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안에 결혼 안 하면 3년 동안 결혼을 못한다니,
"나 날 잡았어. 12월에 하기로 했어."
"엥? 벌써? 뭐가 그렇게 급해??"
연애를 시작한 지 1년도 안 된 친한 동기 언니 J가 결혼을 한단다. J로 말할 것 같으면 20대 후반의 희로애락을 함께하고, 내 찌질한 흑역사를 속속들이 알고 있는 유일무이한 사람이다.
30대 후반까지 둘 다 결혼을 안 하면 '여자 둘이 살고 있습니다' 책에 나온 황선우 x 김하나 작가처럼 둘이 같이 살기로 해놓고, 먼저 시집을 가다니. 우리가 결혼을 안 하기로 서로 약속을 한 것도 아닌데 배신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우리는 서로에게 남자 친구가 있을 때도 하루 종일 카톡 하고, 매일 밤마다 통화하며 일거수일투족을 공유하는 찐친이었다. J의 결혼식이 점점 다가오자 밤에 통화할 때면 , '이제 이렇게 통화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네.'라는 생각에 어쩐지 섭섭하고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언니가 결혼하면 이제 밤마다 통화는 못하겠지? 나 허전해서 어떡하지?'
J의 결혼 소식을 들은 친구들은 혼자 남은 나를 두고 한 마디씩 하기 시작했다.
"J 마저 가네. 만보언니도 이제 가야지!"
"그러게. J가 이렇게 갑자기 가다니."
나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이렇게 얼버무리고 말았다.
"친한 친구가 결혼하는데 너도 하고 싶지 않아? "
"아니, 나도 그럴 줄 알았는데 오히려 결혼 생각이 없어졌어. 그냥 지금 혼자 지내는 게 좋아. 익숙해졌나 봐."
나는 괜찮다고 에둘러 말한 거였는데 돌아오는 대답은,
"에이, 자기 합리화 아냐?"
할 말을 잃었다. 내가 뭐라 하든 어쨌든 그들 눈에는 내가 외로워 보일 것이므로 긴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내 입만 아프지, 나만 괜찮으면 됐지 뭐. 나는 J를 따라 결혼을 빨리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예전처럼 J와 시간을 함께 보내지 못하는 것이 아쉬웠을 뿐인데 말이다.
"언니 그럼 부케는 누가 받아? "
"아, 친한 동생이 곧 결혼해서 걔한테 부탁..."
"내가 받을래!!! 언니 부케! 내가 받으면 안 돼?"
J가 대답할 틈도 주지 않고 부케는 내가 꼭 받아야겠다며 선수를 쳤다. 이미 J가 생각해놓은 사람이 있는 것 같았지만, 고맙게도 내 부탁을 흔쾌히 들어주었다. 내가 알고 있기로는 신부의 부케를 받을 사람은 결혼 날짜를 잡은 예비 신부이거나, 결혼을 전제로 만나고 있는 남자친구가 있는 사람이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디에도 해당되지 않았다. 당시에 만나고 있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부케를 받겠다고 자처한 것이다.
부케를 받겠다고 강력하게 어필한 이유는 딱 두 가지였다.
1. 언니의 부케를 받지 않으면 평생 부케 받을 일이 없을 것 같아서
2. 부케를 예쁘게 말려서 다시 선물해주고 싶어서
이미 내 친구들은 거의 다 결혼을 했고, 부케는 결혼 예정인 사람들에게 돌아갔기에 나는 부케를 받을 기회가 없었다. 그리고 그 누구보다 부케를 잘 말려서 의미있고도 예쁜 선물을할 자신이 있었다. 이런 이유로 J의 부케만은 꼭 받고 싶었다.
내가 부케를 받기로 결정된 후에, 부케를 말려서 뭘 만들어서 선물해 줄까 설레는 마음으로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부케를 받은 후 두 사람을 축복하며 100일 간 잘 말려서 돌려줘야 부부가 잘 산다고 하는 속설이 있다. 예전에는 부케를 태워야 부부가 별 탈없이 잘 산다고 했으나, 시대가 변함에 따라 부케 트렌드도 바뀌나 보다. 요새는 예쁘게 말려서 신부가 평생 간직할 수 있게 선물로 돌려주는 것이 트렌드다.
'부케 말리기 선물'로 검색하니 부케 액자, 부케 캔들, 부케 유리돔 등이 나왔다. 그런데 수많은 자동 검색어 중에 내 눈길을 끈 것은 '부케 미신'이었다. 부케를 받은 후 6개월 안에 결혼을 안 하면 3년 동안 결혼을 못한다라나 뭐라나. 물론 익히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글로 읽으니 확인사살당하는 기분이었다. 왠지 모르게 찝찝한 마음이 들었다.
