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량과 주제
분량 부담을 줄인다
출간을 원하는 사람은 많다. 그런데 출간을 목표로 글쓰기를 시도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적다. 왜 그럴까. 첫째로, 책 분량에 대한 부담 때문이다. 자신의 책장에서 단행본 책을 몇 권만 살펴보자. 물론 아주 얇은 책도 있겠지만 책 대부분은 300여 쪽 전후로 되어 있을 것이다. 야심 차게 책 쓰기에 도전해 보려다가도 300여 쪽의 분량에 압도당하게 된다. 그렇게 시작도 하지 못한 채 쉽게 포기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분량 문제를 넘어설 수는 없을까.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수학 숙제를 내준다고 생각해 보자. 학생들에게 하루에 100문제를 풀어 오라고 숙제를 내주면 어떨까. 곧바로 학생들의 야유를 받을 것이다. 그런데 10문제씩 10일 동안 풀어 오도록 숙제를 내보면 어떨까. 학생들이 충분히 이해하지 않을까. 전자에 비해서 부담이 훨씬 덜하기 때문이다. 같은 분량이지만 한 번에 해야 하는 양이 많고 시간이 촉박하다면 어려운 과제가 된다. 하지만 한 번에 해야 하는 양을 줄이고 수행할 수 있는 시간을 늘린다면 어렵지 않은 과제가 된다.
책 쓰기도 마찬가지다. 한 번에 해야 하는 양을 줄이고 쓸 수 있는 시간만 늘린다면 누구든 쓸 수 있다. 300쪽의 분량을 하루에 써야 한다면 누구도 쉽게 글을 쓸 수 없을 것이다. 반면에 분량을 세부적으로 나누고 시간만 충분히 늘린다면 쓰는 사람이 부담을 훨씬 덜 느끼게 된다. 구체적으로 300쪽을 세분화해서 하루에 쓸 수 있는 분량으로 쪼개보자. 예를 들면 5쪽이나 10쪽 정도로 말이다. 5쪽을 쓴다면 60번 쓰면 되고, 10쪽씩 쓴다면 30번 쓰면 된다. 300쪽을 1번에 쓰는 것보다는 훨씬 수월한 일이다.
우리는 전업 작가가 아니라 빨리 글을 쓰라고 닦달하는 사람도 없다. 매일 글쓰기가 부담된다면 이틀에 한 번 써도 되고 일주일에 한 번 정도만 써도 된다. 일주일에 한 번씩 10쪽 정도씩 꾸준히 글을 쓴다면 약 6달 후에는 초고를 완성할 수 있다. 10쪽도 부담이 될 수 있다. 그런데 여기서 따져볼 게 있다. 단행본의 1쪽이 우리가 쓰는 한글 프로그램의 1쪽의 분량과 다르다는 사실이다. 한글로 A4 용지 1쪽 분량 정도를 작성하면 실제로는 약 단행본 3쪽 분량을 작성한 꼴이 된다. 그래서 단행본 10쪽 분량이 실제로는 A4 용지 3장 정도가 되는 셈이다. 일주일에 한 번씩 A4 용지 3장 분량의 글을 쓰는 건 해볼 만한 일이다. 관건은 지치지 않고 꾸준히 실천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랬다. 첫 책인 에세이를 출간할 때 목표를 30개의 에피소드로 나눠 쓰는 것으로 했다. 담임을 10여 년간 맡았으니 30개의 에피소드쯤은 어렵지 않게 떠올랐다. 그런데 꾸준히 쓰는 일이 관건이었다. A4 용지 3쪽 분량을 일주일에 3번씩 꾸준히 쓰는 걸 목표로 했다. 계획대로 했다면 10주, 즉 3달이 안 되어 초고가 완성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중간에 슬럼프를 겪었고 결과적으로 약 6달 만에 초고를 완성했다. 시간을 갖고 글을 모으고 나니 어느덧 A4 용지 100여 쪽 분량의 글이 모였다. 이후 그 원고는 출판사를 거쳐서 단행본으로 출간이 되었다.
주제를 신중하게 정한다
한편 책 쓰기를 포기하는 두 번째 이유는 주제를 잘 못 정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대화한다고 생각해 보자. 내가 관심 있는 주제에 관한 얘기라면 밤새도록 즐겁게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관심이 없는 주제라면 어떨까. 잠깐은 관심 있는 척 얘기를 할 수도 있겠지만 오랜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누는 건 불가능하다. 억지로 한다고 해도 금세 티가 나기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내가 관심 없는 주제에 관한 글을 쓰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관심 없는 주제에 관해 쓰려면 작가가 엄청난 부담을 느끼게 된다. 반대로 내가 관심 있고 좋아하는 주제라면 어떨까. 글 쓰는 시간이 즐겁게 느껴질 것이다. 나도 비슷한 경험을 했다. 첫 책인 에세이는 학생들과의 관계, 교직 생활 중 내 생각을 담았다. 내가 평소에 고민하던 내용, 관심을 두고 있던 내용이라 글을 쓰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출간한 에세이의 반응이 생각만큼 뜨겁지 않았다. 유명인이 아닌 이상 생각보다 에세이에 사람들이 관심을 두지 않았다. 나는 즐겁게 글을 썼지만 내 책은 생각보다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다음에는 사람들이 관심을 두는 주제에 관해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학교에서 관심이 있는 주제가 무엇일지 한참을 고민했다. 그러다가 최근 환경 문제가 주목받고 있다는 게 떠올랐다. 다음번 책은 환경 교육과 관련된 주제로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야심 차게 좋은 주제를 정했지만, 글이 쉽사리 써지지 않았다. 왜냐하면 실은 내가 환경 교육과 관련해서 크게 아는 바가 없었기 때문이다. 환경 교육이 중요하다는 것만 알고 있을 뿐, 내가 관심을 두고 탐구하던 주제가 아니었던 탓이다. 무엇보다도 잘 알지 못하는 내용을 쓰려니 글쓰기 자체가 재미가 없었다. 어렵게 정한 주제였지만, 몇 번 시도하다가 글쓰기 자체를 포기하고 말았다.
고민 끝에 최근 다시 주제를 정했다. 내가 정한 주제는 교사 책 쓰기이다. 나는 우여곡절 끝에 두 번이나 출간했다. 단독 저서 한 권, 공저 한 권 총 두 권의 책을 말이다. 글쓰기부터 계약 후 실제 출간에 이르기까지 느끼고 경험한 게 많다. 누군가에게 출간 이야기를 한다면 밤새 신나게 얘기할 자신이 있다. 내가 관심 있는 내용으로 글을 쓰니 글이 일사천리로 써졌다. 경험을 통해서 내가 관심이 있고 재미있어하는 주제를 정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내가 관심이 있는 내용으로 주제를 정했다고 끝이 아니다. 내가 관심 있는 주제가 다른 사람에게도 흥미가 있는 주제여야 한다. 글이나 책을 혼자만 본다면 관계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정식 출간을 목표로 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대중에게도 주목받는 주제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어느 정도 판매로도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재밌어하는 주제이지만, 대중은 관심이 없다고 생각해 보자. 그런 글이라면 투고를 해도 출판사의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다. 출판사의 심사조차 통과하지 못한다면 기획출판은 요원한 일이 된다. 결론적으로 나도 관심이 있고 대중도 관심을 두는 주제를 선정해야 한다. 그래야 내가 재미있게 끝까지 쓸 수 있다. 또 출간된 후에도 대중의 관심을 받고 판매로도 이어질 수 있다. 출간을 고민하고 있다면 내가 관심 있고 다른 사람도 관심을 두는 주제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