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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윤 Dec 14. 2022

상상하는 순간부터 여행이니까

마음으론 벌써 출발하는 겨울 여행

겨울이면 어디론가 길게 떠나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입니다.


중간 브레이크 타임을 빼고 이른 아침부터 자정이 넘은 시간까지 7일 중 6일 내내 점심 저녁 서비스 쳐내는 일은 생각처럼 쉽지 않습니다. 더구나 10월부터 12월 초까지는 트러플 성수기라 레스토랑은 언제나 만원이지요. 그러니 재충전을 위해 랑게 지역의 레스토랑은 짧으면 2주에서 길면 3달까지 휴식과 재충전의 기간을 가집니다.


한 달 통으로 매 겨울 휴가가 주어진다면 무얼 하시겠습니까?


그렇지요. 제 생각도 같습니다. 여. 행.


2017년 겨울엔 베를린, 아말피, 사르데냐 섬으로 한 달 내내 여행을 다녔군요. 베를린에선 이집트의 전설적인 미의 상징 네페르티티의 흉상과 유대인 기념관을, 아말피에선 파도 소리를 들으며 친구들과 포옹을, 사르데냐 섬에선 세찬 겨울 모래바람에 따귀를 맞고 왔지요.

2018년 겨울엔 북 이탈리아부터 시칠리아까지 북에서 남으로의 이탈리아 횡단 여행을 했습니다. 역시 겨울은 온천인지라 천연 온천으로 유명한 사투르니아(Saturnia)와 비떼르보(Viterbo)에서 고단한 여행길의 몸을 녹였죠.  

2019년 겨울엔 한국에서 가족과 해후를 하고 제주도에서 팝업 레스토랑 행사를 가진 후, 짧게 알토 아디제(Alto-Adige) 지역 여행을 했습니다. 알토 아디제는 그야말로 눈, 눈, 그리고 눈이 새하얀 곳이더군요. 눈밭을 아주 하염없이 하염없이 잘 걷고 왔습니다.

그리고는 곧 코로나 팬더믹 사태가 시작되었죠. 그래서 2020년 겨울 여행은 쉬었습니다. 친구 부모님의 초대를 받아 산속 시골 마을에서 따스한 크리스마스를 보냈지요.

다시 겨울 여행을 간 건 작년이군요. 작년인 2021년 겨울엔 다시 북서부 피에몬테에서 출발해 사라져 가는 작은 마을 '치비따 디 바뇨레죠 (Civita di Bagnoregio)'를 보고 뜨근한 온천이 그리워 비떼르보(Viterbo)에서 한겨울 찬비를 맞으며 노천 온전을 하고는 다시 아말피 친구네를 다녀왔습니다.


올 해는 어디로 가 볼까요? 제일 먼저 물망에 오른 건 '잔지바르'였어요. 새하얀 모래 백사장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에메랄드빛 바닷물이 일렁일렁 손짓하는 곳. 마치 낙원 같더군요. 하지만, 흠..... 하지만 역시...

(너무 늦은 여행 계획) + (이탈리아 인들의 초성수기 크리스마스&새해 시즌) = 비행기  폭주!

잔지바르, 땡입니다.


그렇다면 다른 따뜻한 여행지는 어디가 있을까나? 겨울이 따스한 곳 하면...... 모로코! 그런데 토리노에서 워낙 모로코 인들에 대한 좋지 않은 모습을 많이 본 지라...... 모로코 사막 여행은 도무지 끌리질 않았어요. 마라케쉬 시장 구경도 '거기나 토리노 뽀르따 빨라쪼나?' 하는 심드렁한 생각이 들더군요. 그래서 모로코도 땡!


아! 그래! 이집트라면? 사막도 있고, 스핑크스에 고대 파라오의 무덤도 보고, 유명한 휴양지에서 바다 수영도 즐기리라 마음먹어 보았죠. 더구나 All inclusive 호텔을 선택하면 아침, 점심, 저녁 식사까지 모두 호텔 숙박료에 포함. 이런 꿀이 있나? 그런데 정보를 찾던 중 많은 한국 유튜브들이 호객꾼들의 집요한 강요에 진저리를 치는 모습을 보고 정이 뚝 떨어지더군요. 토리노에서도 많은 외국인 걸인들의 끈질긴 구걸에 노천 카페에 앉기가 겁이 날 정도인데 여행을 가서도 그런 머리 아픈 일이 이어진다면?

아.... 안녕..... 이집트도 땡이다!


어디 평화로운 여행지! 따뜻한 여행지 없나요? 생각하던 차! 아하~ 남부 스페인이 어떨까 싶었습니다. 말라가! 물가도 저렴저렴, 맛나고 착한 가격의 타파스 집이 줄을 서고, 말이 잘 안 통하니 어느 정도 외쿡 느낌도 나면서 피에몬테보다 따스한 곳. 평화로운 바닷가도 있고, 볼거리가 풍성한 작은 소도시들도 있고. 말라가 공항에 도착해 렌트를 하면 원하는 곳에서 차를 세우고 계획 없는 자유 여행이 가능하리라!

그러다 문득 말라가 전에 파리를 넣어볼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토리노에서 기차를 타면 파리까지 여섯 시간. 그러니 이탈리아 북서부에서는 프랑스 파리가 이탈리아 남부 아말피보다 가까운 셈입니다. 도시는 그닥 좋아하지 않는 편이라 파리 며칠에 몽생미셸을 이틀 정도 끼워 넣고 말라가로 가서 내 맘대로 여행하기! 뭔가 끌립니다.


그럼...... 휘리릭! 일단 견적 빼러 가 보겠습니다.


어허.... 그런데 이놈의 마음이란 녀석은 견적 빼기도 전엔 이미 혼자 여행길에 올랐군요. 뭐, 그럼 어떻습니까? 꼭 떠나야 여행입니까? 상상하는 순간부터 여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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