'6개월 안에 결혼 안 할 것 같은데... 진짜 3년 동안 시집 못 가는 거 아니야?'
찰나에 이런 생각이 스쳤지만, 그렇다고 부케를 안 받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내가 먼저 받겠다고 한 것은 물론이거니와 J 역시 평생 한 번 있는 소중한 날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될 기회를 나에게 준 것이기 때문이다.
드디어 부케 받을 날이 다가왔다. 어떤 옷을 입고 갈지 고민하며 몇 벌의 옷을 갈아입고 거울을 봤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았다. 부케를 받고 사진을 찍어야 하는데 어쩐지 겨울옷들은 다 뚱뚱하게 보이는 것 같았다. 하릴없이 영하 15도의 한파에도 불구하고, 그나마 날씬해 보이는 블랙 반팔 원피스를 입고 J의 결혼식으로 향했다.
11월에 간 다른 동기의 결혼식에는 신부대기실에서 마스크를 벗고 사진 찍을 수 있었다. 그런데 한 달 사이에 코로나 확진자가 급격하게 늘어나서 J의 결혼식에서는 신랑, 신부를 빼고 전부 마스크를 쓰고 사진을 찍어야 했다.
신부대기실에서 내 전 남자 친구의 친구도 봤지만 다행히 마스크를 쓰고 있어서 그는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 같았다. 행여나 그가 나를 알아볼까 봐 J와 사진을 찍고는 죄지은 사람처럼 부리나케 빠져나왔다. 마스크를 끼고 신부대기실에서 사진 찍는 건 참으로 애석한 일이지만, 이때만큼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J가 던진 부케는 포물선을 그리며 내 품에 안겼다. 우리는 마치 연습이나 한 듯이 부케를 주고 받았다. 나는 부케를 들고 마스크를 쓴 채로 신랑, 신부 사이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부케를 받은 나만큼은 마스크를 벗고 사진을 찍어도 될 줄 알았는데 괜한 기대를 했나 보다. 코로나 19 시대의 결혼사진은 나중에 분명히 회자되고도 남을 것이다.
부케를 받고, 신줏단지 모시듯 조심히 집에 가져왔다. J가 행복하고, 평탄한 결혼생활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부케를 해체해 하나하나 거꾸로 매달아 옷걸이에 고정시켰다.
겨울철에 부케 말리는 것은 집안보다는 서늘한 베란다가 낫다고 하기에 베란다에 있는 빨래 건조대에 옷걸이를 걸어 말렸다. 날이 추워 베란다에 나갈 일이 거의 없지만, 꽃이 잘 마르고 있나 한 달 간은 수시로 베란다에 가서 꽃의 안부를 확인했다. 꽃이 바닥에 떨어져 있으면 다시 옷걸이에 단단하게 묶어 고정시켰다.
말린 꽃잎들을 가지고 부케 캔들을 직접 만들면 좋았겠지만, 날이 갈수록 코로나 확산세가 심상치 않았다. 공방에 가서 캔들을 만드는 것은 어쩐지 조금 위험해 보여서 부케 캔들 전문 제작업체에 보내기로 했다.
며칠 뒤 장인의 손길로 완성된 부케 캔들이 나에게 다시 돌아왔다. 생각한 것보다 더 완성도 높고 예쁜 캔들을 보니 가슴이 벅차고, 뿌듯했다.
다음날 만난 J에게 예쁘게 포장한 부케 캔들을 내밀었다. 무슨 날도 아닌데 갑자기 웬 선물이냐며, J는 적잖이 당황한 눈치였다. 나는 서프라이즈 선물에 성공한 것 같아 내심 기분이 좋았다.
사소한 것에도 감동받을 줄 알고 행복해하는 J는 부케 캔들을 선물 받고는 진심으로 기뻐했다. 그런 J의 모습을 보니, 부케 받기를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에게 또 다른 추억거리가 하나 더 생겼으니 이제 부케에 관한 미신은 이제 신경 쓰지 말아야겠다.
급하게 건네주느라 짧은 메시지 카드조차 쓰지 못해서 마음에 걸린다. J에게 부케 캔들을 건네주며 차마 하지 못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다.
"언니, 오빠랑 알콩달콩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해! 결혼해도 자주 만나자 우리. 부케 미신은 내가 깨 보도록 할게. (이제 두 달 지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