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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떤 동물 좋아해?
어떤 동물 좋아해? 한국에서는 조카_서윤과 나누었던 대화인데 (*참고: 조카_서윤은 토끼를 가장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하얀 토끼. 3세 무렵 동화책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이듬해 엄마와 실내 동물원에 가서 직접 보았다고 한다.) 이곳 아프리카에서는 스몰톡 인기 주제 베스트 파이브에 꼽힌다.
동물이 지천에 있다. 한국-온리 경험으로 비추어서는 그럴 수가 있나 싶지만. 뉴욕을 닮은 도심에서 십오분만 드라이브하여도 (이건 정말 과장이 아니고) 펭귄이나 물개, 임팔라 같은 것들을 심심찮게 마주칠 수 있다.(진짜다.)
특히 사파리로 유명한 크루거 네셔날파크가 있는 요하네스버그에서 이 질문은 더욱 중요해진다. 이 도시의 많은 사람들은 얼룩말이나 독수리, 몽구스 같은 동물을 직접 마주친 적이 있다. 그래서 본인이 정말 어떤 동물을 좋아하는지 대답할 수 있다. 직접 경험만이 할 수 있는 대답의 진실성이 있다.
며칠간 본인과 눈을 맞추고 말을 튼 사람들에게 비슷한 질문을 해본 바, 동물의 선호는 대개 평화롭고 편안한 초식동물파와 액티프하고 화려한 육식동물파로 나뉜다. 그리고 가끔 특정 새나 처음 듣는 이름의 무엇을 언급하는 사람들이 있다.
질문을 하면 맞질문이 들어오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도 대답을 만들어 보았는데, 처음에는 내가 딱히 좋아하는 동물이 없어서 조카_서윤의 동물을 빌렸다.
(좋아하는 동물에 관한 1/17 까지의 대답)
"토끼를 좋아해요. 저의 조카가 가장 좋아하는 동물이거든요. 특히 하얀색 토끼!"
그리고 짧은 며칠 크루거에 머무르며 다양한 동물을 경험한 뒤로는, (박수)내게도 좋아하는 동물이 생겼다.
(좋아하는 동물에 관한 1/18 부터의 대답)
"기린이요."
"기린은 초식인데 무적이에요. 기린이 싸우는 방법을 아시나요?
기린은 목을 휘돌려서 머리의 타격감으로 상대를 공격해요. 그 파괴력이 왠만한 동물의 뼈는 아작내어버리는 정도이기 때문에. 동물의 왕 사자마저도 전략적으로 대여섯마리가 한번에 공격하지 않는 이상. 기린을 대적할 수가 없죠. 과묵하게 나뭇잎을 뜯으면서 다른 동물을 해하지 않고도 가장 강하다는 점. 그 점이 정말 멋져요."
나는 기린에 관해서는 리액션 할 틈을 주지 않는다. 물꼬를 튼 기린의 찬양이 또 이어진다.
"게다가 긴 목으로 가장 멀리, 가장 넓게 보는 동물이기도 해요. 기린은 다 보고 있었죠. 알고있었지만 소리내지 않았어요.
이렇게 강하고 시야도 넓으면서 성실해요. 선 채로 5분씩 끊어서 잠을 자요. 본인의 생명에 지극히 성실합니다. 저는 그래서 기린이 좋아요."
좋아하는 동물에 관한 대화. 언제 또 맘껏 나눠볼 수 있을까.
Q. 사자 타투를 품은 사람을
크루거 둘째날 사륜의 동행에는 주머니가 많은 반바지에 부리가 저기까지 나와있는 카메라, 단호한 눈빛으로 할 말만 내뱉는 독일인 한 명과 함께할 수 있었다. 그녀는 가장 뒷 자리 창가(실제로 그 차에 창문은 없지만, 가장 가장자리를 이르겠다.)에 앉아서 무엇을 표적하는 눈빛으로 바깥을 주시했다.
