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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단정 Aug 31. 2023

혼자 살 수 있을까?

1인 가구의 비애

이사한 지도 어느덧 1년이 가까웠다. 벌써 자취 16년차에 이사도 겪을 만큼 겪었다지만, 이번 집은 유난히 어렵게 구한 편이었다. 집을 구하면서 적당히 포기할 수 있는 부분도 포기하지 않고, 못 구하면 못 떠난다는 심정으로 마음마저 괴롭히며 고집스럽게 굴었던 건 나름대로의 압박감 때문이었다. 이제는 슬슬 ‘나와서 사는’ 개념이 아니라 ‘혼자서 살아가는’ 개념의 자취를 익혀야 했다. 어설프게 홀로 지내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하나의 가정으로 보고 그 살림을 꾸려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그렇게 나는 집에서는 잠만 자면 된다는 같잖은 소리를 이제야 멈추었고, 자취방이 아닌 사람사는 집을 꾸리게 됐다. 욕심에 가구도 제법 사들였다. 그전까지 내가 옵션 외에 사본 가구는 조그만 책장 하나가 전부였다.


1년이 지난 지금도 대체로 이 집에 만족하고 있다. 물론 끊임없이 오르는 금리에 이제는 말도 안 되는 월세를 은행에 내고 있다거나, 처음 계획과 달리 냉장고에는 액체류 밖에 비치되어 있지 않다거나하는 자잘한 문제는 있지만. 집이 잠자는 곳이기보다는 하루의 일부를 꾸리는, 휴식을 취하고 여가를 보내는 공간으로 충분하게 인지하고 지낸다. 연휴에 도망치듯 본가로 떠날 생각도 이전만큼 하지는 않는다. 나는 이제 혼자서도 제법 괜찮게 살게 된 걸까? 


꽤 그렇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는.


금요일 저녁인 만큼 모처럼 친구들을 만나 소주나 한잔하고 집으로 들어가던 길이었다. 집 앞 오르막길의 빌라 주차장에서 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평소라면 무심코 지나쳤을 텐데 그날은 조금 이상했다. 취기 때문인지, 날이 어두워 유난히 빛이 밝아 보였던 탓인지, 나는 가던 길을 멈추고 인적없는 거리에서 시동이 꺼진 채 흘러나오는 그 빛을 빤히 쳐다봤다. 운전을 하지 않아 잘은 몰라도, 깜빡하고 전조등을 켜놓았다간 차가 쉽게 방전된다는 상식 정도는 알고 있다. 그렇게 눈을 잔뜩 찌푸린 채로 차를 바라본다. ‘에잉, 사람이 있었네?’ 그렇게 별생각 없이 돌아서서 제 갈 길을 갔다. 


“저기요.”

분명 골목은 조용했는데 어디서 사람이 튀어나왔나, 놀란 마음으로 고개를 돌리자 웬 사람이 몇 걸음 뒤에 서있다. “저기 차 안에 있었는데, 왜 쳐다보셨어요?”


나는 공포 영화를 보지 않는다. 귀신도 무섭고, 귀신 영화 특유의 그 사운드도 무섭고, 귀신이든 아니든 사람을 놀라게 하는 장면들도 다 싫다. 그렇게 곧 죽어도 공포영화는 안 보면서 <그것이 알고 싶다>나 <용감한 형사들> 같은 프로그램은 빼먹지 않고 챙겨보는데, 알고 보니 내가 공포영화는 무서워서 안 본다는 말은 정말이지 우스운 이야기였다.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손에 쥐고 있던 휴대폰을 힐끔 쳐다보며 나는 나쁜 의도는 전혀 없었을 뿐아니라, 오히려 정말이지 순수한 염려였음을 알렸다. 그리고 안에 사람이 있었다면 그가 충분히 불쾌할 수 있었음을 시인했다.


도망치듯 뛰어서 집으로 간다. 엘리베이터 대신 계단으로 걸어 올라가 도착한 집에서는 불을 켤 수도 없었다. 십 분가량을 멍하니 앉아있다가, 그제야 조금 전에 헤어진 친구들에게 상황을 공유했다. 당장의 공포를 손가락으로만 나눈다는 것은 생각보다 서글픈 일이었다.


그로부터 일주일이 조금 넘게 흐른 지난 수요일이었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가는 길에 편의점에 들러 소주를 두 병 사 들고 나왔다. 편의점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눈앞에 웬 여자가 뛰어들었다.


“저기요. 전화 한 번만 쓸 수 있을까요?”

평소라면 잔뜩 경계하고 눈치를 살펴 이 인간이 진짜 전화기가 필요한 게 맞는지 의심부터 했겠지만, 나는 곧장 휴대폰을 꺼내 키패드를 열어 전달했다. 통화를 마치자, 감사하다며 인사한다. 휴대폰을 건네받으며 그냥 돌아서는 것도 썩 내키지 않아서 “잠시 같이 있어 드릴까요?” 물으니 괜찮다며 오히려 경계하는 눈치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르는 번호가 휴대전화에 뜬다. 이번에도, 평소라면 받지 않았을 전화를 곧장 받아 든다. “아, 저 아니고요. 아까 그 신고자 분이 길에서 갑자기 제 전화를 빌리신 거예요. 집에 지갑이랑 휴대폰 다 두고 나오셨다고… 아뇨. 저는 집에 가고 있고요. 그분은 건물 앞에 서계세요. 네, 혼자요, 혼자. 아, 거기가 그 편의점 쪽인데…”


세상이 어지럽다. 별 이유도 없이 칼을 휘둘러 사람을 죽이는가 하면, 보이지 않는 칼을 휘둘러 사람을 사지로 내몰고, 그렇게 휩쓸려 죽고, 떠밀려 죽고, 그저 죽는다. 요즘 같아서는 지난날의 고민과 번뇌와 갈등 같은 것들이 어지간히 사치스럽게 느껴진다. 생존을 제1목표로 삼아야 하는 듯한 세상에서, 나 역시 그 불안에서 조금도 벗어나 있지 않다는 사실을 매일매일 실감한다.


혼자 살 수 있을까?

물론 혼자보다 둘이, 셋이 낫다는 정도야 당연하다면 당연하지만, 그 차이가 상대적인 수준에 머무르지 못한다는 사실은 역시 좀 안타깝다. 물론 둘이나, 셋은 꼭 안전한 것도 아니라는 사실도 잘 안다. 그럼에도 이 질문의 요지가 단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과 어딘지 맞닿아 있다는 점은 아무래도 속상해지고 만다.


살아낸다는 것이 다소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요즘. 

세상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알 수 없는 요즘.

나 정말 혼자서도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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