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최대 스포츠 행사가 국내 마케터에 미치는 영향
어느새 슈퍼볼의 계절이 돌아왔다. 2월 초, 딱 하루만 열리기에 계절은 좀 과한 표현이다. 슈퍼볼은 미국 사람들이 사랑하는 스포츠 미식축구 리그, NFL의 연례 최최최최종 결승전으로, National Football Conference(NFC)와 American Football Conference(AFC)의 각 우승팀이 경기에 참여한다. 올해는 필라델피아 이글스(NFL)가 3연속 우승에 도전한 캔자스시티(AFC)를 꺾고 7년 만에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미식축구를 사랑하는 나라는 미국이 거의 유일하다. 한국인? 관심 없잖아.. 헐리우드에서 제작된 틴에이저 무비에 자주 등장하다 보니 익숙하긴 해도, 미식축구 자체를 파고들며 즐기는 한국인은 정말 소수일 것이다. 그럼에도 매년 입춘마다 슈퍼볼에 주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광고라는 매체를 창안하고 현대의 엉망잔칭 소비 문화를 고안해낸 미국답게, 최고의 예산과 인력, 아이디어를 쏟아부은 브랜드 광고가 방영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최고 브랜드가 한 해 동안 모든 자원을 쥐어짠 산출물을 한데 모아 볼 수 있는 기회다. 30초 방영에 8백만 달러가 든다는데 오죽하겠는가.
슈퍼볼 광고 리스트를 보면 시장 트렌드의 흐름, 소비 형태의 변화도 엿볼 수 있고, 상상도 못한 기발한 아이디어가 발견되기도 한다. 국내 감성과 미국 감성은 꽤 달라서, 참고하기 애매한 지점도 있지만, 그래도 미국이 경제 강대국으로서 뻗치는 영향력은 절대 무시할 수 없으므로 봐둬서 나쁠 건 없다. 특히, 해외 마케팅을 하는 마케터들이라면 필히 짚어볼 수밖에 없다.
1. 구글 - Dream Job | Google Pixel
https://www.youtube.com/watch?v=-7e6g11BJc0&ab_channel=MadebyGoogle
아.. 좀 많이 슬픈 광고다. 광고 내용도 애잔하지만, 이런 주제의 광고가 나왔다는 사실 자체가 슬프다. 경제가 얼마나 어려운지, 사람들의 불안감이 얼마나 심한지.. 단적으로 보여준다.
내용은, 딸이 하나 있는 가정의 아버지가 구글 픽셀의 Gemini를 이용해 면접을 연습한다. 지난 경력에 대한 질문을 시작으로, 이 남자의 과거가 연출에 의해 쭉 회상된다. 딸이 태어난 직후, 딸이 커가면서 생긴 수많은 추억들, 사춘기에 접어들며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하던 소중한 순간들. 마지막엔 딸이 자신을 대학까지 바래다 준 아빠에게 볼 키스를 해주며 부녀간의 애틋한 사랑을 표현한다. 다 큰 딸과 어린 딸이 비슷한 옷을 입고 시간 여행을 하듯 교차되면서 감동이 증폭된다. 딸의 미소는 마치 면접을 앞둔 불안한 아버지를 응원하는 듯하다.
'가족애'를 중시하는 어찌 보면 전형적으로 미국다운 광고인데, 뻔하지는 않게 흘러간다. 오디오에서 나오는 음성은 오직 면접관 흉내를 내주는 제미나이와, 남자의 목소리뿐이다. 남자는 전문적인 경력직으로서 답변을 풀어나가면서 '딸'이나 '가족'을 언급하지 않지만, 직장에서 있을 법한 역량이나 스킬을 설명하면서, 가정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를 교차시킴으로써 색다른 구성을 만들어낸 덕분이다. 물론 그 와중에 '구글' 검색 엔진을 사용하거나 '픽셀' 폰으로 틱톡 챌린지 영상을 찍는 등 구글이라는 브랜드 노출도 잊지 않는다. 면접 연습이 끝나자, 남자는 폰을 뒤집어 '픽셀' 로고가 보이게 두고는, 실제 면접을 시작한다.
IMF 직후에 국민을 위로하기 위해 쏟아져 나왔던 미디어 콘텐츠가 떠오른다. 우리나라도 요즘은 연령대 할 것 없이 고용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해고가 지나치게 유연한 미국도 마찬가지다. 어느 세상에나 있는 일이기도 하다. 직업 생활이라는 게 늘 평탄할 수만은 없으니까. 정리 해고의 1차 대상자는 연봉이 가장 높지만, 시대 변화에는 필연적으로 뒤처질 수밖에 없는 40-50대일 것이다. 이 광고에서처럼 10대 자녀를 두었을 세대가 가장 불안할 것이다. 책임질 것도, 잃을 것도 많은 나이이니까.
이 이야기가 한국에 적용된다면..ㅡ솔직히 인류사에선 지나치게 뻔한 이야기라 이미 비슷한 광고는 많이 나왔을 것 같다.ㅡ 그냥.. 부디.. 사춘기 자녀가 마구마구 짜증을 내고(현실 200%) 부모는 소리를 지르고(현실 200%) 그러다 갑자기 어느 농담 같은 순간에 어정쩡하게 웃으며 넘어가거나, 부모의 고생에 눈물을 하염없이 흘리며 자신의 잘못을 후회하는 자녀의 모습(초등 시절 수련회 추억 replay)으로 마무리되는 그런 클리셰는 안 보고 싶다.
아무튼.. 이번 구글 광고는, 누구나 아는 이야기를 뻔한 구석 없지만 친근하게, 세련된 스토리텔링으로 감동을 극대화한다. 멋진 연출. 이런 이야기일수록 잘 만들기가 어렵다. 화려한 시각 효과로 범벅인 광고가 오히려 만들기 쉽지..
게다가 AI 기술을 소구하지만, 누구보다 인간적인 면모를 강조하면서, AI에 대한 대중의 불안감까지 덜어준다.
이 광고는 구글 인하우스 크리에이티브 랩에서 기획했고, 스머글러(https://smugglersite.com/)라는 프러덕션에서 제작, 헨리 알렉스 루빈 영화감독(https://www.imdb.com/name/nm0748066/)이 연출했다.
같이 보면 좋을 구글의 15년 전 광고
Parisian Love
https://www.youtube.com/watch?v=nnsSUqgkDwU&ab_channel=Google
오로지 구글 검색창만으로 52초를 가득 채우는 광고.
[검색어 입력창 - 검색 결과] 이 패턴만으로, 한 편의 서사가 완성되는 기발한 작품이다.
파리 유학 → 루브르 근처 카페 → '너 귀엽다' 뜻 → 프랑스 여자 감동시키기파리 → 초콜릿 가게트러 →플이 뭔가(초콜릿 종류) → 트뤼포가 누구(전설적인 영화감독) → 장거리 연애 조언 → 파리 채용 → AA120(항공편) → 파리 교회 → 아기 침대 조립법.
파리에 유학을 간 뉴욕 사람이, 한 여자와 사랑에 빠져서 미국으로 돌아와서도 장거리 연애를 이어가다가 결국 파리에서 취업을 하고, 파리 성당에서 결혼을 해 아기까지 낳은 스토리를 상상할 수 있다.
가장 위대한 스토리는, 보는 이가 상상하게 만들고, 직접 상상함으로써 이야기를 완성하게 하는 것이지 않을까. 게다가 그것이 한 사람의 생애주기를 건드린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