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분 좋은 사용자 경험' 연재를 통해 좋은 UX 디자인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이번 편은 모임 비용 정산 문화를 바꾸는 카톡 '1/N 정산하기' 디자인을 소개합니다.
익숙함이 주는 불편함
사람들 사이에 정착된 문화를 바꾸는 것은 매우 어렵다. 카카오톡을 업무용 메신저로 사용하는 경우를 보면 이를 잘 알 수 있다. 퇴근 후에도 주말에도 울리는 알림에 사람들은 정신적으로 업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통을 호소한다. "팀장님 저희도 업무 메신저로 슬랙 쓰면 어떨까요?"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이고 싶은 마음에 팀원이 이런 제안을 용기 내어해 볼 수 있겠지만, 이미 여러 사람에게 익숙한 방식을 익숙하지 않은 새로운 방식으로 모두 옮겨오게 하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이런 고민을 알고 있는 카카오는 카톡의 사용성을 유지하면서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있도록 하는 '카카오워크'를 지난 2020년 9월 출시했다. 출시 전 많은 기대를 받았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망스럽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분명 업무용 메신저로 개선되고 특화된 부분이 있었지만 사용자들이 기존의 카톡을 쓰면서 힘들었던 포인트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했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아래 그림에 있는 '안 읽은 멤버 확인'하기이다. 메시지를 주는 입장에서는 안 읽은 사람을 확인하여 한 번 더 확인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반면, 메시지를 피하고 싶은 입장에서는 이제 잠시 모른 척하는 것마저도어려워져 버린 것이다. 제대로 사용자 조사는 하고 출시한 건가 싶은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없다.
카카오워크 예시. 메시지를 안 읽은 멤버가 누구인지 확인할 수 있다. (Source: kakaowork.com)
이런 기능보다 '메시지 멈췄다 보내기' 기능을 넣었으면 어땠을까? 업무 시간을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로 설정해 놓으면, 저녁 6시 이후에 쓰인 메시지들이 멈춰져 있다가 다음 날 오전 9시가 되었을 때 순차적으로 들어오는 것이다. 팀장님 입장에서 저녁에 떠오른 생각을 까먹지 않기 위해서 따로 적어놓을 필요 없고, 팀원들 입장에서는 퇴근 후 시간을 온전히 보장받을 수 있어서 좋을 것이다. 정말 중요한 메시지는 업무 외 시간에도 보낼 수 있는 기능을 추가하여 급한 일도 처리할 수 있게 하면 된다.
고착된 문화까지 바꿀 수 있는 UX 디자인의 힘
UX 디자인은 카톡을 업무용 메신저로 쓸 때처럼 부정적인 사용자 경험을 만들기도 하지만, 우리 생활에 뿌리 깊게 자리 잡은 문화를 긍정적으로 바꾸는 힘 또한 가지고 있다. 그 대표적인 예가 카톡 '1/N 정산하기' 기능이다.
'1/N 정산하기'는 카톡방에서 '송금'에 들어가면 있는 기능이다. 카톡방에 있는 사람들 중 모임에 참여한 사람들을 선택하고 모임에 들어간 비용을 입력하면 1원 단위까지 정확하게 나눠준다. 모임이 2차까지 있었다면 1, 2차를 나누어 계산도 할 수 있다. 그리고 계산된 금액을 송금해 줄 것을 각 사람에게 알리는 것으로 총무의 일은 끝난다.
카톡 1/N 정산하기 화면. 카톡방에 있는 멤버를 선택하고 모임에 든 비용을 입력하면 자동으로 내야 할 비용을 계산해주고, 이를 각 멤버에게 알려줄 수 있다.
모임 비용을 직접 계산하고 수고스럽게 알리지 않도록 도와주는 것이 전부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나는 이 '1/N 정산하기' 기능이 모임 비용을 정확하게 계산하는 것을 '정 없는 행동'으로 여기던 우리 문화를 바꿔놓은 디자인이라고 생각한다. 위의 그림에서 나온 금액처럼 누군가 모임 이후에 "각자 20,833원 보내주세요"라고 했다면 잘못된 것은 없지만 너무 철저한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것이다. 그러나 시스템이 정확하게 나눠준 금액을 보았을 때 이를 문제 삼는 사람은 없다. 내가 직접 숫자를 입력해서 보내야 하는 번거로움도 없으니 더욱 그렇다.
이 기능을 사용하면서 우리는 더 이상 누가 더 낼지 누가 덜 낼지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오롯이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고, 집에 돌아오면서 그 여운만 가져오면 된다. 이런 사례를 보면 UX 디자인은 참 어려우면서도 매력적이다. 특정 문화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꾸는 인위적인 노력이 필요하고 이 노력이 수년 동안 쌓여야 실제로 문화가 바뀔 수 있다. 그런데 '1/N 정산하기'와 같이 잘 디자인된 UX는 이런 인위적인 노력 없이도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바꿀 수 있으니 참 대단한 힘을 가졌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