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가정신 May 12. 2021

치매

어제 또다시 공개적인 장소에서 엄마가 화를 내셨다. 작년 내가 입원했던 이후로 잠잠하셨는데, 요즘 들어 이런 일이 잦아진다. 오랜만에 밖에서 바람도 쐬시라고 모시고 나갔는데, 어제는 도대체 어느 포인트에서 화가 나신 건지 모르겠다. 그동안은 엄마가 싫어하는 행동을 할 때만 그러셔서 좀 피해 갈 수 있었는데, 이번에는 화를 내는 대상이 나라는 것만 빼고는 딱히 이유가 없다.
 덕분에 어제의 외출에서 하려던 일도 못 보고, 사거리에서 소리를 지르는 엄마를 겨우겨우 달래 차에 모시고, 저녁도 굶고 집으로 오고 있었다. 동네 입구에 있는 저수지를 지나는데 갑자기 엄마가 소리를 계속 지르시며 운전하는 나에게 엄마 핸드폰을 계속 들이미셨다. 급기야 나도 소리를 질러버렸다.

 "엄마 좀 조용히 해!!! 조용히 좀 하라고!!!"

 정임 이모와의 통화 연결로 이번에도 겨우겨우 위험한 운전을 마쳤지만, 집에 와서도 한동안 난리는 이어졌다. 이럴 때 드리라던 병원에서 준 약도 완강히 거부하는 엄마에겐 전해질 수 없었다. 어떻게 엄마가 잠이 들고 방으로 돌아왔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내가 전생에 무슨 잘못을 지었던 걸까?' 

 그러다 잠이 든 것 같다. 다음 날이 밝고 나서야 후회를 했다.  
 부랴부랴 어제 못 본 일을 처리하고 그날도 피곤한 몸을 눕혔으나 역시 잠도 푹 들지 않아, 엄마 핸드폰 녹음을 들어봤다. 핸드폰의 작은 박스 같은 공간에서 그간 엄마의 주의를 돌리려 걸었던 정임 이모와 엄마의 목소리가 차례로 흘러나왔다.
 "요즘 내가 왜 이러지? 왜 이러지?"를 반복하시더니 좀 차분해진 음성으로 

 "나 자꾸만 현(나) 이에게 화를 내고 싶다. 엄마처럼 치매로 자식 괴롭히지 않으려고 했는데''''''." 하며 나를 걱정하고 계셨다.
 내가 대학생일 때, 치매가 발병한 외할머니를 장녀인 엄마가 책임지고 모시느라  엄마가 고생이 참 많으셨다. 세상 일은 참 이상하다. 하필 그런 엄마에게, 지혜롭고 평생 나를 포함한 가족들에게 희생하며 살아온 엄마에게 외할머니의 치매가 대물림되다니......!

 이런 사정을 아는 사람들은 지금의 나는 나의 암 완치만 생각해야 하라고 말한다. 그러나 2대로 이어지는 치매라는 병을 손녀로서, 딸로서 지켜보며 나는, 사람들에게 선한 영향력을 주지는 못할망정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며 삶을 마감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하다 잠이 들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려는데, 어젯밤의 잔상 탓인지 갑자기 정신이 확 들었다. 나처럼 엄마도 정말 이런 상황을 원하신 건 아니신 건데''''''.  아주아주 뒤늦게, 어제 엄마에게 소리쳤던 말들을 후회했다.

 "엄마, 미안해." 

 '나도 힘들어서 그랬어.'

 그 어떤 멘토보다 훌륭했던 나의 조언자였던 엄마, 엄마라면 알 거야.

작가의 이전글 아무튼, 우리는 시한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