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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경 Feb 09. 2024

"놀랄 것 없습니다. 당연한 일이에요."

장기적 효율을 위한 단기적 비효율

"장기적 효율을 위한 단기적 비효율은, 시스템을 혁신하는 과정에서 거의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이에요.


리더십이 바뀌는 시기나 정책이 바뀌는 시기든 시스템을 바꾸는 시기든 그건 온 조직이 서로서로 감수해 주어야 해요.


피해를 준다고 생각할 것 없어요.


만약 pd팀에서 비슷한 이유로 비효율이나 병목이 일어난다면, 그 때는 또 3D팀에서 감당해줄 수 있는 부분들을 같이 감당하며 그 비효율적인 기간을 버티게 도와주는게 맞겠죠.


새로운 것을 적용한 뒤 그에 맞는 최적의 상태를 찾아가는 과정이 한번에 완벽히 되는 것이 오히려 더 비현실적이니까


시행착오를 당연하게 여기고, 가장 최적의 상태를 찾아봐요."


저의 잘못된 판단이 남들에게 광역으로 민폐를 끼치고 있다는 생각에 어찌할 줄 모르고 혼자 패닉상태에 빠져


고개 숙여 몇번이나 사과드린 다음 반드시 원상복구하겠다고,


이제 진짜 저의 한계와 무능함을 아셨으니 이제 그만 매니저 자리에 오래 두시려는 생각은 부디 거두어주시라고


사정할 생각 뿐이던 저로서는 생각지도 못한 피드백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한 코칭인데


당시로서는 답이 없는 막다른 길에서 sos를 쳤더니 알아서 길을 뚫어보라는 답변만 주시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습니다.


저로서는 제가 정말 이제는 한계라고, 더는 정말 능력 밖이니 그걸 인정하고 저를 대체할 인재를 찾는데 더 도움을 달라고 온몸으로 백기를 들며 나아간 상황이었는데


'별 문제 없으니 계속 해보세요.' 라는 답변만 차갑게 받고 돌아왔다고 느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막막해도 일단 결책은 찾고 무너져야 해


하지만 지나고보니 그 상황를 담담하게 바라보고 주신 피드백 덕분에 어느 정도 이성을 찾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중에서도 ' 당연한 일이다.', '죄책감 가질 일이 아니다.' 라는 피드백은, 냉정했던만큼 더 안도감을 주었습니다.


단순히 저를 위로하시고 진정시켜주시기 위해 하시는 말씀이 아니라. 진심으로 이 상황에 문제가 없다고 느끼신다는 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차가운 피드백으로 머리를 식힌 덕분인지 1on1에서 돌아온 저는 심호흡을 하고 빈 문서를 열 수 있었습니다.



'침착하게 새 시스템에 맞는 최적의 상태를 찾아보기...'


떠오르는 생각들을 형식없이 글로 적어보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처음에 팀을 나누고자 한 이유가 뭐더라?


나누어야 원활한 채용 가능하니까.


그리고 채용 이후로도 각자의 영역을 더 빠르고 전문성있게 할 수 있게 될테니까.


그래서 그 문제들은 해결이 되었나?


해결이.. 어? 되었다.


실제로 이전에 비해 훨씬 빠른 속도로 탑 탤런트들이 모집되었고,


그 결과 순 실무시간만 놓고 보면 더 빨라졌다.'


생각들을 차분히 적어나가다보니, 늘어난 회의와 서류의 종류에 압도되어 보지 못했던


직무 세분화 이후에 일어난 긍정적인 변화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한 분야에 뛰어난 많은 인재들이 와주었고, 그 덕에 1명당 작업 속도는 빨라져 있었다는 것.


늘어난 소통비용의 양이 어마어마했을 뿐이지 종류로 따지면 잃은 것은 1가지요 얻은 것은 2가지인 상황인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렇다면 늘어난 회의와 서류의 종류를, 실무자들이 받아보는데 문제가 없는 수준까지 정리를 하고


회의를 비대면 소통으로 대체할 수 있는 방법, 더 나아가 작업자가 필요할 때 검색만 하면 찾을 수 있는 법을 생각해 내고


반드시 소통에 필요한 서류와 회의를 가장 적지만 효과적으로 진행하는 법을 찾으면 되겠다는데까지 생각이 미쳤습니다.


이게 되네...


그럼 일단 실무자들이 지금까지 요청해왔던 것은 가장 이상적인 기획서였다보니, 팀원들에게 다른 팀의 업무량이 너무 크게 늘어난 상황을 전달하고


작업을 진행하는데 필요한 가장 최소한의 정보가 무엇인지 물었습니다.


그리고 매 에피소드별로 서류를 통해 하던 소통을


10 에피소드 단위로 회의를 잡아 구두로 그 자리에서 함께 정리하는 것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러자 정리해야 하는 정보의 양도 줄고 작성해야하는 서류의 종류도 회의록 작성으로 대체되었습니다.


거기에 소통의 주기가 10배 길어지자 고통받던 다른팀과 우리 팀 모두 기적처럼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거기에 '함께 일하면 어쩔 수 없이 추가되는 비용'의 반대 개념,


'함께 일하기 때문에 절약할 수 는 부분, '에셋 라이브러리 활성화에 집중했습니다


기존에 했던 작업들을 서치하기도 다운로드 하기도 쉽게 라이브러리화하고,


가능한 경우 팀간의 소통없이 라이브러리에서 직접 쓸 수 있는 자료를 찾아 가져다 쓰실 수 있도록 세팅하였습니다.


1인간 감당해야하는 소통비용이 1/4 정도로 줄어들자


여러 팀원들이 함께 일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업측에도 이익이 되는 결과로 이어졌습니다.


어느새 팀 안팎으로 났던, 제가 끌 수 없을 것만 같던 불이 꺼져있었고, 오랜 긴장감이 안도감으로 바뀐 탓인지 저는 갑자기 심한 몸살을 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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