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또. 읽고있지..
판교테크토닉밸리 가는 길. 초록색 지하철에 탑승. 횡으로 들어찬 좌석. 남몰래 핸드폰 케이스 등허리를 줄줄이 구경한다. 노랗게 바랜 투명젤리 처음 보는 애니메이숀 그 옆에는 튤립이 양각으로 그려진 퍼플색 가죽플립케이스다. 나는 핸드폰 케이스를 보면서 승객 각각의 들어찬 사연들을 망상하는 일을 좋아하는데, 이 작업을 <핸드폰 케이스 사연집>이라고 나혼자서. 부른다. 당신의 사연을 망상.해드립니다.
강남역에서 편도에만 이천오백원 과금하는 신분당선으로 환승을 한다. 신분당선을 가는 길은 매끈한 흰 벽과 무빙워크 바닥으로 인테리어. 여기에 걸리는 광고들이 재미나. 나는 대개 좌나 우에 시선을 꽂고 도보한다. 이호선에서 신분당선으로는 에스컬레이터의 단차가 높다. 붐비는 사람들을 한 텀 보내고 텅 빈 에스컬레이터에 탑승한다. 움직이는 계단에는 노란색 발자욱이 줄줄이 내려간다. 내 발자욱은 색깔이 없는데. 라고 생각하면서 발자국 스캐너의 끝을 가만히 바라본다.
판교테크토닉밸리를 가기 위해서는 강남역 신분당선 탑승 질서를 반드시 숙지하여야 한다. 전철이 도착하기 전에 스크린도어에서 바짝 붙은 방향으로 차곡차곡 줄을 선다. 앞서 강남역으로의 출근 인파에 잠잠 응원의 마음을 담아 그들의 출구찾기를 배웅하고. 드디어 나의 차례. 빨간바닥 지하철로 몸을 수납한다. 나는 시루떡 상태에서는 머리통 너머의 핸드폰 스크린을 구경하는 일을 좋아한다. 그날 아침에는 아기 동영상과 미끈한 몸매의 젊은 여성 사진과 알지 못하는 게임과 웹툰을 다수 관람하였다. 이런 방법으로 사람들의 관심을 구경한다. 바깥의 문법은 이런 것..
판교테크토닉밸리에서는 나는. 농담을 좋아하면서도 지나치게 진지한 인간의 부류로 살아낸다. 언제부텀 스스로를 ‘종합 예술인’이라고 명칭하고 있는데. 판교 문화에선 바빠죽겠는-삼갤뒤-오픈하는-일단어떻게든-해내야하는 프로젝트만 빵꾸를 안내면 내가 예술인이건 컴퓨터인이건 쪼대로 살거라. 나는 미팅을 하고 도식을 그리고. 산출물을 공유할때면. 이건 아트에요. 진심 현대예술입니다. 농담으로 취급되는 진심을 슬랙에 뱉어낸다. 나는 내가 예술하지 않는 순간을 받아들일 수 없으니까. 나의 모든 일을 예술일종으로 바라봄 시작했다.
이동하는 지하철에서는 문학을 읽는다. 눈에 바른다는 것에 더욱 가까운 작업인데. 지난주엔 한강 소설가의 <희랍어 시간>. 나는 이런 글을 써낸 작가가 너무 부러워서 눈으로 한줄한줄 긁어가는 내내. 시샘하는 마음이 담겼다. 요즘 당신이 참 조급하구나 본인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읽어서는 무얼 소화해서 뱉어내겠냐. 오랫동안 나는 홀로 부끄러웠다. 주문처럼 외는 말이 있잖아. 언젠가는 다 해결이 된다. 지하철 문에 달린 검은 창문을 보며 생각한다. 한강 작가의 생의 갈등은 무엇인가고. 나의 그것은 무엇인가고. 근래 가장 큰 고민은 내 몫의 갈등이 무엇인가에 대한 응답이다. 작가는 모두 자기만의 갈등을 안고 발생한다. 마치 눈동자색 같은 것. 선택의 일이 아니다. 나의 탄생.생의 기록이 쥐어주는 것. 내것은 무슨 색과 형인가고.
일등 직장인을 마치고서. 그것도 예술이었다고 자위하는 저녁이 찾아온다. 샤워를 마치고 책상에 바짝 앉는다. 글을 품은 마음은. 나의 낮을 폄하한다. 그러지말아라고 내내 다독였건만. 배은이가 망덕한 자식이다. 네가 빵과 커피 없이 손가락을 놀릴 수 있느냐고. 예술병 걸린 자식의 목덜미를 잡아쥐고서. 시쳇말로 기강을 잡는다. 너는 두번째야. 글과 비디오를 만드는 시간은 잠을 반납할 수 있을만큼 지나치게 즐겁다. 나는 왜 무용한 것에 마음이 팔리는 동물로 태어나서. 두 개의 인간을 굴려낸다. 지금이 예술이다. 이런게 즐거움이다. 그래서 어쩔건데. 네가 이런걸로 칠백원이라도 벌어본 일이 있냐고. 책이나 읽고 말이나 만들고 그런 일은. 그런 일은 시험공부를 마치고 하라고. 사랑하는 엄마가 누누이 이야기했잖아.
나는 길을 찾고 있는 것인지. 길을 잃고 있는 것인지.
아침에는 사규를 읽는다.
<자기돌봄 휴직. 무급.>
또 또. 읽고있지.
쓸데 없는 것은 그만 읽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