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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신 Oct 31. 2023

1년 전 그날을 기억하며

10.29 이태원 참사 1주기

1년 전 나는 이태원 근처 홍대에 있었다. 정확히는 10월 29일 오후 6시 무렵 나는 북적이는 홍대 거리를 걷고 있었다. 집이 경남 창원에 있는 나는 정말 간만에 서울을 찾았다. 오랜 연인과 이별하고 이리저리 흔들리는 맘을 다잡고 싶기도 했고, 원없이 놀고 싶기도 했다. 마침 서울로 놀러가자는 친구의 제안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그렇게 부푼 마음을 안고 서울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0월 28일 오후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는 친구들을 만났다. 처음에는 을지로, 그 다음에는 어딘지 기억나지는 않는다. 우리는 술집을 여러 군데 옮겨 다녔다. 그러다 새로 생긴 클럽에 갔다. 20살 때 갔던 클럽이 마지막이었던 나는 신남과 설램을 안고 클럽으로 들어갔다. 다들 술에 취해 흥이 오를대로 올라 음악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얼마나 흘렀을까. 친구 무리 중 일부는 시간이 늦어 먼저 도망치듯 빠져 나왔다. 나는 함께 부산에서 올라간 친구 한 명과 우리를 재워주기로 한 친구와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았다. 


친구가 조금 아쉽다고 했던가 우리는 목적지를 바꿔 이태원으로 향했다. 그렇게 해가 뜰때까지 이태원의 한 펍에서 시간을 보냈다. 우리는 완전히 불태웠다. 어떻게 집까지 갔는지도 모르게 집으로 들어가 쉬었다. 10월 29일 지쳐버린 나는 함께 간 친구보다 먼저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 같이 놀자고 했지만 너무 지쳐버린 상태였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졌다. 


나는 서울역에 가기 전 홍대로 향했다. 기차 시간이 조금 남기도 했고 할로윈의 홍대는 어떨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10월 29일 오후 홍대를 걸었다. 거리에 이렇게 많은 사람이 다닐 수 있다는 것을 그날 처음 알았다. 빼곡한 사람들은 정말 말 그대로 거대한 파도처럼 이리저리 움직였다. 사람들 흐름에 휩쓸리듯 홍대 구경을 마친 나는 서둘러 서울역으로 향했다. 


오후 6시 기차였나. 해가 지기 전 기차를 타고 부산으로 향했다. 곧바로 고향 친구들을 만나기로 했다. 강행군이었다. 그렇지만 오래 전부터 했던 약속이라 무거운 몸을 이끌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술은 많이 먹지 않았다. 대신 피시방으로 갔다. 그렇게 12시쯤 우리는 헤어졌다. 집에 가는 길이었나. 페북인지 인스타인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이태원에서 심정지 환자가 수십명 발생했다는 게시물을 얼핏 봤다. 흔히 보이는 어그로성 게시글이겠거니 하고 넘겼다. 근데 얼핏 본 사진은 정말 이태원 같았고 뉴스를 찾아봤다. 그때만 해도 뉴스가 나오진 않았던 것 같다. 


얼마 지나지 않아 뉴스가 떴다. 이태원 압사 추정 사고 발생. 심정지 상태 환자라는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나중에야 그게 사망의 다른 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알딸딸하던 정신이 번쩍 들었다. 내 눈을 의심하는 뉴스가 계속 업데이트 됐다. 그러는 사이 미처 걸러지지 않은 현장의 영상과 사진을 허겁지겁 찾아봤다. 그렇게 새벽까지 뉴스를 보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날 정신을 차리고 들었던 생각은 무섭다였던 것 같다. 무서웠다. 불과 몇 시간 전만 해도 내가 있던 곳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서 그런 사고가 발생했다는 게. 어쩌면 그 사고에 내가 휘말릴 수도 있었다는 생각에. 그날 밤 무언가 홀린 듯 사고 영상을 봤던 탓에 그 잔상도 머릿속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단지 서울에서 발생한 사고가 아니라 내가 있었던 곳, 내가 있을 수도 있었던 곳에서 벌어진 사고를 바라보는 일은 완전히 다른 감각이었다. 


내가 서울을 하루만 늦게 갔더라면, 혹은 하루 더 있다가 왔다면 정말 어떻게 됐을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사고 직후였을까 놀러갔다가 그런건데 굳이 추모하고 그럴 필요가 있느냐는 말이 나왔다. 놀러갔다는 이유가 죽음의 이유가 될 수 있나. 이해가 되질 않았다. 얼마 뒤에 정부는 추모 기간을 정했다. 일주일. 하루아침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었는데, 일주일만 추모하면 없던 일이 될까. 누가 도대체 왜 일주일을 정했는지 아직도 모르겠다.


누군가 이태원 참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우리는 지금도 참사를 겪고 있다. 2차 가해와 왜곡, 국가의 무관심 속에 참사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끊임없이 물어야할 것이다. 국가는 그날 어디에 있었는지, 참사 이후에는 무얼 했는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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