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포 시절, 분열을 어떻게 했던지간에 나의 외모, 신체 등 모든게 강제적으로 내게 부여된다. 미의 기준이 높아짐에 따라 외모를 꾸미기도 하고, 남들에게 멋지다는 소리를 듣기 위해 몸매를 가꾸기도 한다. 그렇지만 이미 만들어진 것은 변하지 않는다.
누군가는 이렇게 얘기할 것이다. '내가 이런 상황에서 나고 자랐기 때문에 원래 잘 할 수 있는 것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살아만 가는 것'이라고. 인생도 이미 정해져있기 때문에 아등바등 살아도 더 나은 상황을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다. 대표적인 예로 흙수저, 금수저 등을 제시할 수 있다. 누군가는 부자의 자녀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부족함 없이 자라며 자신이 하고 싶은 모든 것들을 할 수 있는데, 누군가는 돈도 없는데 왜 태어나게 했냐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한다.
나 역시 이런 생각을 많이 했다. 유년 시절 발달에 썩 좋지 않은 가정환경이었고, 커서는 원하는 직업을 가지지 못하고 취업 전선에 뛰어들어야 하던 상황이었다. 계속해서 남들과 비교하니, 이럴거면 왜 낳았냐 하는 말이 속으로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저 그런 어른으로 자라 이렇게 돈을 벌고 있지만 큰 명예나 성공은 이번 생애 이루어질 수 없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소시민처럼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의 삶을 오롯이 책임져야 한다. 정해지지 않은 삶을 사는 자유로운 존재이기 때문이다. 단순히 집안이, 상황이 좋지 않다고 해서 내 삶 자체가 억압되는 것은 아니다. 극단적으로는 '나'라는 존재 자체를 존재할 것인지, 존재하지 않을 것인지를 선택하는 것도 나의 몫이다. 그러니 외부 요인이 아닌 '나'의 가능성, '나'의 잠재력을 믿고 삶을 나아가야 한다.
이것을 반대로 말한다면 원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고, 도전하지 않으면 실패할 일도 없다. 그냥 그렇게 사는 것이다. 꿈이니 목표니 하는 것들이 의미가 없다는 뜻이다. 살아있으니까 살아가는 것뿐. 그리고 누구나 이렇게 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고, 초월적인 생각을 하는데, 그것을 억제해 나를 더 나은 나로 만들 수 없는 환경을 제공하면 아마 좋지 않은 결과가 나올거다.
결국 사람은 사육당하는 입장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신념을 가지고 '나'라는 존재를 확립해 자유로운 삶을 살기를 바란다. 그래서 도전하고, 꿈꾸고, 계획해 실패와 좌절을 겪으면서 더 나은 인생을 위해 노력한다.
선택한 자유를 회피하지 말자! 물론 이게 쉬운 일은 아니다. 헬스장을 등록했다 - 가긴 가야 하는데... , 시험이 코 앞이다 - 하긴 해야하는데..., 라는 식으로 벗어나버리면 안된다는 것이다. 이후에 발생하는 결과는 오롯이 나의 책임이 된다. 시험에 떨어지고, 건강이 안좋아지는 것처럼 말이다. 결국 '나'라는 존재와 인생은 행동을 통해 주어진다는 걸 알아야 한다. 생각했다면, 계획했다면 움직일 수 있는 사람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