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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하경 Feb 10. 2024

팀원의 강점을 팀 밖에서 모른다면 그건 팀장 잘못입니다

팀원을 셀링 하는 건 팀장의 의무

제가 팀장이 되기 전, 평소 무뚝뚝하시거나 슬랙 전체 채널에는 잘 나타나지 않으시던 다른 부서장님들이 갑자기 구성원들의 작업물을 자랑하는 팔불출 스레드를 올리시는 것을 보면서

'이 조직은 조직장들이 구성원들을 정말 자랑스러워하는구나.'라고 느끼곤 했습니다.

하지만 직접 팀장이 되고 나서, 이것이 그룹장님으로부터 모두가 받는 코칭의 일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관련된 말씀을 듣게 된 날은 아래와 같은 질문을 들은 1on1 시간이었습니다.

"어? 이 분 엄청 주니어 아니신가요? 이 분이 잘해요?"

당시 저는 이 상황에서 제가 무언가 잘못했다는 사실도 자각하지 못한 채 '모르셨나요?'라며 답변을 드렸습니다.

"이 분 원래부터 작업 굉장히 잘하시던 분입니다. 손도 정말 빠르세요.

제가 항상 아기천재라고 부르는걸요?

저희 팀 에이스라고 해도 아무도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 거예요."

그러자 그룹장님은 옅게 한숨을 쉬시고 제가 몰랐던, 매니저의 또 다른 의무에 대해 설명해 주셨습니다.

"하경님이 맡은 구성원이 실력이 좋다는 사실을 상위 조직장이 모르고 있다면 그건 팀장인 본인이 역할을 하지 못했단 뜻이에요.

팀원을 셀링 하는 것도 팀장이 해야 할 의무니까요.

제가 본부장님께 하경님을 셀링 하는 것, 하경님이 스스로 한 일들을 발표할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하는 것이 제가 할 일이라면

팀원들이 잘하는 걸 다른 사람들이 알게 하는 건 하경님의 의무인 거죠."

듣고 보니 너무나 맞는 말씀이라 머리가 띵했지만 그렇다고 당장 제가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생각나지는 않아 질문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그걸 어떻게 하나요?

갑자기 맥락 없이 슬랙에서 구성원들에게 제 팀원들을 자랑한다거나, 지나가는 그룹장님을 붙잡고 자랑을 하는 건 너무 이상하잖아요."



"의무를 행하는데 이상한 게 대수인가요?"


저도 오늘 하경님이 적어 올린 제안서를 제 상사분께 맥락 없이 슬랙으로 전달했어요.

다른 팀장님들도 슬랙에서 필요한 때는 민망함을 참고서라도 본인이 원래 그런 성격이 아니라도 하고 있어요.

해야 하는 일이니까요."

팀원을 셀링 하는 것이, 본인의 민망함을 감당하더라도 반드시 해야 하는 필수적인 의무사항이라는 것은 정말 충격적인 개념이었습니다.

팀원들에게 나름대로 열심을 다 했다고 솔직히 나 정도면 처음 하는 것 치고 제법 괜찮은 팀장이라고 뿌듯해하고 있었건만

기회만 있으면 각 팀원들의 훌륭함을 모두에게 영업할 수 있는 상태가 되는 것이 기본적인 의무라니

제가 팀원들에게 기본적인 의무도 다하고 있지 못했다는 것을 알고 나니 스스로 점점 '최소 이 부분에서는 내가 평균이상이 아닐까?'라며 안일해져 가던 차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사람을 매니징 하는데 '이만하면'이 어디 있을까


심지어 그걸 고작 반년 해놓고

반년 간 팀을 매니징 한 내 모습은 적어도 인턴 시절 아무것도 책임지려 하지 않았던 그 팀장님보다는 낫다고,


기계의 결함까지도 저의 잘못으로 몰던 그 대리님에 비하면 나는 양반이라고

제가 본 가장 아쉬웠던 리더십을 기준으로 잡고서 보람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 스스로에게 민망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해서 기본을 지켰다고 할 수는 없다는 것.

응당 해야 할 일들을 해야 기본을 지킨 것이며, 그 '기본적인 의무'는 내가 알지도 못하는 곳에 숨어있다는 것.

'기본'의 기준은 내 생각보다 훨씬 높다는 것.

그리고 매니징이란 하나하나 알아가는 게 점점 더 잘하게 되는 일이 아니라, 전에는 내가 알지도 못했지만 했어야 했던 의무들을 깨달아 가는 과정이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계기이기도 했습니다.


의무 수행을 위하여


그 말씀을 듣고부터, 팀원들에게만 떨던 주접을 광역 주접으로 전환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룹장님 옆자리에서 머리가 지끈거리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문제 있어요?"라는 목소리가 들리면

"하... 팀원들이... 진짜 너무... 훌륭해요.

이것 보세요! 시킨 적도 없는데 공수가 많이 드는 작업을 찾아서 자동화했다고요.

관련 경력이 없어서 걱정하셨던 팀원 ㅇㅇ님이, 오히려 이전 직무 전공을 살려서 자기만 할 수 있는 기여를 하셨어요!

진짜 솔직히 인재밀도 미쳤다. 그렇죠."라며 민망한 자랑을 쏟아냈습니다.

그럼 처음에는 어이가 없는 듯 웃으며 보시던 상사 분도

"팀원들의 훌륭함이 하경님의 원동력이 되는 모양이네요." 라며 웃으셨습니다.

작업물의 퀄리티나 공동체 생활의 미숙함으로 의아한 시선을 받는 팀원들이 있다면, 함께 그 부분을 개선하기 위해 마일스톤을 잡고 노력하면서

리더 회의시간에, 혹은 그룹장님께 개인 슬랙을 보내 더욱 집중적으로 꾸준히 개선 사항을 리포팅했습니다.

그리고 팀원들과 팀실에 있다가 누군지 너무 명확한 구둣발 소리가 들리면 저는 팀원들에게

"어,어,어, 다들 오늘 한 작업 중에 제일 멋있는 거 꺼내서 만지는 척해요. 빨리빨리!"라고 이야기드린 후 조직장님께서 간단한 용건을 마치고 돌아가실 때 멈춰 세우고, 가장 많이 성장한 작업물을 직접 자랑하기도 했습니다.

그 과정은 팀원들에게 그날의 작은 해프닝이 되기도 하고, 만날 일이 많지 않은 상위 매니저에게 인정받는 경험, 그리고 팀장이 자신들의 장점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인상 등을 주는 효과도 있었습니다.

민망해하는 구성원들을 맥락 없이 여기저기 자랑하는 일이 망설여질 때면 항상 피드백 당일 들은 말씀을 떠올리며 기쁘게 철판을 깔게 되었습니다.

"의무를 행하는데 이상한 게 대수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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