멍멍이도 아닌데
주말에는 멍을
주말에는 멍을 때린다.
정확히는 열여덟시간 정도 잠을 자고 일어나서 멍을 때린다.
회사 일과 쓰는 일을 병행하는 것은
좋아서 하는 일이라지만
머릿속이 쉴새없이 돌아가야 하고
체력도 부치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서 내가 포기할 수 없는 하루가
정오가 넘어갈 때 까지
필요한 끼니만 해소하고 내내 잠을 자는 토요일이다.
오일간의 자극들에 대해서
잠이라는 필터를 댄다.
가라앉힐 것은 가라앉히고
가져갈 것은 늦은 세수를 하면서 생각해두었다가
노트에 적는다.
지난주에 내게는
> 커피철학가
> 작은 생채기도 불편하다
> 여자애가 주인공
이런 개연성 없는
문장이라고 할 수 있는지도 모르겠는 것들만 남았다.
유투브는
지난주에는 유투브를 열심히 했다.
가진 것이라고는 읽고 쓴 경험 뿐이라
책을 소개하는 콘텐츠를 자주 찍는데,
책장 앞에서 어떤 책을 소개하면 좋을까.
골똘하는 시간이 절반이었다.
책 더미를 두어번 바닥에 쏟고
마음에 차는 것들을 골라냈다.
나는 매해 연말마다 책을 골라내어 중고서점에 판다. 그래서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에 비해서
소장하고 있는 양이 많지 않지만,
좁은 방에 책꽂이가 협소한 편이라 앞 뒤 두줄로,
또 책 머리에 가로로 책을 눕혀서 보관하고 있기 때문에 책을 쏟는 사건들이 자주 발생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상태가 좋다고 생각해서 유지한다.
나는 보통 한 권의 책을 재미나게 읽으면
관련 소재나 작가에서 파생된
연쇄독서를 하는 편이라,
두권 세권을 한 번에 묶어서 소개를 하고싶었다.
한 권의 책에서는 하나의 관점만 볼 수 있지만,
연쇄 독서를 하면, 여러권의 관점을 엮어서
나의 생각의 모양을 잡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퇴근하고 애를 써서 네번 다섯번 촬영을 했다.
나름대로 클릭을 부르는 썸네일도 만들어내고 말이야.
아무런 보상도 없는데
그냥 콘텐츠의 기승전결을 빚어내고
나의 견해를 이야기하는 일이 좋았다.
흔히들 이야기하는
자기표현의 욕구. 그것이겠지.
글과 유투브는 그런 맥락에서 닿아있다.
글이 좋은 이유는
사람을 앞에 두지 않고도
정말 많은 사람들에게 나의 이야기를 전할 수 있다는 점인데,
유투브는 그것에 음성, 화면 그런 것이 추가되었다 뿐이지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에 비해서 아직 적응이 되지 않은 지점은
(영원히 적응이 되지 않을 수도 있음.)
그 판의 문법에서
나는 '잔잔한' 사람으로 분류된다.
글의 판에서는 나름 '파격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 ..
(이마저 착각이거나, 판단의 축/관점에 따라 상대적인 것일 수 있다.)
기본적으로 글을 좋아한다는 것 자체가
일단 좀 노잼-진지충 이런 쪽이다보니까
내가 여기서 아무리 날고기어도 ..
유투브 대꿀잼 판에서는
'잔잔해요', '따뜻해요' 와 같은 피드백을 얻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피드백이 싫은 것이 아니다. 단지 그러한 현상을 해석해보았다.)
정규분포도를 떠올린다.
가로축을 잔잔함에 두고
나의 위치를 조정해 놓는다.
(기존의 생각보다 좀더 잔잔한 방향으로.)
더 큰 세상을 마주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유투브는.
탕후루는 취향이
어제는 야심차게 빠른 퇴근을 “계획”했다.
내가 글과 운동 외에 좋아하는 것이 커피인데,
지금은 '서울커피쇼' 주간이기 때문이다.
가을마다 코엑스에서 열리는 커피쇼에 꼭 가고싶었다.
올해 봄부터 말이야.
그런데 주말의 인파를 감당할 자신이 없어서
(너무 많은 인파는 상상만으로 기운이 빠진다.)
그나마 평일인 금요일 오후에 가려고 생각을 했다.
그것이 월요일부터 머리를 싸매가며
야근을 했던 이유였는데 ..
역시 인생은 뜻대로 되지 않는구나.
금요일에는 늦게까지 일을 해야 했다.
