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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민민 Feb 03. 2021

현실 자각 타임

일상, 깨달음

  겨울 방학을 맞이한 아들과 몇 주간 집안에서만 지내왔다. 코로나 때문에 여행은 생각할 수도 없는 상황이었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아들내미가 그만 발가락 골절을 진단받게 되었다. 집 안에서는 혼자 지내야 하지만 태권도장에 가면 또래 아이들과 만날 수 있고, 품세며, 피구며 아이가 즐거워하는 활동을 할 수 있었던 학원도 몇 달 쉬게 되었다. 엄마와 함께 둘이서 보내는 상황이 처음은 아니어서 그런지, 서로 부대끼지 않으며 순탄하게 보냈다. 그래도 방학인데, 특별한 기억을 남겨야 하지 않을까 싶어 고민하다 영화관 나들이라도 해보자 라는 계획을 세웠다. 코로나가 득실대지만 그래도 영화 4~5편 정도는 상영을 하고 있었다. 열 살 되는 아들 나이를 고려해서 온 가족이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을 골랐다. 일찌감치 저녁 식사를 하고 셋(아빠, 엄마, 아들) 이서 영화관에 들어섰다. 오랜만에 들어선 영화관은 어둑어둑한 조명에 사람 몇몇이 있을 뿐이다. 오랜만에 마주하는 영화관 풍경이 낯설었다. 예전 같았으면 방학을 맞아 가족 단위의 사람들이 바글댔을 곳인데, 우리는 여전히 코로나의 상황 속에 갇혀 있구나 라는 생각이 무턱대고 끼어든다. 영화관 직원들도 찾아볼 수 없었다. 매표소에 서서 반기던 직원들도 사라지고, 무인 기계만 덩그러니 서 있다. 참 외로워 보인다. 이런저런 생각에 나도 모르게 코로나에 짓눌려가는 찰나,

    “엄마! 팝콘 사줘.”

팝콘을 사달라는 아들 손에 이끌려 매점을 향했다. 헉! 여기도 무인 창구이다. 팝콘을 터치하자 경고 문구가 뜬다. 영화관내에서는 먹을 수 없으니 밖에서 먹어야 하며, 그래서 봉지 팝콘을 구입해야 한다, 뭐 대략 이런 식의 문구가 우리 앞에 쓱 나타났다.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는 봉지 팝콘을 사 먹어야 하는구나. 이 상황에 적절한 표현이 있다. “현타(현실 자각 타임)가 왔다.” 청소년들이 쓰는 시쳇말이지만, 이 상황에서는 그 어떤 말로 대체할 수 없을 듯하다.

   “우리 진짜 코로나 시대를 살고 있구나.”

라고 읊조리며, 상영관으로 들어갔다. 열다섯 명 정도 되는 인원이 정예 부대 마냥 상영관 좌석을 듬성듬성 채웠다. 한 자리 건너서 앉아야 하고, 마스크를 벗어도 안 된다. 영화를 보는 내내 ‘세상에, 영화관에 오니까 진짜 실감 나네. 무인 창구가 비집고 들어오는 바람에 많은 사람들의 일자리가 사라졌고, 영화를 보기 전 설렘을 조잘조잘 말로 할 수 없으며, 영화 보기 전 무료한 시간을 달래주던 고소하고 짭조름한 팝콘도 이제 양손 가득 집어 먹을 수 없구나.’


   영화를 보다 재미있는 장면에 나는 참지 못하고 웃음을 뱉었다. 머쓱하게도 크게 웃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엄마, 작게 웃어.” 라며 아이가 속삭인다. 에구머니나, 마스크 때문에 크게 웃는 것도 방정맞아 보이는가 보다. 이런! 재미있으면 웃어야지, 웃는 것도 마음대로 못하네.

   올라가는 자막에 일어서며 내가 영화를 본 것인지, 코로나 시대의 영화관을 구경 온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마스크로 입을 막아놓아 영화를 보고 나서도 감상에 대한 평을 할 수도 없었다. 다들 조용히 일어나 콧잔등의 마스크를 야무지게 누르고 밖을 나서는 모습뿐.


   오랜만에 미세먼지 없이 해가 쨍하게 뜬 맑은 날, 마스크를 꼼꼼하게 쓰고 천변을 거닐다 영화관 다녀온 날을 떠올렸다. 친구에게 영화가 어땠는지보다 영화관이 어땠는지 이야기해주었다. 물 위를 떠다니는 원앙 떼들을 보았고, 주변의 노쇠한 갈대들을 보았다. 늦겨울을 아는지 모르는지 갈대는 바람에 몸을 맡기고 휘청대고 있으며, 원앙 떼들은 추위를 뚫고 유유히 헤엄쳐 다닌다. 그러다 불쑥, 감사해야 하는구나!라는 울림이 퍼졌다. 바이러스가 득실대도 마스크에 의지해 영화관이라도 다녀왔고, 천변이라도 걸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감사하구나! 끝을 알 수 없는 바이러스의 공격에 우리는 그래도 일상을 유지하고 있구나. 인간이란 적응의 동물이 아닐까 싶을 만큼 놀랍게 잘 적응하고 있고, 백신과 치료제를 개발하기 위해 애를 쓰고 있다. 개발해야 할 사람들은 그들 분야에서 열심을 다하고, 우리는 마스크를 잘 쓰고, 조심하며 일상을 살아가다 보면 봉지 팝콘이 아니라 대형 종이컵 팝콘을 와락 껴안아 집어 먹으며 영화가 재미있었다고 침 튀겨가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을 거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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