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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성봉 UXer May 28. 2024

여행의 여운

아무 생각이 없었는데 문득 한달전에 다녀온 스위스 생각이 갑자기 났다. 어제 통신사에서 로밍 기간이(한달이 기본임) 끝났다는 문자메시지가 와서인지, 점심에 바나나를 먹다가 스위스 트래킹 도중 점심마다 먹었던 바나나가 생각나서인지 모르겠다. 



사무치게 그리운 정도는 아닌데, 지난 한달간 '다시는 혼자 해외여행 안갈거야'하던 마음이 조심스레 접힐 정도로 좋았던 기억과 느낌들이 되살아난다. 


일단 스위스니까 가능했던 그 멋진 풍경들. 어제 저녁 강의때 만났던 파견나간 팀장 때문이다. 그녀 동생이 독일에 살다가 얼마전 귀국했는데, 마지막 관광지로 선택했던 게 스위스였단다. 건조한 감정을 듬뿍 담아 '그럴만 하지'하고 대꾸했었는데, 집에 와서 자리에 누우니 당시 질리도록 봤던 풍경들이 새삼 떠오른다. 그 때문에 한동안 잠을 못이뤘다.




하지만 눈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던가.. 유튜버 차박차박님도 4월에 돌로미티 갔다가 나랑 비슷한 경우를 당하고 이탈리아 남부로 행선지를 바꿨던데.. 눈쌓인 길은 트래킹의 적이다. 모래밭, 자갈밭, 현무암밭, 진흙길, 해안길을 다 돌아다녀봤지만 (종아리까지 발이 빠지는) 눈밭처럼 체력소모가 극심한 길은 없었다. 




생각해보면 혼자 바지런히 돌아다녔다. 그린델발트 인근 트래킹 코스, 루체른, 리기산은 물론 멀리 남부 스위스와 이탈리아 코모까지 갔다 왔으니.. 여행은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모르고 가도 생각을 유연하게 가지면 행운이 다가오던데? 


루체른에서 스위스 남부까지 기차로 1시간 밖에 안걸린다는 것도 알트골다우역 플랫폼 전광판을 보고 알았다. 그래서 다음날 행선지를 변경했던 거고, 스위스 남부에서 이탈리아 코모까지 걸어갈 수 있다는 것도 열차안에서 지도 보다가 알았다.


유연함과 변덕스러움의 경계를 잘 지켜야 한다는 게 문제긴 하다. ㅋㅋ




며칠전 일요일에도 산에 갔다 왔다. 평소보다 빠른 템포로 다녔는데도 그다지 지치지 않았다. 점심 전에 집에 가서 얘들 밥 챙겨줘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작용했지만 안쉬고 산길 7km를 휘적 휘적 다녔음에도 땀 좀 흘린 것 외에 체력게이즈가 거의 그대로인 것은 스스로도 놀랄만한 일이다. 현재와 같은 라이프스타일을 갖기 전이었다면 엄두도 못낼 일이다. 


체력이 좋아졌다고 명산을 찾아다니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하루 빨리 제주도 올레길을 다시 가고 싶다. 물론 한국의 산은 정말 매력적이다. 내가 가본 산이라봤자 우리나라를 제외하면 대만, 이탈리아 돌로미티, 오스트리아 잘츠카머구트, 스위스 그린델발트/리기산 정도이지만.. 한국의 산에는 나무와 숲들에 둘러쌓인 길들이 만들어 낸 아늑한 느낌이 더 큰 것 같다. 스위스의 뻥뚫린 등산길, 양옆에 초원을 보면서, 고개 들 때마다 거대한 암벽들을 바라보면서 걷는 길은 어떤 면에서는 질리는 점도 있었는데 돌이켜 기억을 회상해보면 나름의 맛도 있었다. 


둘 중 하나만 선택하라면 무조건 한국의 산이겠지만.. 시야가 뻥뚫린 산행이 주는 매력도 분명 있는 것이다.




혼자 하는 여행의 고독함에 질려 있던 한달이 지나가자 정겨웠던 기억과 향취들이 스물 스물 싹을 틔운다. 


여행이란 참 희안하다. 당시의 경험도 경험이지만, 돌아온 다음에 곱씹게 되는 기억도 삶에 영향을 미치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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