크루거는 정말 야생동물이 서식하는 넓디넓은 초원 그 자체인 터라, 사륜의 운전자와 탑승객이 끊임없는 주행 중에 직접 뜀박질 같은 움직임을 포착해야지만, 그 동물을 볼 수 있었다. 아마 시력이 밝아 사냥이나 도망을 잘 하는 조상을 가진 사람이라면 크루거에서 아주 많이 활약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예상했겠지만) 아무런 동물도 포착하지 못했다. 본인이 과학문명이 발달한 현대에 태어난 것이 생존에는 유리했구나 생각했다. 아마 수렵의 시대에 태어났다면 이른 나이에 굶어죽거나 맹수에게 잡혀갔겠구나 나는. (이미 그렇게 몇 차례 사망한 후 여기에 태어난 것일지도 모르겠다.)
"뒤로. 뒤로 가줘요."
맨 뒷자리 그녀는 나와 반대였다.
어떤 명쾌한 안광이 느껴지는 시선으로 수풀이나 지평선 어드메의 검은 움직임들을 몇차례나 언급해냈다.
그리고 그녀의 활약 덕분에 수풀 주변을 배회하는 *암사자 두마리와 수사자 한마리, 그리고 가지가 세로로 쪼개진 나무를 타는 표범을 나의 두 눈으로 볼 수있었다. (*이 동물들은 크루거에서도 희귀하기로 다섯손가락 안에 꼽히는 동물로, 며칠을 사륜 배회해도 한 번도 못보는 사람도 매우 많다고 한다.) 이어서 그녀는 흙으로 만든 구멍에서 잠시 바깥을 관망하러 나온 몽구스와 낮은 나무 그늘 사이에 숨어있던 하이에나도 찾아내기에 이르렀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과연 망원경을 망막에 이식한 인간일까. 지구에 어떤 멸종 위기가 와서 눈이 밝은 사람만 생존한다면 저 사람은 반드시 살아남겠구나.
그렇게 일몰이 다가와 롯지로의 이동을 채근했다. 그리고 그녀와 함께한 한나절 사륜의 피날레는 암사자였다. 낮잠을 자다가 일행을 잃어 울음을 내고 있던 암사자를 마주친 것이다.
부리가 긴 카메라가 쉴 새없이 찰칵거린다. 오직 사자만을 찍었다 그녀는.
암사자는 팬 서비스라도 하듯 우리의 사륜을 한 바퀴 빙 둘러 지나갔고, 야생 사자의 냄새나 털결 울음소리 같은 것을 가까이에서 경험할 수 있었다.
"놀라운 경험이다. 이게 가능한 일인가."
나는 롯지에 도착해서 샤워를 하고 늦은 끼니를 챙기면서도 신통한 그 사람을 생각했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그녀의 신통함에 관한 약간의 비밀이 풀렸다.
"팔에 사자 타투가 있어."
반소매 아래로 사자 타투가 일부 삐져나와 있었다. 그랬구나. 사자를 좇는 사람이었구나.
그래서 우리에게 사자가 다가왔구나.
Q. 제일은 드라이브
여럿이 함께하는 여행이면, 늘 하는 질문이 있다.
"하루 중 무엇이 가장 기억에 남아?"
같은 일정을 공유한 동행끼리도 가장 인상적인 순간이 늘 다르기 마련이다.
며칠의 크루거 경험의 종결이 다가오던 무렵에, '그 질문'이 아침식사 테이블을 돌았다.
코뿔소, 사자, 노을, 초원 ...
베스트 씬은 제각각. 그것을 묘사하는 말밥도 참으로 다양하다.
(이럴때마다 사람은 타인을 절대로 이해할 수 없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게 베스트 씬은 드라이브였다. 사방이 초록인 무한한 길을 끊임없이 달리는 경험.
정수리를 타고 흐르는 자연의 공기, 볼을 스치는 잔머리, 눈 앞에 영원처럼 펼쳐지던 초록의 사면.
가장 긴 드라이브를 한 날, 나의 iCloud 메모장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남았다.
2024년 1월 17일 오후 5:52
나는 많이 아름다운 자연을 볼 때면
이 곳에서 생이 끊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다.
바람으로 흙으로 나무로 돌먼지로
삶은 유한하다. 몇 안되는 진리.
가족 사랑 돈 명예 여행과 취미
각자의 의미를 찾아 헤메는 이 여정의 끝에는
늘 공평한 죽음이 있다는 사실이
스스로가 특별하지 않다는 진실을 마주할 때
나의 온 마음에 평화와 행복이 차오른다.
나는 수시로. 수시로 우주를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