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가 뭐예요?
" 'Signora Gemma 젬마 여사님'이라고 저장할게요."
"난, 그 여사님은 빼고 그냥 젬마라고 저장해 주면 좋겠는데?"
이렇게 이탈리아 북서부 피에몬테 지역 생파스타의 전설, 75세 여사님의 전화번호가 앞뒤 다 떼고 그냥 심플하게 두 글자 '젬마'로 제 휴대폰에 저장되었습니다.
벌써 7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군요.
2017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그린쟈네 카불 성에서 요리사로 일할 무렵이었습니다. 3월 중순 경 미슐랭 레스토랑과 지역의 뿌리 깊은 오스테리아가 연합해 식사를 준비하는 큰 행사가 있었어요. 생파스타의 살아있는 전설 젬마를 그때 처음 만났습니다. 그 당시에도 새하얀 머리칼과 인자한 미소, 생파스타로 단련된 늠름한 팔 근육을 가지고 계셨어요.
만났다는 말보다는 거의 영접을 했다고나 할까요? 생파스타 반죽을 여인의 몸으로 기계가 아니라 밀대로 얇게 밀어내는 것도 대단한데, 길고 긴 파스타를 둘둘 말아 커다란 칼로 쓱쓱 얇게 잘라 따야린(Tajarin)을 만들기로 유명하신 분이지요. 이탈리아는 물론 프랑스 셰프들도 적어도 한 번은 젬마 할머니의 자자한 소문을 듣고 오스테리아에 들러 레슨을 받기로 유명합니다.
당시엔 너무나 대선배님이라 너무나 조심스럽기만 했는데, 7년 후, 식탁에 함께 앉은 젬마는 너무나 소탈하고 유쾌했어요. 심지어 옆에 앉은 65세 생일을 맞은 친구분보다 10년은 젊어 보이는 75세 클래스!
"난 안 아픈 곳이 없어."라고 말하면서도 은퇴 질문엔 "일단은 80까지! 그 이후엔 그때 봐서"라고 웃으며 대답하시는 여유까지.
75세가 되어서도 은퇴 생각은 전혀 없이 사랑하는 일을 씩씩하게 해 나가는 당당한 여자! 그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보았습니다.
"난 학교를 5년밖에 안 다녔어. 당시엔 의무 교육도 아니었고. 학교를 5년 다닌 후엔 울 엄마가 나를 재봉 기술 배우라고 보냈지 뭐야?"
"재봉이요? 천하의 파스타 여왕 젬마가 제봉이라니 의외네요."
"울 어머니가 그러셨지. 재봉 기술을 배워라. 그러면 때가 되어 시집가고 자식 낳고 잘 살다가 양말 한 짝이라도 사야 할 일이 생기면 남편한테 아쉬운 소리 할 필요 없이 네가 번 돈으로 사서 신을 수 있다."
"재봉 일에서 어쩌다 요리로 길을 바꾸신 거예요?"
"재봉 기술을 배우려니 천이 필요하지 않겠어? 좋은 천을 살 돈을 벌려고 레스토랑에서 일을 시작했어. 그런데 레스토랑 일이 그렇게 재미가 있는 거야."
"그럼 처음엔 주방이 아니라 홀에서 일을 배우기 시작하신 거예요?"
"응, 내가 뭐 아는 게 있었나? 홀에서 접시 나르는 일부터 시작했지. 그런데 너무나 신이 나서 힘든 줄도 모르고 일했어."
"그럼 식당은 언제 여신 거예요?"
"내가 38살 먹었을 때니까...... 벌써 37년 전 일인가? 식당도 아니었어. 정말 볼품없는 작은 지하실에 세를 얻어 나 혼자 시작했으니까. 지금 생각해도 천장이며 벽이며 아주 시설은 엉망인 곳이었지"
"어머나! 혼자서요? 힘들지 않으셨어요?"
"그럼! 힘들었지. 그런데 재미있었어. 힘들기만 했으면 지금껏 이 일을 하고 있을까?"
"하루에 몇 시간씩 일하셨어요?"
"새벽 세 시가 넘어서까지 불을 켜고 있었으니까. 하루에 네 시간 잤었나?"
"새벽 세 시요? 어머나! 지금도 그렇게 늦게까지 여는 식당은 이 근방에서는 전혀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첫째 아들 녀석이 디스코텍 갔다가 새벽에 친구랑 돌아오면 이 촌구석에 어디 가서 뭘 먹을 곳이 있나? 젊은 녀석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새벽 두세 시가 넘어서도 토스트니 파스타니 뭐든 해 달라고 성화를 부리니 해 줄 수밖에. 영업시간도 정해진 게 없었어."
"양말 한 짝 사려고 시작하셨다고 했지만, 엄청난 성공을 거두셨네요. 식사 예약 한 번 하는 정말 보통 일이 아니라고 소문이 자자해요.”
"성공은 무슨!" 웃으며 손사례를 치십니다.
“올해부터 아들 건의대로 6개월 예약제로 바꿨어요. 한꺼번에 예약이 차 버리니 손님들 모시기가 너무 불편해서 말이지.... 2년 전 예약도 받았더니 가끔 잊으시는 손님들도 있고 말이야. ”
그래서 지금은 6개월 주기로 예약을 받는 시골 오스테리아. 오스테리아 젬마.
"수요일 목요일 아침이 파스타 만드는 날이야. 목요일 아침 8시, 할 일 없으면 라비올리 만들러 와요."
젬마처럼 모두 머리카락이 하얀 할머니 부대가 다 함께 모여 하하 호호 웃으며 라비올리를 만드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젬마 할머니가 현역에서는 벌써 손을 떼고 오래된 고객들에게 인사만 하는 정도인 줄 짐작하고 있었어요. 7년 전에 처음 만났을 때도 팔을 올리는 동작이 되지 않아서 일하기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라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런데 웬걸, 은퇴는 여든이 넘으면 그때 가서 다시 생각해 보겠다는 철의 여인 좀 보세요.
저는 비교적 아주 늦은 나이에 이탈리아에서 요리학교를 다니면서 요리와 인연을 맺었어요. 30대 후반의 동양인 여자가 젊고 혈기 왕성한 이탈리아 남자 요리사들 사이에서 자리매김하는 일은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답니다. 벌벌 들끓는 키친에서 땀을 흘리며 이리저리 뛰면서도, 문득문득 어쩌다 이렇게 늦게 시작했을까, 과연 이 일을 몇 년이나 더 할 수 있을까에 대한 걱정이 앞서 안색이 어두워지기도 했지요.
그런데, 이 젬마 할머니 좀 보세요! 80은 되어야 은퇴의 'ㅇ'자를 생각해 보시겠다고 하시네요.
머리로 미리 계산하고 앞일을 걱정하는 일은 전혀 필요가 없다는 걸 젬마에게서 배웠습니다.
이탈리아 말로 '걱정하다'라는 동사는 'preoccupare'라고 합니다. 접사와 어근으로 풀어보면 'pre- 미리' 'occupare 자리를 차지하다'가 되지요. 아하! 아직 오지 않은 없는 것으로 미리 자리를 차지하게 하고, 그 없는 것의 자리차지로 불안하고 불편해지는 것이 '걱정'이란 녀석이었군요.
너무 멀리만 보느라 생긴 어두운 공간에 걱정이란 놈이 쏙 들어와 앉기 전에, 오늘 하루, 시원하게 살아보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