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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Dec 03. 2023

소설| < joke! >

그것은 발작적인 발화였다.

#사탕


"나는 사탕을 먹어."

말랑카우 스카치캔디 동남아망고젤리를 어깨죽지에 끼고 다니는 여자가 말했다.


"사탕을 먹는 사람이 먹지 않는 사람보다 많을걸?"

매사의 옳고 그름이 말이 나가는 것의 기준이 되는 남자가 말했다.


"그러니까 거의 매일 먹는다고. 이건 주식이야."

신경질 섞인 목소리로 여자가 말했다.


그제야 남자는 수긍을 한다. 남자에게 여자의 신경질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그에게는 의도가 무엇이고 그것이 납득이 가는지가 말의 이슈이다.




나는 사탕을 먹어.







#물구나무


두 사람은 우연이라면 우연이고 필연이라면 필연인 방법으로 알게 되었다. 둘의 레이어가 자꾸만 겹쳐 읽히던 중간의 지인이 우연을 가장한 식사 자리를 만든 것이다. 그것은 멀리서는 우연이었고 가까이서는 필연이었다. 그 자리에는 우연임을 믿는 사람은 없었지만 우연을 부정하는 이도 없었다.



"물구나무 서기를 연습해요."

여자의 눈길을 곤두서게 한 남자의 발화였다.


"물구나무를 서는 일은 지구의 기본 법칙을 부정하는 길이죠. 꼭 두 발로 서야겠냐고요. 저는 물구나무를 설 때, 무엇도 두렵지 않다는 감각을 느껴요."


여자는 물구나무 서기에 대해서만 칠십분은 더 대화할 수 있었지만 남자의 발화에 꼬리물기를 하는 것에는 입을 다물었다. 충분한 탐색으로 누군가를 마음에 들였을때야 대화를 할 수 있는 여자였다.


여자의 마음은 마당, 현관, 거실, 안방, 화장대로 구분되어 있었는데, 마당까지로는 많은 이들을 들였다.

대문은 대개 활짝 열려있었고 마당에는 높고 낮은 나무와 계절 꽃, 따뜻하고 달콤한 디저트들이 항상 준비되어있었다.


그 다음은 현관이었다.

현관까지로의 진입은 여자의 초대로 시작이 된다.

마당에서 충분한 관찰이 끝이 나면 조용히 현관으로의 진입을 허용했다. 현관은 임시적 공간이라, 현관의 사람들과는 우뚝 서서 대화를 나누었고 일정 시간이 경과하면 사람들은 집으로 돌아가야 했다. 필요하면 시원한 물을 건네기도 했지만 그럴듯한 음식이나 긴 대화는 불가능한 그런 곳이었다.


보통은 거기까지가 끝이었다.

거실과 안방 화장대를 본 사람은 이십몇년간 손에 꼽을 만큼이었다. 심지어 그녀의 유년시절을 내내 함께한 부모님조차 거실에 앉아 있을 뿐이었다.



'안방에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일지도 몰라.'

마음에 차는 것은 기가 막히게 알아보는 그녀였다.


그것은 아주 드문 ‘사고’와 같은 영역이기에. 안방이나 화장대를 내보일 수 있는 사람을 인지하는 감각은, 강아지가 주인을 알아보고 고양이가 집사를 간택하는 것과 같이. 몹시 본능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으로 존재했다.


어둠 속의 섬광은 짧지만 분명하다.

잘못보았다고 착각하기에는 명백하고 드물다.

안방의 사람을 인지하는 것은 섬광을 보는 일이었다.




'매일같이 물구나무를 서는 사람 ....'





#joke!


여자의 머릿속이 물구나무 남자와 안방으로 뒤섞이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다. 여자는 시시콜콜이 생길 때마다 전화기를 열어 응답이 없는 남자에게 일러바쳤다. 남자는 대개 응답이 없었다. 정확히는, 판단이 필요하거나 질문으로 끝나는 버블을 제외하고는 응답이 없었다.


"내가 보내는 문자가 싫어?"

여자에게 대화. 그것은 감정의 영역이었다.

누구가 싫으면 응답하지 않고, 누구가 좋으면 무슨 내용이건 응답하는 것이 그녀의 룰이었다.


"아니, 응답을 바라는 말이 아니었잖아. 그건 누구냐의 문제가 아니고, 발화 자체의 목적이 뭐였냐가 중요한거야."

발화의 대상이 아니라 내용이 중요한 남자였다. 'who'가 아니라 'what'이야말로, 남자가 응답을 하게 하는 기준이었다.




'지독하게 재수가 없다.'

이해를 하기 싫지만 이해를 할 수 있는 여자였다.

무엇의 결점을 품게 되면 무엇에 관한 어떤 것도 수용할 수 있게 되는 순간을 알고 있는가.



청국장이나 똠얌꿍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경험한 적이 있을 것이다. 불쾌하고 이질적이던 그것을 자꾸만 찾게 되고. 기어코 그 맛을 인정하고 사랑하게 되는 순간을. 모를 때는 모르더라도 알게 된 후로는 끊임없이 생각이 나는 그것들이 있다.




'거실 정도는 괜찮지 않을까.'

'어쩌면 안방도 ..'

'화장대를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일지도 몰라.'

그녀의 마음에서 그를 수용할 수 있는 공간이 점차로 확장되고 있었다.

결점을 사랑하는 순간. 모든 문이 열려버린다. 사실은 차곡차곡이 아니었던 것.


남녀 관계는 팽팽한 고무줄 같은 것이다.

경계와 탐색을 거쳐 밀어내고자 하는 이유가 삭제된 순간에는. 그저 인력만이 남아있다.




"우리가 안방을 같이 쓰면 어떨까?"

다 마신 커피잔을 뱅글뱅글 돌리고 있는 남자의 뒷통수에 여자가 말을 했다.

참지 못한 재채기가 새어나와버린 양.

그것은 발작적인 발화였다.


"농담이야."







지금껏 농담이라고 말하는 순간에는

단 한 번도 농담이었던 적이 없었던 여자였다.



마음의 방. 그 여자.







joke! - 새소년 밴드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는 마음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는 요즘입니다. 사람의 전부를 품어버리게 되는 그 순간.

따뜻한 일요일밤 보내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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