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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정 Nov 26. 2021

내 안에 몬스터(3)

절전

 점심밥을 먹고 나면 잠이 쏟아져서 수업 가기 전 한 시간은 꼭 잤다. 운동량이 많아서 몸이 피곤할 법했다. 아침저녁으로 걷기와 수영으로 진을 뺐으니 말이다. 문제는 이 한 시간으로 만족스럽지 못했다는 것이다. 오전에는 수업을 가서 내내 졸기만 했다. 수업이 지루하면 그럴 수 있지. 근로 장학생으로 일하던 대학원 행정실에서도 주어진 업무를 하다가 넋이 나가버리는 일이 다반사였다. 실장님께서는 지나다니다 나를 보시고 혀를 끌끌 차셨다. 나는 잠의 노예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누워서 휴대폰을 볼 때는 모든 뉴스 기사와 SNS의 게시물들이 겉핥듯이 지나갔다. 반은 무의식 상태로 의미 없이 글자들을 넘겼다. 앉아있을 때는 고개를 들고 눈알을 굴릴 힘조차 없었다. 책을 들여다봐도 무슨 내용인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잠이 쏟아질 뿐이었다. 일을 할 때는 내 행동반경을 최소화했고, 일상에서 할 수 있는 최대한 아무것도 안 하려고 했다. 내 몸에 에너지가 부족해서 본능적으로 절전모드에 들어간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적당히 숨기고 살던 나의 미운 모습도 숨기기가 어려웠다. 말수가 적지만 사람들 앞에서는 적당히 활기찬 연기를 하는 내향인이었는데, 연기가 안 되는 것이었다. 사람들을 만났을 때 어떤 이야기를 할지 머리를 굴리는 것도 평소보다 훨씬 어려워져서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 혼자 넋을 놓고 끝없이 내면으로 파고드는 이상한 행동을 하기도 했다.


 급기야 말이 잘 나오지 않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전달하고 싶은 말이 있는데 입 밖으로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냥 입을 다물었다. 내 생각을 논리적으로 전달하는 것이 초등학생 수준으로도 안 됐다. 그럼에도 내게 가장 중요한 것은 날씬한 몸을 유지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나는 초절전모드인 채로 삶을 지속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삶의 모든 요소들을 뒷전에 두고, 다이어트에 의한 삶을 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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