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봄, 이탈리아 초저녁의 포도밭 구릉으로 구경 오세요
2023년도 어느덧 3월의 마지막 날입니다. 마음이 어지러운 날은 아무 생각 없이 꽃에 물을 주고, 시든 꽃을 잘라내고, 엉덩이를 땅에 깔고 앉아 잡초를 뽑습니다. 어릴 때부터 머릿속이 복잡할 땐 잡초를 뽑거나 방청소 같은 단순 노동에서 기쁨을 찾곤 했어요.
모자도 쓰지 않고 허리가 아프도록 잡초를 뽑았네요. 오전에는 구름이 끼고 날이 흐리더니, 어느덧 햇살이 '따갑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이러다 금방 여름이 되겠구나 싶었지요. 하지만 이렇게 따스하다가도 조금만 시간이 지나 늦은 오후가 되면 기온이 뚝 떨어지는 게 봄 날씨지요. 어제도 꾸물대다 놓친 산책을 나가자고 스스로를 재촉했습니다.
며칠 전 친구와의 산책은 바람이 그렇게 불어대도 흥이 절로 나더니, 혼자 나가는 산책은 어쩐지 발걸음이 쉬이 떨어지질 않네요.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이지만 등산화를 고쳐 매고, 씩씩하게 포도밭길로 접어들었어요.
나무며 풀들이 하루가 다르게 달라지는 요즘, 포도나무에 싹들은 안전하게 잘 났을까요?
포도나무에 싹들이 '안전하게 잘 났다'니..... 이건 또 무슨 말이냐구요?
요즘 이곳 포도나무를 키워내는 농부들은 초비상이랍니다. 잡초들도 여기저기 쑥쑥 올라오니 잡초도 잘라줘야 하고, 겨우내 굳었던 땅도 부드럽게 갈아엎어주지요. 그래서 한산했던 포도밭에는 아침부터 분주한 일꾼들을 자주 볼 수 있어요.
그런데, 지금처럼 포도나무들이 싹을 내는 시기는 농부들이 밤에도 바빠진답니다. 밤에 포도밭에서 할 일이 뭐가 있다구요? 그러게 말입니다. 한 손에는 렌턴을, 한 손에는 집게를 들고 포도밭 이곳저곳을 분주히 누비지요.
지금 분주히 움직이지 않으면 1년 농사를 망치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 문제 때문이지요.
네, 싹이 올라와야 할 자리가 텅 비어 있지요? 바로 꼬물꼬물 애벌레들 때문입니다. 잎이 펼쳐지면 오히려 문제가 없는데, 잎이 펼쳐지기 전 부드러운 솜털에 둘러싸인 잎 봉오리를 송두리째 파먹어 버리면 그 해 농사는 망치는 거래요. 그 자리에 다시는 잎이 나지 않거든요.
이 지역에서 주로 사용하는 농사법, '구욧 Guyot' 방식에서는 포도 가지 하나만을 길게 남겨두고 다른 가지는 짧게 잘라 버리지요. 길게 남겨둔 하나의 가지는 'ㄱ'자로 가지를 구부려 키우게 되는데, 그때 자라 나오는 싹들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길게 자라 올라가게 된답니다. 그런데 단 하나 남겨둔 가지의 싹들을 모조리 도둑맞아 버린다면 정말 큰일이겠지요?
안타깝게도 싹을 모조리 파 먹힌 포도나무가 종종 눈에 띄었답니다.
농사도, 인생도 봄 설계가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중요한 기회나 싹이 어이없이 갉아먹혀 버리는 일이 없도록 열심히 보초를 서야겠어요.
여러 지인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편집을 못 한다, 얼굴을 담기 부담스럽다는 이유로 전혀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유튜브 동영상을 처음으로 올려 보았습니다. 무편집, 무보정, 무자막에 포커스 아웃이 되어 흐릿한 화면도 있지만 멀리서 작은 이야기를 자주 들려드릴게요.
이탈리아에서 포도주용으로 재배하는 포도나무의 포도싹이 먹힌 (ㅜㅡㅜ) 모습, 신기하게 'ㄱ'자 모양으로 포도를 가지치기하고 구부려 키우는 모습, 구불구불 포도밭 언덕이 펼쳐진 모습을 저의 목소리와 함께 담았습니다. 막튜브 막영상이라 초대하기 죄송하지만, 놀러들 오시어요 ^-^
채널명: 이지이탈리아
(막 시작한 막채널이라 채널명은 변경 가능성이 큽니다.)
<이탈리아 포도 농사 안타까운 폭망 현장>
https://www.youtube.com/watch?v=e_GCd-Pt-EU&t=259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