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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봉 UXer May 22. 2024

책 듣기

요즘은 눈으로 읽는 책보다 귀로 듣는 책이 더 많아지고 있다. 물론 어려운 책, 눈으로 확인해야 할 시각적인 정보가 있는 책들은 무리다. 지난 주말에 양자역학과 관련된 책(나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 세상)을 듣다가 도저히 주의를 기울일 수가 없어서 포기하고 대신 읽다 만 세계명작시리즈를 꺼냈다. 주홍글씨, 노인과 바다를 이번주에 읽었다. 예전에 읽었어도, 뻔히 아는 줄거리라도.. 다시 읽으면 다시 곱씹는 여운이 있다. 


책 듣기에 익숙해진 것은 아무래도 야외활동이 많은 라이프스타일 탓이다. 평일에는 대중교통에서, 주말에는 걷기나 등산에 소비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책 듣기가 잘 맞는다. 물론 아직까지는 음악을 듣는 시간이 더 많다. 음악은 중독성 강한 약물과 같아서 끊을래야 끊을 수가 없다. 어제 밤에는 피터 그랙슨이 연주한 바흐의 첼로곡 모음(편곡한 버전)을 들었는데 항상 컨템포러리한 음악만 듣다가 모처럼 듣게 되는 클래식이라서 약간의 저항이 있을 줄 알았지만.. 왠걸. 너무 좋았다. 바흐의 원곡 자체도 훌륭했지만, 피터 그랙슨의 현대적인 해석도 굉장했다. 


내 방에는 500여권의 책이 있다. 대부분 20, 30대에 산 책들이다. 대부분이 인문학 서적들이고 소설, 디자인, 경제경영 책들도 제법 포함되어 있다. 절반 정도는 다 읽지도 못했다. 전자책으로 전환된 뒤부터는 종이책은 거의 읽지 않는 것 같다. 종이책 500권이 차지하는 부피는 상당한 편이다. 읽지도 않는 책들이 공간만 차지하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알라딘 중고서적에 팔던지, 어디에 기증을 하고 싶은데 한번은 기중하는 절차를 알아봤으나 생각보다 까다로워서 아직 실천에 옮기지는 못하고 있다. 


요즘 아이들은 왜 책을 읽지 않을까? 아이 셋 중에서도 가장 책을 안읽는 둘째 아들에게 이를 물어봤다. 자기는 궁금한 게 있으면 유튜브에서 본단다. 책은 교과서, 참고서로도 이미 충분하다고 한다. 한번은 거금의 용돈을 상금으로 내걸고서 이문열 삼국지 10권을 읽으라고 준 적도 있었는데, 몇년째 아들방의 책장에서 먼지만 쌓이고 있는 중이다. 책이 주는 지성은 유튜브에서 보는 압축된 지식들과는 차원이 다른데 말이다. 그런데 이를 뭐라 설명해야 좋을 지 모르겠다. 글자를 읽고 의미를 해독하고 상상하고 기억에 담는 과정이 갖는 중요성을 유튜브 영상의 찰나적인 흥미, 주의 끌기와 비교해서 뭐라 말하는 게 좋을까? 


안타까운 일이다. 삼국지를 20번 가까이 읽은 나로써는 아들이 꼭 그 가치를 알아줬으면 좋으련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이미 인터넷과 멀티미디어에 친숙해진 아이들은 책의 세계로 쉽게 넘어오지 않는다. 삼국지를 10번 이상 읽으면 비유할 대상을 등장인물 중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살면서 겪는 무한히도 다양한 양상들과 마주치는 군상들을 하나의 세계관에 속하는 사건과 인물들에게 투영할 수 있다는 것은 문제를 단순화시켜서 사고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가령... '이 미방같은 녀석 같으니라구. 너의 축복받은 태생은 너를 치열하지 못하게 막았던 장애라는 점에서 축복이되 축복이 아니었으며, 네가 늘 선택했던 그 적당한 타협과 두루뭉실한 판단들은 결국에 너를 남들의 야비한 야욕에 휩쓸리도록 이끌었고, 네 형이 갖는 겸손과 온유함조차도 너를 구원하지 못했다' 이건 너무 과하다;; 


다음 순서는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다. 도스예프스키, 괴테로 시작한 고전 명작 읽기가 이제 중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이미 아는 이야기 전개, 이미 아는 결과와 그 교훈은 고전 명작을 선뜻 펼치지 못하게 하는 이유로 작용하지만 막상 초반 10여장만 넘어가면 명작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AI, 뇌과학, 양자역학에 대한 책들도 느리지만 천천히 읽어나가고 있다. 내가 좋아서 읽고 있는 것이니 책을 덮을 그날까지는 서두를 필요도 없다. 총균쇠는 10여년째 읽고 있는데 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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