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고 남기기
토드 로즈의 <다크호스>를 읽고 글을 쓰다 내가 쓴 글에 실망하고
몇 주간 브런치에 얼씬도 안 했다.
내가 못 쓴 것인데, 브런치 꼴이 보기 싫은 이유는..!
<다크호스>를 읽고 지식 습득에 대한 쾌감이랄까,
생각의 확장을 경험하고, 책을 읽기 잘했음을 또 한 번 경험했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로서,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교사로서,
필요한 내용을 알게 해 준 책이었다.
그러다 토드 로즈가 쓴 <평균의 종말>까지 책의 인연이 이어졌다.
<평균의 종말>은 이미 유명한 책이었는데
독서에 있어서 내 맘대로, 토드 로즈의 말을 빌리자면 들쭉날쭉한 독서의 길을
가고 있는 나에게는 생소했다.
<평균의 종말> 또한 <다크호스>와 맥을 같이 한다.
순차적으로 읽자면 <평균의 종말>을 먼저 읽고, 그다음 <다크호스>를 읽는 것이
무난한 것 같다.
서평으로 기록하자고 마음먹으면
또 브런치에서 도망갈 것 같아 가볍게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만
남기기로 마음먹었다.^^
나의 오래된 신념은 '중간만큼은 따라가야 한다'이다.
뛰어나면 좋겠지만 뛰어날 수 없다면 중간은 가야 좋은 것이다.
언제부터 자리 잡은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학교에서 배우는 모든 과목이 나에게 잘 맞든 맞지 않든
무조건 평균의 점수는 맞아야 한다.
반 평균도 따라가지 못하면 그건 진짜 공부 못하는 것이다.
그 과목에 대한 흥미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반 평균 이상.
남들보다 잘하면 더욱 좋고!
이런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던 나는
얼마 전 아이의 담임 선생님께서 상담 전화가 왔을 때
이런 질문을 했다.
"어머님 아이의 학교 생활이 궁금하신 것 있으신가요?"
"저희 아이가 반에서 어느 수준인가요? 잘 따라가는가요?"
그 당시에 나는 이 질문을 하고도 아무렇지 않았다.
우리 아이가 반에서 중간 이상은 간다, 더 나아가 아주 뛰어나다 라는
대답을 듣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어리석은 질문을 하다니,
이제껏 읽어왔던 책은 모두 무용지물이 되었다.
참, 삶과 앎이 일치하지 않는 길을 걸어가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그 질문이 얼마나 모양 빠지는 질문이었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지금 다시 질문을 하라고 한다면
"저희 아이는 어떤 부분에 관심이나 흥미를 보이나요? "
라고 질문했어야 했다.
아이가 월등하다는 말을 듣고 싶었거나
아이가 잘 따라가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싶었다.
평균보다 훨씬 앞선 수준이다라는 말을 귀에 담아두고 싶었다.
나의 생각들이 평균이라는 허상에 지배되어 온 결과이다.
남들과 똑같되, 더 뛰어나야 한다는 신념에 사로잡혀 있는 엄마였다.
이런 허상, 허울을 벗겨내라고 말하는 책이 <평균의 종말>이다.
작가가 말하고 있는 모든 것이 다 옳은 말이고,
새겨들어야 하는 말들이다.
특히 내가 가장 이해하지 못했던 부분들에 대한 의문을 풀게 된 내용이 있어
남겨보려고 한다.
작년 초등학교 입학식 때 아이와 함께 학교에 갔다.
아이는 입학식을 참석하려고 담임 선생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앉았다.
그러다 눈길이 가는 한 아이가 있었다. 우리 아이와 같은 반에 배정된 아이인데
혼자서 맨 뒤에 앉아 있었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앞에 앉아 있는데 말이다.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 곁에 가서는 앞으로 가자며 가방을 들어주었다.
그러자 아이는 "싫은데요. 뒤에 앉을래요." 움직일 생각 없이 앉아 있었다.
아마도 입학식이 낯설어서 긴장을 했을 테고, 모르는 아이 틈에 앉는 것에
거부감이 들었을 것이다. 그 순간 담임 선생님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부모들이 모두 그쪽을 보고 있는 상황이기도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1학년 치고 보통이 아니네 라고 생각했다.
그 아이의 학교생활이 궁금했다. 내 아이 학교 생활만큼.
종종 그 아이는 잘 지내고 있는지 물어보면,
"항상 혼나. 애들을 많이 때리거든."
