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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예나 Apr 30. 2024

'남자다움' 재정의하기 1

싸움의 순간에 물러서는 수컷이 강하다.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사춘기와 비슷한 시기가 온다. 이 시기는 부모로부터 독립하고자 하는 새끼가 부모의 말, 행동 방식과 다른 다양한 것을 시도하는 시기로 실제 이 시기 아이의 뇌를 연구해 보면 부모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도록 인식이 차단되는 듯하다. 예를 들면 외국어 단어를 부모의 목소리와 다른 어른의 목소리, 또래 아이의 목소리 등 다양한 소리로 들려주었을 때 아이는 부모가 말한 단어를 가장 기억하지 못했다. 번식의 완료 단계는 자식의 독립이기 때문에 번식 성공을 위해 부모는 아이의 사춘기를 어느 정도 따뜻한 마음으로 받아들인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보통 자신의 성별과 일치하는 무리와 지낸다. 남자아이들은 남자아이들과, 여자아이들은 여자아이들과 놀며 시간을 보낸다는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트랜스젠더'라고 할만한 개체는 동물 세계에서도 보이기 때문에 '남성성'과 '여성성'의 분리도 평균적인 것을 말하는 것이며 흔히 '남성적'이라고 하는 성질을 가진 암컷, '여성적'이라고 하는 성질을 가진 수컷이 동물 세계에서도 보인다. 또한 수컷 무리에서 지내기를 좋아하는 암컷, 암컷 무리와 어울리기를 좋아하는 수컷 개체도 종종 있다. 이들은 모두 무리에서 배제되는 일 없이 환영받는 개체이며 이런 개체의 특징이 문제가 되는 곳은 인간 사회 밖에 없다. 이런 느긋함과 관용은 서구 기독교적 가치관의 확산으로 최근 인간이 잃어버린 소중한 특징이며 무조건 되찾아야 한다.

이 시기 아이들이 같은 성별 무리와 지내며 배우는 것은 다양한 사회적 큐(cue)일 수도 있고, 암컷의 경우 강한 유대감 형성과 육아 연습 등을 할 수도 있다. (육아 연습이 암컷 무리 사이에 흔하다고 해서 이것이 암컷만의 성질이라든지 수컷은 이 부분에 대한 본능이 없다는 결론으로 바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더 자세히 말하고자 한다.) 수컷의 경우 아이가 또래 수컷 무리에서 배우는 것들 중 중요한 것은 자신의 힘을 객관적으로 아는 것이다.

수컷 아이들은 또래 수컷들과 레슬링 놀이를 하며 자신의 힘을 확인한다. 무리 안에서도 힘이 더 강한 아이가 있고 약한 아이가 있을 텐데, 장난을 치며 노는 중 친구의 반응을 잘 살피며 자신의 힘의 크기를 객관적으로 배우게 된다. 즉 이런 놀이에서 친구를 다치게 하는 것은 자신의 힘을 모르는 수컷의 어설픈 실수인 것이다. 또한 불필요한 싸움은 스스로를 다치거나 죽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적당한 위협에서 싸움으로 번지기 전에 멈출 줄 알아야 한다. 위협 수준에서 상대로 하여금 싸움 의지를 포기하게 만드는 것이 수컷에게는 안전하고 유리한 생존/번식 전략이다. 수컷에게 '허세'가 흔한 이유가 이것이다.

정말 강한 수컷은 자신이 실수로라도 다치게 할 수 있는 존재에게 그의 힘을 함부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수컷이 자신의 힘을 정확히 알아야만 할 수 있는 선택이므로, 싸움의 순간에 뒤로 물러서는 평화로운 수컷은 비겁함이나 소심함이 아니라 오히려 그의 강함을 보여주는 것이다.

158cm의 여성인 내가 덩치 큰 남성의 위협적인 모습에서 두려움을 느낄 때 그것은 정확히 말하면 그의 힘이 무서워서가 아니라 자신의 힘조차 객관적으로 알거나 조절하지 못하는 그 남성의 미숙함이 두려운 것이다. 진화생물학적으로 암컷의 입장에서 수컷의 힘이 무서울 이유는 없다. 무리를 지키고 암컷에 대한 접근권을 획득하기 위해 상대 수컷을 위협하는 용도로 진화된 것이 수컷의 힘이기 때문에. 자기 근력의 크기를 잘 알고 사용에 신중할 줄 아는 남성의 힘은 여성뿐만 아니라 무리 안 모두에게 든든함이 된다.


평균적으로 남성보다 근육량이 적은 여성에게도 보통 손은 있다. 칼, 망치, 자동차 등 무기로 사용될 수 있는 것을 우리가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 것은 힘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상대를 다치게 하고 싶지 않아서일 뿐이다. 남성도 마찬가지다. 무기를 사용하든 맨몸으로 싸우든 다른 사람(혹은 동물)에게 폭력성을 보여주는 것이 강함 또는 남자다움을 증명하지는 않는다. 진정으로 현명하고 강한 수컷은 평화롭게 문제를 해결한다. 심지어 자신에게 폭력성을 보이는 상대에게조차 똑같은 폭력적 대응이 아니라 평화적 제압을 최대한으로 노력하는 자신감을 보일 수 있다. 이런 개체가 동물 세계에서도 사랑받는 리더가 된다. 반면 폭력성으로 '쉽게' 문제를 해결하려는 리더는 사회 구성원들에 의해 끌어내려진다.


힘에 있어서 '남자다움'은 그런 의미이다. 단순히 그가 가진 힘의 크기가 아니라, 자신의 힘을 알기 때문에 감정이 격해져도 한 번 더 큰 숨을 천천히 쉬고 물러설 줄 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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