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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 Oct 31. 2023

사라진 얼굴들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2022년 10월 29일 서울 이태원에서 158개의 얼굴들이 사라졌다. 도심 한가운데에서 벌어진 참사에 국가는 서둘러 희생자들의 얼굴을 지웠다. 참사에 대한 책임은 미루기 바빴다. 정해진 수순이 있는 듯 그들은 참사 때와 달리 일사불란했다. 결국 유가족들이 슬퍼할 겨를도 없이 거리로 나섰다. 모두 사라진 아들, 딸, 엄마, 아빠, 친구의 얼굴을 찾기 위해 거리로 모인 사람들이다. 그들은 억수같이 쏟아지는 비를 온몸으로 받아 내야 했다.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에 머리를 수백 번 박아야 했다. 그렇게 그들은 사랑하는 이를 잃은 유가족이 됐다. 1년이 흘렀다. 사라진 얼굴들은 아직도 공중에 떠돈다. 사라진 얼굴들은 국가의 무책임에 길을 잃었다. 국가는 정처 없이 떠도는 얼굴들을 온몸으로 외면했다. 


또 다른 얼굴이 있다. 무표정의 얼굴이다. 슬퍼할 줄 모르는 얼굴이다. 지독하고 섬뜩한 모습을 한 얼굴들은 1년 내내 같은 표정이다. 한결 같이 무관심하고 심드렁하다. 간혹 화를 내기도 한다. 그런 얼굴을 하고서 내뱉는 말은 지나칠 정도로 이성적이고 차갑다. 윤석열 대통령은 “책임은 있는 사람한테 딱딱 묻자”고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미리 경찰을 배치한다고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고 했다. 박희영 용산구청장은 “구청에서 할 수 있는 역할은 다 했다”고 했다. 권력자이자 책임자의 얼굴을 한 입이 무분별하게 쏟아낸 말들이다. 이들은 냉혹한 얼굴과 달리 단어 하나하나에 신중했다. 혹여나 말을 잘못했다가 법적 책임을 뒤집어쓰게 될까 봐 그랬을 것이다.   


국가는, 정부는 1년 전 그날 어디에 있었나. 참사가 발생하고 지난 1년 동안에는 도대체 무얼 했나. 차라리 정말 존재하지 않았다면 나았을까. 이 정부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도 모자라 방해하고 왜곡했다. 늘어나는 혐오는 방치했다. 이태원 참사 이후 무엇이 해결됐나. 왜 아픔에 공감하지 않나. 한 사람은 하나의 세계로 비유되기도 한다. 159개의 세계가 사라졌는데, 정말 이대로 마무리 돼도 괜찮나. 우리 사회는 정말 안전한가. 끝없는 의문에 답해야 할 사람들은 귀를 막아버렸다. 아무도 답해주지 않는다. 유가족은, 그날을 지켜본 시민들은 어디에 물어야 할까. 


해가 바뀔 때마다 모양만 달리 한 참사가 반복되는데 우리는 왜 예방하려고 하지 않나. 반성하려고 하지 않나. 정말로 잘못한 사람이 없나.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으면 정말 아무런 상관도 없는 건가. 우리는 무엇 때문에 왜 살아가나. 이렇게 살아가도 되나. 머지않아 무너지지 않을까. 아니 이미 무너진 것일 수도 있겠다. 모든 무력감은 오롯이 개인의 잘못인가. 어디서부터 어긋난걸까. 도통 알 수 없는 나날이 반복된다. 


소중한 이들을 하루아침에 잃은 사람들은 시간이 자주 멈춘다고 한다. 어떤 날은 되돌아가기도 한다. 이들의 시간은 앞으로 가지 않는다. 오로지 멈추거나 되돌아갈 뿐이다. 이 고장 난 시계는 누가 고칠 수 있나. 이 무거운 짐은 누가 나눠 짊어져야 할까. 국가는 무엇을 해야 할까. 계속해서 국가의 존재 의미를 묻는다는 것은 지금 같은 국가는 사실상 존재 의미가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국가가 죽었다. 어쩌면 국가가 죽였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그들 짐을 조금이라도 나눠들 수 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많지 않다. 그럼에도 잊지 말자, 연대하자, 투쟁하자. 거대한 흐름을 바꾸는 일은 결국 연대고 투쟁이라는 믿음을 지켜내자. 냉소 않고 다정하자. 사라진 얼굴들이 사랑하는 이들 품으로 돌아갈 수 있게 마음을 모으자. 그렇게 하루하루 살아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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