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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영욱 Nov 06. 2023

2만 달러짜리 낙서

'신경 끄기의 기술' 독서노트


노년의 파블로 피카소가 스페인의 한 카페에 앉아 냅킨에 그림을 끄적이고 있었다. 그는 무덤덤한 태도로 그때그때 자기가 그리고 싶은 걸 쓱쓱 그렸다. 10대 소년이 화장실 칸막이에 낙서를 하는 방식과 흡사했다. 하지만 그는 피카소였다. 그가 그린 낙서는 희미한 커피 얼룩 위에 수놓은 입체파 또는 인상파 작품이었다. 옆자리에서 한 여성이 그 모습을 바라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몇 분 뒤, 커피를 다 마신 피카소는 자리를 뜨기 전에 냅킨을 구겨서 버리려 했다. 여성이 피카소를 불렀다. “잠깐만요. 제가 그 냅킨을 가져도 될까요? 사례는 해드리겠습니다.” 피카소가 답했다. “물론이죠. 2만 달러입니다.” 피카소가 여자에게 벽돌을 집어던지기라도 한 듯이 여자의 머리가 덜커덕 뒤로 흔들렸다. “뭐라고요? 그리는 데 2분밖에 안 걸렸으면서.” 피카소가 말했다. “아니요. 60년 넘게 걸렸습니다.” 피카소는 냅킨을 주머니에 쑤셔 넣은 뒤 카페를 나갔다.

신경 끄기의 기술, '실패했다고 괴로워하지마' 중에서


1. 참 여러 가지 생각이 들게 하는 일화다. 일단 왠지는 모르겠지만 통쾌한 기분이 들었다. 아니 한대 얻어맞고 정신이 번쩍 드는 것 같았다. 낙서처럼 슥슥 그리는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이 보여도 피카소가 그 경지에 이르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이 있었을까. 우리가 쉽게 지나쳤던 지난한 노력의 과정은 지금 보다 더 주목받아야 마땅하다. 그것이 화려하지도 흥미진진하지도 않지만 결국 거기에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2. 가만히 생각하니 피카소가 더 대단해 보였다. 그림을 평생 그리고도 노년에도 카페에 앉아 냅킨에 그림을 끄적이고 있었다니. 그림이 피카소에게는 일이 아니었음이 분명하다. 일이었다면 부와 명예를 얻고 나서 그림 그리는 것을 그만뒀을 것이다. 적어도 카페에서 여유를 즐기는 그 시간까지 그림을 그리지 않았을 것이다. 평생을 하고도 무언가를 습관처럼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참 축복이다. 나도 그런 일을 갖고 싶다.


3. 그리고 책장을 넘기는데 문득 딴생각이 들었다. 저 여성이 저 냅킨을 사고 이 일화가 알려졌다면 분명 저 냅킨은 2만 달러 이상에 팔리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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