계획이 틀어짐에 헛헛함이 스며왔지만
어쩔 수 없지 하면서 혼자서 따뜻한 니싱소바를 먹어야 겠다고 생각을 했다.
요며칠 아침의 커피를 사러 나가면서
겨울맛이 성큼 찾아왔구나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몇 해전에 이 동네에서 정말 맛있게 먹은 니싱소바가 있는데, 그 맛이 겨울마다 생각이 난다.
니싱소바는,
일본 간사이 지방의 음식으로 알고 있는데
청어를 꾸덕하게 건조시킨 것을
간장 베이스의 소스에 살짝 졸여서
온소바 위에 가지런히 올린 국물 면요리이다.
밋밋한 소바위에 청어의 감칠맛이 참 좋다.
혼자 손님은 거절될 수도 있기에
마음을 졸이면서 미닫이 문을 열었는데
밝은 얼굴로 환대해주셨다.
청어의 구석구석을 쪼개어 먹으면서
오래도록 온소바의 시간을 가졌다.
온소바를 먹고 나오는 길에
요즘 유투브에서 그렇게 많이 본 탕후루 가게가 눈에 밟혔다.
내 취향이 아닐 것이라고 생각해서 먹지 않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시도를 해보고 싶었다.
금요일의 치기 같은 것.
반복되는 유투브 청취로
그나마 덜 단 것, 즉, 내 취향에 더 가까울만한 탕후루로
딸기, 토마토, 귤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어쩌면 먹고 싶었던 것일까.)
그 중에 귤 밖에 없더라고.
그래서 반질반질 귤 탕후루를 삼천원에 구입했다.
실험으로 한 알.
믿을 수 없어서 두 알을 먹고.
탕후루는 나와 이별했다.
인생의 큰 경험들로 가치관은 변화하기도 하는데
원초적인 취향들은 참 변하질 않는구나.
아프리카에 가면
1월에는 아프리카에 간다.
코로나 이후로 오랫동안 만료된 여권을 여태 갱신하지 않고 있다가
이 여행은 몇 주 고민하고 확신을 갖고 일정을 만들었다.
(평소에 여행의 욕구가 그리 크지 않다.
웬만해서는 동네마저 잘 벗어나질 않으니..)
코로나가 종식되었는데도,
여행의 욕구가 별로 크지 않은 본인을 바라보며
나는 내가 긴 비행을 좋아하지 않아서 여행이 당기지 않는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내가 선택한 여행은
편도 스물다섯시간 짜리 비행(왕복으로는 비행만 쉰 시간일까.)이더라고.
어쩌면 중요했던 것은 비행같은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의미가 차오르지 않는 것들에 대해서 잘 행동하지 않는 본성 때문이었으려나 생각한다.
아프리카가 선뜻 가고 싶었던 것은
우선 한국에서 교사일을 멈추고 그곳에서 요가강사를 하며 새로운 시도들을 찾아가는 멋진 지인이 한 명 있고
내가 좋아하는 커피콩의 가장 큰 생산지이기도 하고
대자연과 생경한 동식물들이 가득하다는 점이
나의 궁금증에 불을 당긴 것 같다.
> 하이킹을 하고 커피를 마셔야지.
여행 계획의 전부였다.
오랜만에 지독한 이방인이 되고 싶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 사람사는 곳은 다 똑같구나
하는 결론을 얻어올 것 같다고 예상을 해본다.
(내년의 내가 여기에 대해서 뭐라고 기록하는지 지켜보아야 겠다.)
지금 생각으로는
매일 드는 생각들을 글과 영상으로 남겨야겠다 싶은데
한편, 그걸 너무 매일 짜내려고 하면
푹 고아서 나오는 진한 의미를 또 못담아내기도 하더라고.
최근 유투브 채널 운영이 그러했다.
피드에 자주 노출이 되려면 뭐라도 올려야 한다는 조급증에, 당장 할 수 있는 것들을 급하게 쳐내고 나니
오래도록 마음에 차는 것이 많이 생기진 않더라고.
아마 그래서
어떤 날은 단어나 이상한 말을 나열할 것이고
어떤 날은 의미있는 글을 써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을 쓰는 사람에게 다양한 자극과 경험이 주어질 수 있다는 것은 정말로 감사한 일이다.
내가 회사일을 유지하는 이유도 그쪽에 있는데,
넓은 세계(사람, 사건, 세상)를 경험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골똘하고
그 사유의 결과물을 창작에 담아내는 것이 작가의 일이 아닐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설렘을 담아
> 노트와 펜을 챙겨야겠다
여행의 준비물을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