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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누리 Jan 16. 2024

아프리카 로그 01

24-01-14 ~ 15

Q. 여행의 선호가


코로나 이후의 여행은 <코로나로 취소한 비행기표 말하기 대회>로 시작된다.

그때 포르투 가려다가 딱. 아니 나는 그때 그거 시드니 숙소까지 다 취소했잖아. 그러고 내가 아직 미국을 못가봤네.

어째서 본디 정박하려고 했다는 사람은 없을까 쓸데없는 골똘을 헌다. (당연히 있겠지. 일행 중에 없었을 뿐.)


“저는 이제 긴 비행은 안하게 되더라고요.”

(이번 여행을 하면서 거짓말이 되었다. 거짓말을 자주 하는 사람. 바로 나다.)


코로나를 끼고 여권의 만기가 들어찼다. 공항이란 단어만 들어도 분명 마음이 동당거렸는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여권 갱신을 한참을 미룬 이유였다.


여행의 선호가 바뀐다. 여행 자체나 여행지의 매력만으로는 동기가 쉽게 타오르질 않는다. 언젠가부텀 여행으로 일상이 바뀌는 것도 선호하질 않는다. 그대로 뛰고 걷고 읽고 먹고 마시는게 좋아. 내가 자고 먹고 바라보는 공간만 달라지기를 기대한다.

자극적인 새로움은 긴 여정의 한두번으로 충분하다. 러기지백에는 원피스나 손바닥가방이 빠지고 그 자리를 레깅스와 책과 랩탑이 채운다. 사실상 정박이다. 나와 세상의 연결법은 그대로 두고 백그라운드만 바꾸어 버리는 방식이다. 여행의 문법에서 ‘어디에서’, ‘무엇을’ 보다 < ‘누구와’가 중요해진지 오래다.






Q. 어째서 아프리카-1


보여지기보다 조심성이 많은 성정 동물로 치면 초식동물. 스스로 아프리카를 꿈꾼 적은 없었다.

중국만 해도 겁을 잔뜩 먹어버리는 본인이다. 중국 윈난과 네팔 ABC를 몇해 째 이야기하고 있지만 발도 떼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현실적인 나의 위시 여행지는 제주도, 지리산, 일본 그정도가 전부다. 익숙한 곳을 다시 가는 것이 좋더라고. 동네를 벗어나는 것도 피곤해하는 성정으로. 아는 동네에서 아는 것을 먹고 아는 곳에서 자는 것이 좋다.


ex1. 구례에 가면 이왕이면오리를 먹고 구례옥잠에서 잠을 잔다.
ex2. 제주에 가면 도두에서 동태탕을 먹고 토요코인에서 잠을 잔다.


아프리카에 갈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처음 했던 것은 지난해 J이다. 뉴욕에서 원두를 온라인으로 판매하고 있는 그녀는 생두 농장을 찾아 아프리카를 자주 들린다고. 한국에서 잠깐 대화를 나누었다. 한두달 뒤, J는 탄자니아에서 등반을 한 사진을 내게 전송해온다. 연이어 커핑 대회 심사위원으로 참석한 그녀의 사진도. J의 인생에서 아프리카를 끼워 구경했다.


두번째는 메쉬커피 사장님을 통해서이다. 커피의 키읔자만 꺼내도 세시간은 내리 커피이야기만 하는 어른인데, 생두의 산지 이야기를 하면서 결코 아프리카를 빼먹을 수가 없다. 아니 커피도 제철 콩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는지.

그는 비슷한 원두 맛을 유지하기 위해서 철마다 사실은 다른 산지의 생두콩을 공수해서 손님들 모르는 맛과 향의 일관성을 지켜낸다. 커피 이야기꾼의 입을 빌러 농장의 고도와 온도, 사람들 이야길 엿들으며 내딴의 아프리카 생두농장 상상화가 채색되었다.


과연 아프리카에 간다면 커피는 원없이 먹겠구나. 생두 농장의 볕은 쨍하구나. 딱 그 정도의 감각이었다. 반드시 가야지의 마음에는 한참 못미치는.



메쉬커피.







Q. 1월 14일 인천공항에서


오전의 공항에서는 작다고 하면 작고 크다고 하면 큰 사건이 터졌다. 이런 일이 한두번은 아니잖아. 잠깐의 당황을 꼭 쥐고 혼자서 사건을 해결해간다. 침착하게 가능한 방법을 하나씩 시도하고 도움을 묻고 나는 또 해냈구나. 안도감과 함께 스스로에 대한 성취감보단 누구에게 전화하고 싶다는 마음이 먼저 피어오른다. 나는 범인凡人이구나. 홀로 강해질수록 되려 약해지고 싶은 보통의 인간이구나.










Q. 26시간 비행 -경유 2회를 포함하여-


엉덩이로 상공을 가로지른다.

내 생각에 비행을 가장 오롯이 느끼는 신체부위는 엉덩이다. 이코노미석의 시트 모양으로 꾸역꾸역 눌린 엉덩이. 시계열로 짜부가 되어가는 각종의 엉덩이들을 상상하면 그것이 비행이다. 아무렴 1월 14일과 15일간 글쓴 본인의 엉덩이는 태평양을 4710km 인도양을 7190km 아프리카 대륙을 5230km. 도합 1만 7천km 비행에 성공했다. (기립)



비행01: 인천-싱가포르(6시간 35분)

- 남아프리카 와인 다큐멘터리 비디오를 시청했다. 먹고 마시는 것이라면 귀가 곤두선다. 남아공에서 특히 맛나다는 청포도 품종 두가지를 필기했다: 슈냉블랑, 콜롬바드.

- 김환기와 김향안 부부 이야기를 다룬 텔레비전 프로그램을 시청했다. 이런 사랑이 과연 가능하다고.. ? 현실이 소설이고 소설이 현실이지.


(창이 공항 경유)

- 스마트폰 케이스에 끼우는 목줄을 고가에 구입했다. 줄에 무늬가 있는건 0.5불의 값이 더 나가서 온전히 검정색인 놈으로 골랐다. 도난이나 분실을 뒤늦게 대비한다.

비행02: 싱가포르-아디스아바바(9시간 10분)

- 중간 자리에 패킹 되어 숙면.


(아디스아바바 공항 경유)

비행03: 아디스아바바-케이프타운(6시간 30분)

- 이국적인 향과 식감으로 음식이 입에 안맞아야하는데 모든 것이 다 맛있다. 입맛은 대체 언제 떨어지는고.

- 디저트로 와인 일병하고 나니 갖가지 지구인 들어찬 이곳이 추후의 우주선과 별반 다르겠나 하는 안일한 망상.

- 뒷자리에서 빨간 운동화가 튀어나온다. 초점잃은 눈동자 양말로 딛은 두발 소리없는 몸부림을 관찰한다.






기타: 유투브 오프라인

<LaLaLa Love Song> 만이 정상다운로드 되었음.

유투브 어플에는 1996년대 일본 풍경만이..


https://youtu.be/r4_txg_l9ds?si=kuXA_0AVseEoMqzo

26시간의 비행에서 허락된 오직 한 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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