사실.. 잘 알아듣지 못하겠다.

내가 물어볼 때에도 초롱초롱한 눈으로 그저 웃는 걸 보니 아마 그들도 내 말을 알아듣지 못하는 것 같다.




어느 날 문득,

나는 점프싯(승무원이 이착륙 시 앉는 의자)에 앉아 다카 공항으로의 착륙을 기다리며 할아버지 생각을 했다.

우리 외할아버지는 우리 엄마가 아주 어렸을 때, 독일에서 광부로 일하셨다.

외할머니는 외할아버지가 1년에 한 번 올까 말까 했었다고, 비행기표가 비싸서 거의 오지 못했다고 하셨었다.

물론 100% 같지는 않겠지만 그들을 대할때, 종종 외할아버지 생각이 난다.

외할아버지는 그때 비행기에서 어떠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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