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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경 Feb 07. 2024

차라리 혼자 하는 게 나았을까?

소통 비용을 넘어서는 효율을 낼 수가 있는 걸까

채용과 온보딩은 시작에 불과한 것을


못할 것만 같았던 S급 인재들의 오퍼 승낙을 받고, 온보딩 과정을 거치며 훌륭한 팀원들이 팀에 화기애애하게 녹아드는 모습을 보니 이제 다 된 것만 같았습니다.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몰려든 일들이 이제는 저절로 곱게 n분의 1씩 나뉘어 팀원들에게 갈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어림도 없는 생각이라는 것을 알아채는 데는 이번에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습니다.



0명과 1명의 차이


실무진이 0명일 때와 1명일 때는 완전히 다른 세상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소통 비용'의 무시무시한 파도를 맞으며 온몸으로 깨닫게 됐기 때문입니다.


프리랜서로서 실무를 진행할 때 제가 작업하던 방식은 이러했습니다.


'소소하고 사람 냄새나지만, T자 구조에 중정이 있는 웅장한 신전을 제작해 주세요.'와 같이 간결한 요구사항을 들으면, 3D 툴을 이용해 큰 구조를 잡고 레퍼런스를 보내 초안 컨펌을 받습니다.


초안이 조율되면 그대로 디테일을 잡아 중간중간 작업을 공유드리고 피드백을 받아 작업을 완성했습니다.


그림으로 그려진 것이 입체적으로는 딱 맞아떨어지지 않더라도, 360도로 돌렸을 때 가장 그림의 느낌이 살 수 있는 형태로 디자인을 매만져 전달드리곤 했습니다.


그랬기에 회사에 들어온 이후로도 이러한 흐름으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3D 모델러가 이렇게 작업을 하는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입사한 팀원들은 직무 간 소통에서 누락되는 것이 없게, 전문적으로 잘 짜인 기획서와 디자인, 설계도를 원했습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3D를 제작하기 전에 정확한 설계서와 자세한 설명이 필요한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게임회사든 애니메이션 회사든 3D 모델러가 재직하는 기업에서는 기획자와 시나리오 담당자가, 필요한 공간에 대한 기획과 그에 대한 설명을 자세히 해서, 세부적인 디자인을 해주실 컨셉아티스트 분께 넘겨드리고, 일종의 조도와 설계도가 완성되면 모델링에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기 때문입니다.


자취생이 먹던 메뉴 그대로를 집들이 손님상에 낼 생각을 하고 있던 격이었습니다.


저보다는 오히려 새로 들어온 팀원들이 황당할 상황이었기에 저는 부랴부랴 기본적 구색이라도 맞추기 위해 업무 요청 양식을 만들고 스스로 설계도나 컨셉아트를 그려 팀원들에게 전달하기 시작했습니다.



전체적인 업무량이 5배는 는 것 같다


팀원들은 이전보다 훨씬 편해졌다고 피드백을 주었지만, 유관업무 담당자들은 족히 5배는 늘어난 업무량으로 비상이 걸렸습니다.


PD팀으로부터는 업무량 조정이 필요하다는 아젠다로 미팅 요청이 들어왔고,


저도 혼자서 전작업을 끝냈을 만큼의 시간보다 훨씬 많은 업무시간을 팀원들의 작업지시서를 쓰는데 보내야 했습니다.


칸반보드 ‘to-do’ 란에 쌓인 말도 안 되는 양의, 종류도 다양한 작업 지시서들이 머리를 지끈거리게 했습니다.


생각지 못했던 ‘소통 비용’의 추가를 처음 맞닿뜨린 저는 생각보다 큰 비효율에 크게 당황했습니다.


일을 나누기 위해 사람을 채용했는데 그 때문에 다른 직무의 분들을 또 채용해야 할 판이었습니다.


그럼 디자인할 사람은 또 그에 대한 기획서를 요구할 것이고… 머리가 아파졌습니다.


진짜 다 포기하고 싶을 정도로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감이 오지 않았습니다.


내가 답도 없이 일을 벌여놨나?


이럴 거면 그냥 한 가지 직무를 혼자 다하는 풀스택 담당자들을 더 정확히 모집하는 쪽으로 JD를 바꾸자고 할 걸.


괜히 팀을 나누어 전문성을 강화시키자고 했다.


스스로 불러온 재앙을 해결하지도 못한 채 후회만 하고 있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 겪어보는 패닉을 혼자서 진정시키는 과정은 고통스러웠고 도대체 세상에 생겨나는 수많은 조직들을 처음 세팅하는 사람들은 이 기분을 다들 어떻게 이겨내는 건지, 이게 맞는 건지 혼란스러울 정도였습니다.


결국 저는 저의 잘못된 선택으로 수많은 사람들의 추가근무 시간만 늘린 죄송스러움에,


밤을 새우고 제안서를 작성하여 그룹장님께 미팅콜을 드렸습니다.


참담한 마음으로 작성한 제안서의 제목은 아래와 같았습니다.


조직 개편안 롤백 제안서



제가 잘못 판단했습니다. 죄송합니다.


이 문장을 최대한 객관적 데이터들과 논리에 입각해 서류를 작성한 뒤,

이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부드러운 초기화가 가능할지에 대한 대책을 정리해 무거운 표정으로 발표를 마쳤습니다.


크게 꾸지람 들을 것을 예상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자 곧 그룹장님이 말문을 여셨습니다.


그건 당연히 일어나는 일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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