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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은 Jul 11. 2021

3. 한국에선 ‘인싸’ 미국에선 ‘아싸’

친구 중심의 삶을 살던 내 곁에 친구가 사라졌다

한국에서의 학창 시절, 감사하게도 나는 늘 친구가 많았다. 요즘 말로 항상 '인싸' 축에 속했고, 친구라는 존재는 내 세상과도 같았다. 오죽하면 부모님이 재미 삼아 점을 보러 가셨는데 그곳에서 나는 친구 때문에 피해 보면서 살 인생이라고 했다나.


무튼, 나는 친구들과 싸워서 속상한 적은 있었어도 친구가 없어 외로웠던 적은 하루도 없던 운 좋은 청소년이었다. 그런데 미국에 온 후, 내 옆에 그 친구들이 없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을 때 나는 당황했다. 길 잃은 아이처럼, 나는 헤매고 있었다. 몸은 멀리 있지만, 마음은 늘 함께라는 말은 17세의 어린 나에게는 아무런 힘이 되지 못했다.


다행히 첫 1년 동안 다니던 고등학교는 작았고, 한국에서 온 나를 반겨주는 좋은 친구들이 있었다. 그러나, 더 크고 좋은 사립학교로 전학을 간 후에 나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유일하게 있던 한국 여학생 한 명은 (지금은 나와 좋은 친구가 되었지만)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한국에서 온 나와는 말할 생각이 없어 보였고, 꽤나 잘 사는 집안의 미국 학생들에게 나는 관심을 줄 필요도 없는 사람이었다.


한국에서는 그렇게 먼저 잘 다가가고, 늘 분위기를 띄우던 사람이던 내가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영어를 못해서도 아니었다. 그냥 입을 열면 무시당하는 느낌을 받고 초라해지는 나를 인정하기가 싫었다.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나는 날이 있다. 나는 부모님께 힘들다는 말을 정말 하지 '못'하는 사람인데 그 시기만큼은 그 힘듬이 숨겨지질 않았는지, 전화를 건 엄마가 먼저 '네가 먼저 노력해야 한다. 내일은 꼭 네가 먼저 다가가야 한다' 하고 단호하고 강하게 이야기하셨다. 그 전화를 끊고 나는 내 방바닥에 엎드려 소리 지르며 기도했다. 진짜 집이 떠나갈 듯이 '하나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하고 소리쳤다.


매일 밤 미국 친구들과 친해지기 위해 어떻게 다가가야 하나 고민했다. 그 맘 때쯤, 나는 괴로운 날들이 끝나는 날을 기다리며 달력에 매일 엑스(X) 자를 치면서 하루하루를 보냈다. 2주면 끝나겠지, 한 달이면 끝나겠지 생각했는데 나는 꽤 오랜 시간 달력에 엑스자를 그었다. 지금 생각하면, 친구가 뭐라고, 친구 없으면 뭐 어떻다고 그렇게까지 끔찍하게 힘들어했는지 10대의 나에게 가서 말주고 싶다.


나는 그 후로도 꽤나 오래 동굴 속에 살았고, 우울증 판정을 받았다. 나는 다시 나로 돌아가는데 꽤나 오랜 시간이 걸렸다. 아니 사실, 이 전의 나로 다시는 완벽하게 돌아갈 수 없었다. 이미 일어난 일을 돌이킬 수 없는 것처럼, 내 안에 생긴 자국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난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그것을 지닌 채로 어떻게 잘 살아갈 수 있을까 늘 고민했다. 지금 이렇게 10년의 유학을 잘 마무리하고, 기쁜 마음으로 글을 쓰는 것을 보니 그 고민이 꽤나 효과가 좋았던 모양이다.


무튼, 그 후로 나는 '친구'라는 존재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열일곱의 나는, 나라는 사람의 존재 가치를 친구들에게 두었던 것 같다. 내 곁에 얼마나 많은 친구가 있고, 어떤 친구가 있는지, 그들이 나에게 얼마나 큰 소속감을 주는지 등이 나의 가치를 높여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미국에서도 어딘가에 소속되기 위해 미친 듯이 두리번거렸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니, 나는 더 이상 친구라는 존재에 집착하지 않고, 비로소 나 자신을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동굴 속에서 나는 홀로 매일매일 나를 더욱 알아갔다. 다른 사람과 친해지기 위해 들였던 수많은 노력을 온전히 내게 쏟으니 나는 나와 더 가까워졌다.


나는 여전히 친구들을 좋아하고, 그들과 보내는 시간에 열정과 최선을 다한다. 열심히 살아가는 내 친구들은 여전히 나의 자랑이지만, 더 이상 그들이 나의 가치나 자존감을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내 친구들을 더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게 되고, 응원하게 되었다. 서로 친구라는 이유로 무언가를 강요하지도 요구하지도 않고, 다름을 인정하며 각자의 인생을 열심히 살다가 만나면 까르르 웃고 떠드는 청년들이 되었다.


그 순간들이 없었다면, 지금의 나는 여전히 친구라는 존재에 많은 것을 기대며 살아갔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나의 가치는 나 자신만이 매길 수 있는 것 임을, 그 가치를 변화시킬 수 있는 것도 바로 나라는 것을 그 어둡고 길었던 동굴을 지나며 나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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