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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Nov 03. 2020

게임하고 싶어요.

엄마와 아들

코로나 19 대응 단계가 낮아지면서 아이는 매일매일 등교를 하고 있습니다.

오랜만에 등교를 하는 첫날, 아이는 학교 가기 싫다며 늑장을 부렸어요.

한 소리 듣고 학교를 다녀오더니 표정은 환하고 엄마를 쫓아다니며 학교에서 있던 시시콜콜한 일들을 이야기해주었답니다. 친구를 만나고 선생님을 뵙고, 급식을 먹고, 이런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엄마도 아이도 깨닫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답니다.


어느 날은 저에게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엄마! 내가 하는 말 다 들어준다고 약속해.!"

무조건 들어준다는 말을 해야지만 말을 하겠다니, 궁금증이 더해져서 못 참고 그러겠다고 덜컥 약속을 했습니다.

  "다 들어줄게. 말을 해봐."

  "......."

말을 해보라고 했는데 왜 말을 못 하는 가. 무언가 낌새가 좋지 않네요.

무슨 큰 일을 저질렀는가, 친구를 때렸나, 어쨌나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데,

아이는 대뜸!

  "엄마 나도 핸드폰으로 게임하고 싶어. 나도 브롤 하고 싶어요."


아쉬울 때는 존댓말이 잘도 튀어나옵니다.

순간 '헉'하고 놀랐습니다. 올 것이 왔구나 게임의 늪이 찾아왔구나.

바로 대답을 하지 못했습니다.

무조건 안된다고 할 수 없었거든요. 이미 무엇이든 다 들어주겠다고 철커덕 약속을 해놓았는지라.

  "그럼, 이건 엄마 혼자 결정할 수 없으니까, 아빠 오시면 다 함께 모여서 이야기해보자."

이렇게 얼버무리며 시간을 벌었습니다.



'게임'이라는 말만 들으면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사실 제가 학교에서 만났던 아이들, 특히 무기력하고, 학습적으로 의욕을 보이지 않았던

아이들, 욕을 해대는 아이들이 게임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래서 제 머리에는 이미 '게임 = 문제아'라는 인식이 깊이 새겨져 버렸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선생님! 선생님 아들은 절대 게임시키면 안 돼요. 제가 게임 때문에 이렇게 된 거예요."

라고 말하는 학생도 있었으니, 게임을 두려워하게 된 것도 무리는 아니지요.



아이 친구들을 보니 스마트 폰을 가지고 다니는 가 봅니다.

게임을 많이 하기도 하고, 하교 후에도 게임을 하며 게임 친구를 만들고 있지요.

무조건 안 된다라고 하기엔 아이가 아홉 살이나 먹었네요.

잘 설득해야 하는데, 어떻게 설득을 해야 하는가 고민했습니다.



제일 좋은 것은 아빠와 함께 모여 이야기 하기로한 것을 새까맣게 잊어버리는 것인데

아빠가 퇴근하고 오자마자 아이는 기가 막힌 기억력으로

  "아빠, 오늘 가족회의할 거야."

라고 외쳤습니다. 그만큼 간절한가 봅니다.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거듭하다가 '게임 = 약속'이라는 새로운 이미지를

생각했습니다.

  "하고 싶다고 하니, 무조건 안 된다고 할 수는 없겠다. 엄마가 게임을 꺼려한 것은

하고 싶어 하는 마음을 조절하기 힘든 나이인데, 게임 때문에 더욱 그렇게 될까 봐 그런 거야."

  "아니야, 무조건 잘 지킬게."

  "그럼 일주일에 몇 번 하고 싶으니? 몇 분 하고 싶으니?"

  "......"

아이는 선뜻 대답을 하지 못합니다. 아마 매일매일 하고 싶었나 봅니다.

생각하고 다시 이야기하기로 했습니다.



  "일주일에 월, 금만 하고, 30분만 할게."

다음날 아침 눈 뜨자마자 다다닥 달려와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생각보다 나쁘지 않네요. 스스로 일주일에 두 번이라니.

우리는 이렇게 약속을 하게 되었습니다.

  "게임은 재미도 있겠지만, 일단 약속이야. 너 스스로 결심한 요일과 시간을 지켜야 한다는 약속.!

이 부분을 어기게 되면 엄마랑 아빠도 너와 한 약속을 지키지 않게 되는 것이지."


이런 과정을 거쳐서 약속문(각서 문)이 작성되었습니다.


아직까지는 별 탈 없이 잘 지켜지고 있습니다. 게임을 시작할 때 스스로 알람 30분을 맞추고

벨이 울리면 딱 끄고 있습니다.




핸드폰과 컴퓨터를 빠른 시기에 접하게 되면서

많은 아이들이 게임에 쉽게 노출되고 있습니다.

대여섯 살 먹은 아이들도 능수능란하게 게임을 하며 레벨업을 식은 죽 먹기로 해대고 있지요.

가끔 이렇게 말하는 부모를 만나게 됩니다.

  "21세기인데 스마트 폰 당연히 사줘야지. 요즘 게임으로 친구 사귀는데 어떻게 게임을 안 해."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당황합니다.

내 아이는 알아서 잘 조절할 수 있을 거라는 헛된 믿음.

아이들은 어디서도 조절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처음 접하는 핸드폰과 게임은 부모가 적절히 개입해주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올바르게 판단하고, 조절할 수 있게 세심하게 신경을 써줘야 합니다.

그래서 생각한 것이 약속문이지요, 각서.


자신이 한 약속을 입으로만 했을 때와 글로 작성되어

떡! 하니 붙여져 있는 것은 다가오는 무게감이 다를 것이라 생각됩니다.


하고 싶으면 해야죠. 막을 이유도 방도도 없습니다.

부모와의 관계만 멀어질 수 있고, 숨어서 할 수도 있는 일이지요.

하고 싶은 그 마음 받아들이고, 게임은 재미와 함께 약속이라는 이미지를

짝꿍처럼 붙여주면 아이도 부모도 한결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요.


오늘은 약속한 것들 잘 기억하고 있는지 물어보아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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