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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이빈 Sep 13. 2024

고통은 고통일 뿐

프랑스의 철학자 폴 리쾨르는 삶의 고통에 대하여 하소연하라고 말했다. 세부적으로는 '고통을 인생의 시련이자 가르침이라 말하지 말라! 고통은 고통일 뿐이다. 인생에 고통이 찾아왔다면 하소연하라. 그것이 건강하다' 라는 말을 했는데 참 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흔히 노력은 왜 고통스러워야 하고, 고난과 역경을 이겨내야만 좋은 것을 쟁취할 수 있는지 항상 의문이었다. 그리고 이 말을 듣고 다들 똑같이 생각하는구나 싶었다. 아파야 청춘이고 젊을땐 사서 고생, 그게 경험이라는 어이없는 말. 경험이고 자시고 그런 고통은 본인이나 겪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불만족, 불평등의 원인은 능력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어떻게 보면 학력이나 학벌보다 능력을 우선시해서 대우를 해주는 게 더 맞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학력도 학벌도 능력으로 치부해버리는 사회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계급사회가 된 것이다. 


사람들이 일을 하는 이유는 '뭔가 이루기 위해 돈을 벌 수 있는 수단'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이 제법 있다는 조사 결과를 봤다. 사회초년생 때는 내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일에 매진했다면, 사회 경력 3-4년차가 넘어서면 이제는 일을 하고 싶지는 않지만 돈은 벌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바뀐다. 확실히 맞는 말인게 나 역시 일을 하는 이유는 돈이라고 최근까지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곰곰히 따져보면 내가 원하는 직업을 가졌을 때는 돈보다 내 커리어와 재미가 우선이었다. 돈을 벌지 못했기 때문에 그만 둔 경우로, 아마 돈까지 따라왔으면 제법 오래 일을 했었을거다.


이 세 가지 내용을 돌이켜봤을 때 결국 대한민국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집게사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게 돈이 있어야 한다. 정신적 만족을 얻으면 되는게 아니냐고 반문하는 사람도 있겠다만.. 굶어 죽으면 무슨 소용이겠냐 싶다. 나는 첫 직업을 가지고 나서 천만원을 모아 무작정 서울로 상경했다. 그리고 6년 동안 정신적 만족을 얻을 수 있는 직업을 가지고 제 2의 인생을 살았다. 6년이 지난 나는 최저 시급도 받지 못하는 월 160따리 인생을 살고 있었고, 영양실조와 들고 올라온 돈의 일부인 600만원만 가지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돈은 월세 보증금으로 들어갔으니, 내가 쓸 수 있는 돈은 한달에 160만원. 타향살이를 하는 내가 버티기엔 돈이 부족했다. 이미 고정금이 달에 80 이상 들어가는 상황이었고, 야근을 밥먹듯 했으니 택시비와 식비로 남은 돈을 다 썼다. 결국 내게 남은 것은 아무것도 없는 것뿐만 아니라 마이너스였다.


돌이켜보면 6년이란 시간은 내게 삶의 즐거움을 알려주기도 했지만 꽤나 고통스러웠다. 하지만 주변에 이야기 해도 '야, 나도 힘들어'라는 말만 들었다. 다 그렇게 사니, 괜한 말은 하지 마라는 말이었겠지만 힘듦을 사회구조적 문제가 아닌 자신의 문제로 치부해버리는 것에 염증을 느꼈다. 결국 내가 더 많은, 좋은 커리어를 쌓지 못했고, 올라가지 못해서 적은 돈을 받으며 일을 한 것 뿐이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젊을 때 고생은 사서 고생이라는 것을 몸소 실천했던 상황이다. 


그래서 생각했다. 모든 것이 나의 문제인 이 사회에서는 살아갈 수 없겠다. 그렇다면 내가 떠나야지. 아무도 없는 곳에서 혼자 지내고 싶다. 모든 구조적 현상이 사회적 문제라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나만 당할 수 없지 혹은 어차피 변하지 않을 거니까라는 마음으로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세상에서 살고 싶다. 우리는 서로에게 너무 인색하고, 자신에게 인색하다. 이해하고 배려하라는 것이 아니다. 그저 나의 상황을 말할 수 있는, 말해도 약점이 아닌 세상에서 그저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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