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지윤 Oct 01. 2024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에서 서울 테마 향수를?

이젠 K - 향수인가? 한류가 향기를 타고 피렌체까지

“산타 마리아 노벨라 향수 가게에 갈래?(Andiamo alla profumeria di Santa Maria Novella?)” 피렌체 여행에 동행한 친구의 제안이다. 피렌체로 출발하는 가차 안에서부터 벌써 세 번째로 하는 노래니 아니 갈 수가.


“설마 이게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 줄은 아니겠지?”

< Officina Profumo Farmaceutica Santa Maria Novella - Dal 1221> Via della Scala 16, Firenze  사진: 이지윤

이제 얼마나 더 유명해졌는지, 예전엔 없던 문지기 선생님까지 등장했다. 한 번에 샵 안에 들어가는 인원을 제한하는 모양이다. 이탈리아 곳곳이 오버 투어리즘 몸살을 앓고 있긴 하다. 역시 이곳도 피할 순 없구나. 해를 더해 전 세계로 뻗어나가는 피렌체 작은 향수점의 유명세가 눈으로 보였다.

산차 마리아 노벨라 향수-제약 공방 입구. 사진: 이지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디어 가장 바깥 문을 넘어  발을 들이밀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의 기다란 입구. 어디서 향기가 코를 유혹하나 더니, 천장에는 온통 건조된 생화들이 폭포수가 쏟아질  거꾸로 매달려 있다. 마른 꽃들이 만발하니  은은한 향기에 나도 모르게 깊이 숨을 들이 쉬었다.


약국이야 향수 가게야? 한국에선 한때 ‘고현정 크림’으로 불리던 장미수 보습 크림 때문에 입소문을 탔던 피렌체의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 어쩌면 안 들어본 한국인이 더 적을지도 모르겠다.

1221년부터 산타 마리아 노벨라 수녀원 정원에서 채취한 천연 재료로 약이며 크림 등을 만들어 팔던 약국이라지만, 이젠 약국이라기 보단 고급스러운 향수 가게에 가깝다. 가게 안에서 약이라고 이름 붙일 만한 상품은 도무지 하나도 찾아볼 수 없었으니까. 그들 스스로도 이름을 farmacia (약국)이 아니라 <Officina profumo-farmaceutica>(향수- 제약 공방)으로 바꾸어 명명하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들이 긴 줄을 서서 너두나도 앞 다투어 지갑을 활짝 열어대는 고급 향수 가게에서 스스로를 Profumeria 프로푸메아 (향수 가게)가 아니라 Officina 오피치나(공방 혹은 공장)으로 명명하다니 조금 당황스럽지만, 공방처럼 ‘장인 정신 기반의 자체 생산’의 의미를 강조한 듯했다.



여러 개의 방으로 나누어진 쇼룸을 거닐다 문득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에 관련된 인물인 듯싶은 초상화들이 눈을 사로잡았다. 우피치 미술관에서 르네상스 시대 여러 부호들의 초상화를 보고 나온 직후여서 더 그랬을까? 이 아름다운 향수 가게의 번창과 80년 넘는 그들의 역사가 몇 장의 초상화로 설명되는 듯했다.


산타 마리아 노벨라 향수-제약 공방 쇼룸 중 하나. 다양한 제품들과 벽면 상단을 장식한 초상화들. 사진: 이지윤


뭐니 뭐니 해도 산타 마리아 노벨라 약국을 대표하는 향은 장미향이다. 장미 외에도 석류, 쟈스민, 오렌지, 라벤더 등 다양한 향으로 비누, 샤워젤, 바디 크림, 실내 방향제, 향수 등이 진열되어 있다.


가볍게 이리저리 휙휙, 이제 볼 건 다 보지 않았냐고 생각하던 차, 몇 가지 향수를 더 시향하다 눈에 띈 한 이름.

“<Alba di Seoul>(서울의 일출, 서울의 해돋이)???”

산타 마리아 노벨라 공방에서 한국 서울 숲의 향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향수 <Alba di Seoul 알바 디 서울>. ‘서울의 일출’이란 뜻이다. 사진: 이지윤


<산타 마리아 노벨라>에서 한국을 테마로 향수를 만들었다니 덮어놓고 우선 반가웠다. (먼저 일본을 테마로 한 두 개의 향수를 보고 눈에 거슬려 더 그랬을지도.)


서울 외곽의 숲에서 영감을 얻어 만든 향수라고 했다. 침엽수림의 나무 향 베이스에 약간의 시트러스 향이 더해져 따스하면서도 가볍고 청량한 느낌이었다. 남성성과 여성성이 조화된 중성적인 느낌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이 머나먼 나라의 작은 향수 가게 안에 한국인 손님들이 이토록 가득하니, 어찌 일본에 헌정하는 향수만 만들고 한국 주제 향수는 만들지 않을 수 있었으랴?

세계적으로 잘 팔리고 있는 베스트셀러예요.” 유심히 향을 맡는 나를 보며 점원이 한 마디 보탰다. 한국에서 영감을 받아 만든 향수가 세계인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나날이 번창하는 곳에는 이유가 있구나. 한정적인 수녀원 정원 재료에서 벗어나 일본, 한국 등 자신의 브랜드 제품에 열광하는 찐팬들의 나라에 대한 관심, 끊임없는 신제품 개발에 시선을 끄는 이름까지.


십여 년도 더 전, 첫 이탈리아 여행. 한겨울, 매서운 추위와 어둠 속에서도 그 유명하다는 장미수 하나 사 보자며 기차 타기 직전 초치기로 경주마를 자처했던 기억이 난다.


피렌체 중앙역까지 빠른 걸음으로 6분 거리. 피렌체 여행 막바지에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급한 발걸음에도 한 번 들러 볼 만한 곳이다.


<Officina Profumo-Farmaceutica di Santa Maria Novella>

Via della Scala 16, Firenze, Italia

<산타 마리아 노벨라 향수-제약 공방>

이탈리아, 피렌체, 비아 델라 스칼라 16번지

월-일 09:30-20:00

전화 +39 055 216276


2024년 11월 29일 일요일, 이탈리아 피렌체

글, 사진: 이지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