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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Sep 15. 2023

<노회찬 평전> 후기

영웅을 기다리지 않겠다.

     2009년 동병의 언어 없이 노무현의 죽음을 맞이했다. 노무현을 위해 울었지만 내 눈물은 비어있었다. 노무현의 아픔, 좌절, 고통은 내가 이해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울면서도 눈물의 이유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 나는 그와 같은 경험을 할 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노무현이 어떤 사람인지 자세히 몰랐지만, 그해 5월에는 그냥 세상이 울길래 나도 따라 울었다.

     반면에 노회찬의 죽음은 나에게 꽉 찬 분노였다. 이 책을 읽기 전까지 노회찬의 유서도 읽지 않았다. 읽고 싶지 않았다. 배신감에 눈물도 나지 않았다. 내가 가장 믿고 사랑했던 정치인이 "겨우 그 정도에" 떠났다는 배신감이다.


     쳐다보지도 않았던 노회찬의 유서와 달리 노무현의 유서는 몇 번을 읽고 해석을 시도했다. 초반에 위조 논란이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을 것이다. 노무현의 유서가 진짜라고 느꼈던 이유는 모든 문장에서 지친 노인이 보였기 때문이다. 변명이나 꾸밈없이 잘 정돈된 좋은 문장들이었다.

     양초는 왁스가 바닥을 보인 후에도 꽤 오래 타다가 조용히 꺼진다. 노무현의 유서를 읽으며 왁스가 다 타버린 양초를 떠올렸다. 노무현의 죽음은 한국 정치와 언론 구조의 문제를 정확하게 알고도 "운명"을 탓할 정도로 선했던 이가 완전하게 지쳐 선택한 죽음이었다. "책을 읽을 수도 글을 쓸 수도 없"는 고통. 시간이 갈수록 그의 죽음은 자연스럽다고까지 느꼈다.

     그러나 노회찬의 죽음은 양초를 두 동강 내며 불을 폭력적으로 꺼버리는 이미지로 그려졌다. 폭력은 노회찬 자신이 스스로에게 주는 것이었다. 노회찬이 죽고 가장 많이 했던 말은 "너무 화가 난다"는 것이었다. 언론 구조나 한국 정치가 아니라 그에게 화가 났다.

     정치인이 나의 삶에서 멀리 있지 않다는 것은 노회찬이 가르쳐 주었다. 약자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에나 그가 있었다. 동물권, 여성권, 성소수자 인권, 장애인권을 위한 채팅방이나 SNS 페이지에는 항상 그가 있었다. 어딜 가나 그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노회찬 죽음 직후, 어떤 문제도 해결되지 않았는데 "무책임한" 선택으로 이제는 비어있는 그의 프로필을 보았다. 어떻게 분노하지 않을 수 있을까.


     죽어서 노회찬을 만나면 죽기 직전 그가 느낀 고통을 수치화하는 무례한 질문을 하겠다고 다짐했다. 1부터 10이라고 했을 때...라는 식의. 그가 그리운 밤이면 혼자 상상하곤 했던 이 질문은 노회찬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이해할 만한 자살의 이유를 그에게 청구하는 것이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참을 수 있었을 텐데, 참기 어려워도 참아야 했던 사람이 그렇게 갔으니…"

     하지만 물을 것 없다. 책을 읽고 알았다. 노무현도, 노회찬도 고통은 10이 아니라 100일 때 죽었다.


     노회찬 평전을 통해 그의 유서를 처음으로 읽었다. 노무현의 문장들에 비하면 특별할 것 없는 유서였다. 노무현의 유서에 비하면 큰 화제가 되지도 못했다. 노무현의 유서는 지금도 읽을 때마다 눈물이 난다. 그러나 아직도 출처 모를 깊은 죄책감과 기본적인 연민 정도로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다. 노회찬의 유서를 처음 읽고 흘린 눈물은 다름이 아니라 5년 늦은 애도였다. 처음으로 나의 분노가 아니라 노회찬의 삶과 죽음에 집중했다. 그간 그를 원망하느라 그의 삶과 죽음을 되돌아보지도 슬퍼해주지도 못했다. 그의 얼굴을 보면 가슴을 치고 싶을 정도로 화만 났던 시간이 5년이다. 그에게 분노한 시간이 후회되어 눈물이 흘렀다.


     자살은 정신력의 문제가 아님을, 며칠간 쉬지 않고 노회찬의 61년 일생을 읽어가며 다시 한번 분명히 깨달았다. 노회찬도 노무현처럼 일하고 살고 버티다가 양초처럼 꺼졌다. 그의 경험을 나는 알지 못한다. 그럼에도 '사회에 헌신해야' 하는 노회찬의 삶과 일이 남았다고 판단했고, 그래서 그를 원망했다. 하지만 노회찬은 한 개인이었을 뿐이고 누구보다도 많은 일을 하고, 그보다 더 많은 시도를 했다. 고통에 괴로워하다 죽은 그를 애도하지 못했다. 그가 약자를 위해 더 해야 할 일이 아직 많이 남았다고 확신했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에서 그의 죽음은 순수한 슬픔일 수 없었다. '우리를 위해 써야 할' 그의 시간이 끊어진 사건이었다.

     나의 분노는 가해였다.

     충분히 살아내지 못했다는 나의 평가는 틀렸다. 더 버텼어야 했다는 나의 원망도 틀렸다. 노회찬은 언제나 사회에 대한 과도한 죄책감과 열정으로 가득했고, 그걸 동력 삼아 묵묵히 삶을 살아갔다. 완벽한 사람이 아니었고, 내가 공감하지 못한 그의 생각도 많이 확인할 수 있었다. 너무 드문 삶이어서 눈에 띄었을 뿐 내가 그렇게 큰 책임을 지울만한 영웅이 아니었다. 그는 삶을 살다가 죽었다. 살지도 못하고 죽어버리거나 살 생각도 안 하고 죽음만 기다리는 정치적 인생이 판치는 사회에서 노회찬은 보기 드물게 살다가 죽었다.


     그때 원 없이 슬퍼해줄 걸 그랬다.

     분향소에 갈 걸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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