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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보언니 Mar 14. 2021

생일날, 더 이상 울지 않기로 했다

나의 다정하고 소중한 친구들, 고마워




언제부턴가 나는 생일이 되면, 내 나이 때의 엄마 모습을 그려보곤 했다. 철들기 시작할 무렵이었던 것 같다. 엄마에게 생일을 축하받는 것이 아니라 낳아주셔서 감사하다고, 낳느라 고생하셨다고 말하기 시작했을 때, 아마 20대 초반쯤이었던가.


한창 예쁘고, 젊고, 아름다울 나이에 딸 두 명을 키우신 엄마를 생각해본다. 그러면 왠지 모르게 엄마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나는 내가 사고 싶은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가고 싶은 곳도 많은데 엄마는 다 누리지 못했을 것이다. 내가 태어남으로써 당신은 그 누구보다 행복했겠지만, 그만큼 포기하는 것도 많았을 것이 분명하다.


5년 전에 엄마가 돌아가셨다. 정확히 내 생일을 딱 한 달 앞둔 날이었다. 한 달만 더 있으면 내 생일인데, 한 달만 기다려주지. 엄마 앞에서는 여전히 철없는 딸이었던 나는 병실에 누워있는 엄마를 보며 매일 기도했다.

'엄마가 한 달만 더 우리 가족 곁에 있게 해 주세요, 엄마랑 생일 같이 보낼 수 있게 해 주세요.'

사람은 힘들고, 절박한 상황에서 종교를 갖게 된다는데 나 역시 그랬다. 엄마의 암세포가 온몸에 전이되어 있는 것을 알기 시작했을 때부터 열심히 기도했지만 엄마는 결국 하늘나라로 가버렸다. 나는 그때부터 신이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27번의 생일을 엄마와 보냈다. 아마 엄마 없이 생일을 보내는 날이 더 많을 것이다. 살아갈 날이 더 많기 때문에.

엄마를 보내드리고 딱 한 달 뒤의 내 생일날, 엄마를 보러 갔다. 엄마를 보낸 지 한 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친구들과 모여 초를 부는 것이 못할 짓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햇볕이 좋은 날이었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추운 날로 기억한다. 날씨가 정말로 추웠던 걸까, 아니면 엄마 없이 보내는 첫 생일이어서 그랬던 걸까.

엄마와 단둘이 생일을 조용히 맞이하고 싶었다. 평일 낮이라서 그런지 납골당에는 다행히 사람들이 없었다. 납골당에 있는 엄마 사진을 보고 있는데도, 이제 엄마가 곁에 없다는 것이 실감 나지 않았다. 아직도 이렇게 고운데  왜 그렇게 급하게 가셨는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아니, 기도를 열심히 했는데도 들어주지 않은 하느님을 원망했다.


엄마 없이 보낼 앞으로의 내 생일이, 인생이 감히 상상되지 않아 자꾸 눈물이 났다.  생일은 누구에게나 행복한 날은 아니구나. 생일날 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아마 태어날 때 빼고는 없지 않을까. 서글픈 내 마음을 알기나 한 듯이, 까마귀가 까악까악하고 시끄럽게 같이 울어줬다.


친구들에게서 생일 축하한다는 연락이 오고, 선물함에는 기프티콘이 가득 찼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더 허전하고 우울했다. 엄마를 보고 내려오는 길에  다시는 생일날 엄마를 보러 오지 말아야겠다고 다짐했다. 어쩌면 1년 중에서 제일 행복하고 기뻐할 날에 엄마를 그리워하며 우울해하는 내 모습을 엄마도 원하지 않을 것만 같아서.


갖고 싶어한 사진 액자 선물해준 콩, 정성 가득 생일상 차려준 뽀&JM 형부 고맙습니다




시간이 약이라고는 하지만 예외도 있다. 적어도 딸에게 엄마의 부재는 그렇다. 그리워하지 않는 날은 단 하루도 없지만, 특히나 매년 내 생일에는 유독 엄마가 더 보고 싶다.

엄마를 보내고 5년이 지난 올해의 생일은, 친구들 덕분에 내내 가슴이 벅차고 행복했다. 아마 나처럼 인복이 많은 사람도 없을 것이다. 손편지를 써주고, 정성스럽게 선물을 골랐을 친구들이 참 고맙다. 올해는 미역국을 두 번이나 먹었다. 심지어는 친한 친구의 남편이 생일상을 차려주기도 했다.


생일이 지나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생일 다음날은 마치 크리스마스 다음날 같다. 축제가 끝나서 마음이 헛헛한 기분이랄까.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내내 충만했던 하루가 지나고 나서야 엄마가 떠올랐다.


하루 늦은 인사를 엄마에게 전해야겠다.


"엄마, 저 낳느라 고생하셨어요. 사랑 듬뿍 주시고, 예쁘게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친구들 덕분에 행복한 생일 보냈어요. 엄마 딸 이제 더 이상 생일에 울지 않고 씩씩하고 행복하게 잘 보내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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