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자리

by 일상버팀글


내가 일하는 공장은 자동차의 '차동장치'를 만드는데 필요한 부품을 생산하는 2차 밴더, 소위 말하는 '재하청' 공장이다. 차동장치란, 자동차의 원활한 코너링을 위해 바퀴의 양측 회전 속도를 조절하는 장치를 말한다. 예를 들면 자동차가 사거리에서 신호를 받고 좌회전을 하려고 대기 중이다. 신호가 바뀌자 운전자가 핸들을 왼쪽으로 돌리며 액셀을 밟으면 차선을 따라서 차가 왼쪽으로 돌기 시작한다. 이때 중심축이 되는 왼쪽 바퀴의 회전 반경에 맞춰 오른쪽 바퀴가 더 빠르게 회전해줘야 마치 컴퍼스로 원을 그리듯 자동차의 좌회전이 가능해진다. 이때 오른쪽 바퀴의 회전력을 높이는데 차동장치가 그 역할을 하게 된다.


차동장치(Diffrential gear)


자동차는 수많은 브랜드와 용도에 따라 여러 종류들이 있지만, 바퀴가 굴러 앞으로 나아가는 구조는 크게 다르지 않기에 대부분의 자동차에 이 차동장치가 쓰인다. 우리 공장에서 만들어 1차 밴더에 납품하는 제품은 차동장치의 기어부품들을 감싸는 일종의 케이스와, 이것들과 결합되어 회전하는 샤프트(축)가 대표적이다. 이것들은 회사와 차종에 따라 각기 다른 크기와 모양으로 만들어져 국내 업체들 뿐 아니라 일본, 중국, 폴란드, 멕시코 등 해외로도 납품이 된다.


공정은 다음과 같다. 케이스 제품을 예로 들면, 쇳물을 틀에 부어 최종 제품의 어느 정도 틀이 될만한 모양으로 만들어진 일종의 '쇳덩이'가 주물공장에서 제조되어 우리 공장으로 들어온다. 그러면 먼저 이것을 기계로 안팎을 깎으며 말끔하게 다듬어 제대로 된 제품의 형태로 만들어낸다. 후공정에서는 조립에 필요한 구멍들을 뚫거나 기어들을 품을 내부 쪽의 공간을 확보하는 작업을 거친다. 마지막으로 완성된 부품을 고속 회전시켜 무게가 지나치게 쏠려있는 제품들을 부분 가공하여 균형을 맞추면 끝.


그 뒤엔 포장 쪽으로 넘어가 외부 검사와 박스 포장을 거쳐 최종 출하된다. 그렇게 국내업체 제품은 트럭에 실려 1차 밴더 업체로 넘어가 조립되어 차동장치가 되고, 이는 다시 완성차 업체로 넘어간다. 해외 제품은 컨테이너에 실려 배를 타고 넘어가 역시 같은 공정을 거쳐 완성차의 부속이 된다. 국내차엔 현대 포터나 스타렉스, 쌍용차 트럭 등에, 외국차 중엔 볼보 XC60, 벤츠 AMG, 닷지의 픽업트럭, 테슬라의 전기차 등에 우리 공장에서 가공된 제품이 들어간다.


현재 내가 하는 일은 전체 가공 공정 중 제일 뒤에 위치한 균형 검사 부분. 검사 설비에 제품을 안착시키고 밴딩 한 다음 고속 회전을 시켜 제품의 무게 균형을 센서가 읽어 컴퓨터 모니터에 제품에서 덜어내야 할 무게와 그 지점을 표시해준다. 그것을 바탕으로 기계에다 집어넣고 드릴로 제품의 특정부위를 날린 후, 다시 검사하여 최종적으로 제품의 균형을 맞춰낸다.


이렇게 작은 자동차 부품 하나도 거대한 산업 구조 속에서 시계태엽처럼 맞물려 만들어진다. 그 옛날 미국의 '헨리 포드'가 개발했다는 '분업'이라는 체계를 통해서다. 굴지의 자동차 대기업들은 완성차를 만들기 위해 수많은 중견기업들에 주요 부품들을 수주하고, 중견기업인 1차 밴더는 그 주요 부품의 부속을 다시 수많은 작은 공장으로부터 공급받는다. 자본가의 머리에서 나온 대량생산 방법을 통해 자동차 산업을 비롯한 2차 산업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자본주의는 그 꽃을 활짝 피웠지만, 그 자양분이 된 노동자들의 노동은 비용의 절감과 기술의 발전이란 명목 아래 점점 더 가치를 상실해가고 있다. 납품단가 후려치기 등의 하청업체 쥐어짜기 같은 온갖 불공정은 물론 일하는 이들을 기계보다 못한 존재로 취급해 온 거대 자본들은 거침없이 배를 불려 왔고, 상대적으로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계약직이란 이름으로 점점 자리를 잃어가는 현실.


시스템의 저 끝 맨 가장자리, 어느 나라 어느 지역 어느 공장 하나가 어느 날 어느 이유로 문을 닫고 노동자들이 길거리에 내몰린대도 어느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다. 그래서인지 작은 공장에서의 노동은 늘 애처롭다. 위에서 길게도 나열했지만, 우리 공장에서 나와 동료들의 손을 거치는 공정이 자동차 한 대를 완성하는 데 있어 결코 그 비중이 적다고 할 수 없다. 하지만 그에 비해 우리의 불안한 위치가, 우리가 땀 흘려 일하는 노동의 가치가 너무나 볼품없게 느껴져 마음이 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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