학교 생활이 순탄치 않았는지 담임 선생님께서 부모를 학교에
부르기도 했다고 전해 들었다.
공격적인 아이구나 라고 생각했다.
그러다 우연히 하굣길에 그 아이와 함께 걸어오게 되었다.
학교 밖을 나온 아이는 우리 아이와 조곤조곤 이야기도 잘하고,
나에게 질문도 했다. 아빠, 엄마가 하시는 일을 자랑스러워하며 전해주기도 했다.
공격적인 아이라고 하기에는 예의도 바르고 공손했다.
어느 날은 놀이터에서 놀고 있는 그 아이를 만났다.
동생을 데리고 나와 축구를 하고 있었다.
동생이 공을 멀리 차 버리자
"괜찮아, 괜찮아. 형이 가져다줄게."
동생에게 자상하고, 타이르기도 했다.
공격성을 지닌 아이는 항상 공격적이고, 누구에게나 버릇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혼란이 왔다. 공격성을 보이는 상황을 파악해서 적절히 개입만 하면
아이의 학교 생활에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공격성을 지닌 아이는 항상 공격적일 것이라는 예측이
본질주의 사고에서 시작되었다. 누군가의 특성을 알면 그 사람은 이렇게
행동을 할 것이라고 예측되는 것이 본질주의 사고이다.
토드 로즈는 본질주의 사고가 잘못되었으며 우리의 기질은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나타난다고 전한다.
"누군가를 이해하려면 그 사람의 맥락에 따른 행동 특징에 초점을
맞추는 새로운 사고방식이 필요하다."
특정 맥락에 놓이면 공격성을 보이나 다른 맥락에서는 온순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한 사람의 일부만 보고 단정 지어 생각하게 되는 데
마치 장님이 코끼리 다리만 만져본 코끼리를 다 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과 같다.
맥락의 원칙이 적용되는 부분은 많다.
기질뿐만 아니라 도덕성, 자제력, 직무나 학업 수행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뛰어난 수행력을 펼칠 수 있는 맥락(상황)이 있을 텐데
우리는 그러한 상황은 고려하지 않는다. 일단 되고 보자라는 식으로 근무할 환경을 찾고 있다.
간호학과를 졸업하고, 고민 없이 남들이 하는 대로 병원에서 근무를 하게 되었다.
내가 근무를 잘할 수 있는 상황인지를 따져볼 겨를이 없었고, 따져볼 여유도 없었다.
졸업생들이 모두 병원을 향하기 때문에 나도 그쪽으로 걸어 들어갔다.
결국 이렇게 들어간 근무 환경에 나는 견뎌내지 못하고 퇴사를 하게 되었다.
병원(회사) 입장에서는 훈련된 간호사가 그만두게 되어 손해를 보게 되었고,
내 입장에서는 퇴사를 고민하며 많은 시간을 흘러 보내게 되었고, 그 순간순간 일을 하면서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평균의 종말>을 읽어 가면서,
지금까지의 내 모습이 떠올랐다. 대학을 결정할 때의 순간, 학과를 결정할 때,
취업을 결정할 때 내가 중심에 있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없었다.
대학을 가는 것에 의미가 없다고 생각했으나 남들이 가는 것이니 가야 한다고 결론지었다.
남들처럼 대학생이 되었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은 일이 있으니 그 길을 가기 위해
학과를 결정했으나 남들이 많이 가고 선호하는 학과를 선택하라 하여 그 길을 졸졸 따라갔다.
친구들이 병원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보고, 필기시험을 준비하니
나도 그래야겠다고 마음먹고 따라 했다.
"우리 자신이나 아이들이 남들과 '다른'사람으로 분류되면
학교 생활에서 성공할 가망이 없어지고 사다리의 낮은 곳에서
살아갈 운명에 놓일까 봐 불안해한다."
작가가 적어 놓은 글이 가슴에 박혔다. '다른'사람으로 분류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지금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 중에 그러지 않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자신에게 잘 맞는 것을 알아가면서 각자의 속도와 순서를 따라 가야 한다.
나부터 그리고 내 아이도 그렇게 걸어가도록 길잡이가 되어야한다.
자신이 정한 기준에서의 훌륭한 삶을 살아가고자" 노력하기로 결심한다.
책을 읽었으니 '앎'과 '삶'이 일치되기 위해 늘 깨어있기로 마음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