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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드빈 Jun 10. 2024

나는 행복한게 좋다

싫은 사람이 어디 있을까

내 이름의 뜻은 '웃음을 읊다'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대학생 시절 한자 개명을 한 것인데, 내 의견은 들어있지 않더라도 확실히 이름을 바꾸고 어두웠던 청소년 시절을 벗어나 나름 사람 구실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인생이 막 풀리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사소한 일 하나에도 '역시 이름을 바꾸니 내가 생각하는 나의 인식이 달라졌구나'를 느끼게 되었다.


나는 행복한게 좋다.

행복이라는 의미, 삶, 인생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악착같이 일을 하며 돈을 벌고, 불리고 하는 행위 역시 살아있는 동안에 조금이라도 행복한 환경을 갖추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추구하는 인생과 다르게 현실은 썩, 좋지 못하다. '그간 행복했던 일이 뭐가 있을까' 오늘 문득 생각을 해보았다. '와 행복해 죽겠다' 싶은 일이 있었나, 서른이 넘은 시점부터 내 표정은 무념무상 그 이상이 아니다. 그저 그런 어른이 되어서 실망했던 것일까, 365일 회사에 나오며 돈을 벌어봤자 모아지지 않는 한줌 모래알 같은 급여를 받아서 그럴까. 타향살이를 해서 고향이 그리워져서일까.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나는 보통 이러한 문제를 사회에 있다고 본다.


초-중-고를 지나 대학을 다니고, 곧장 취업을 하지 못하면 인생의 패배자라고 본다. 나이 서른에 부모님께 손벌리며 집에 붙어 살며 매일같이 나가 노는 사람을 보며 인상을 찌푸린다. 쟤는 그 나이 먹어서까지 부모 등골 뽑아먹으며 언제 정신차릴까. 소위 말하는 캥거루족이 되는 것인데, 이게 과연 나쁜 일일까 싶다.


요즘이야 의무교육 기간에도 자유롭게 직업탐색을 하고 진로를 찾는 행위가 인정받는다지만 우리는 너무 치열하게 살고 있는 것이 아닌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진짜 내가 원하는 것을 모르고 남들 하라는대로, 하는대로 사는건 아닐까?


결국 살아있음 자체가 부담이 되는 상황에 놓여질 것이다. 

그러니 삶의 의미를 찾는 시간을 들여야 한다는 것에 동의한다. 


학창시절, 윤리시간에 이런 숙제가 나온 적이 있다. 선생님께서는 방학기간 내에 '나를 찾아 떠나는 여행'이라는 주제로 노트 한 권을 써오라고 했다. 당시에는 하루종일 학교에 있는데 나를 찾아 떠나긴 어딜 가나 싶은 마음이었다. 방학이라고 해서 마냥 쉬는게 아니라 보충학습, 선행학습이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방학이 끝난 뒤에 제출한 내 '나찾떠'는 반절을 채우지 못했고, 그마저도 친구랑 시내에 가서 놀았다. 어릴때 나는 이랬다~ 정도의 내용밖에 들어있지 않았다. 평범한 가정에서 자라왔지만 자영업을 하는 부모님 덕분에 가족여행이라는 것도 다녀본 적이 없고,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친구들과 여행도 갈 엄두도 못냈다.


다만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때 마냥 집에 있으면서 늦게 일어나고, 늦은 아침을 먹으며 티비를 보는 것 자체가 나에겐 행복이지 않았을까 싶다. 조용히 혼자 있는 집에서 티비를 보다가, 컴퓨터를 하다가, 낮잠을 자고 일어나 퇴근한 엄마와 저녁을 먹고 다시 티비를 보는. 굉장히 평범한 일상이지만 지금은 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일엔 거의 자정까지 일을 하며 토요일도 근무, 일요일엔 밀린 집안일을 하느라 여유시간을 두지 못한다. 내 직업을 원망해야지. 가난한 한마리의 일개미로서 나태를 부리는 것이 죄악이다 싶은 입장이다. 나라고 이런 삶을 살 줄 알았던가!


하지만 이러한 상황에서도 나는 행복할 것이다. 물론 그 행복을 찾아 떠나야 한다는 것이 문제이지만 30년 넘게 살아온 사람의 인생이라면 이것 역시 극복할 수 있는 과정 중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결국 나는 언젠간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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