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아버지에게 삶은 절실했다
"00이는 왜 이리 말랐노?"
명절이 되어 할아버지를 만나뵐 때면 내게 처음으로 닿는 인사말이다. 왠지 모르게 불편해지는 마음을 애써 감춘 채 갖가지 대답으로 할아버지를 이해시키려 노력해왔었다. "저 밥 잘 먹고 다녀요!", "선생님이 저 근육량 엄청 많대요.", "저 몸무게 그대로인걸요." 등. 매번 다른 대답을 드려보아도 어김없이 찾아오는 할아버지의 위 말씀은 간혹 나를 옥죄어올 때도 있었다. 서로 주고 받을 수 있는 좋은 말들 중에 왜 늘 내 마름만을 보고 언급하시는 걸까, 할아버지 눈에는 내 마름 밖에 안 보이시나 보다. 어릴 때는 그 말이 할아버지의 걱정이라기보다 나에 대한 지적이라고 받아들여진 것 같다.
할아버지는 어린 시절 때부터 기관지가 안 좋으셨다. 결국 정정하셔야 할 나이에 폐 하나를 들어내셨고, 할머니와 외국 생활을 하시던 중 집도 파산해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좋지 못한 몸으로 몸 쓰는 일을 병행하셔야 했다고 한다. 누구보다 건강한 몸이 절실했던 할아버지는 이후 건강 관리를 열심히 하셨다. 늘 가족들 사이에서 홀로 채식을 지향하셨고, 수영과 등산에 도전해 지금까지도 간간이 하고 계신다. 사실 할아버지의 팔과 다리는 나보다도 더 늘씬하고 가녀리시다. 꾸준함과 끈기를 가장한 절실함으로 건강을 챙겨오셨기에 오래 견디지 못 하실 거란 의사 선생님의 말에도 불구하고 명절 때마다 시골에서 서울로 상경하실 수 있으실 만큼의 체력을 갖고 계신다.
어린 마음에 지적이라고 받아들였던 그 말이 커가면서 어느 순간부터 다르게 들리기 시작했다. 말 한 구절에 그 사람의 인생, 가치관, 감정 등 살아온 세월 만큼 무거운 무게를 싣고 있단 걸 안 걸까. 그래도 아직 시야가 좁은 탓에 그 무게가 얼마나 클 지 가늠하지 못한다. 적어도 할아버지의 저 한 마디 말씀에 할아버지께서 살면서 겪으신 인생의 고달픔, 건강에 대한 고민, 우리 가족은 나와 같지 않았으면 하는 작은 바람과 걱정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이제는 인지하고 있다.
함축적인 말 사이로 그 사람이 내포한 의미를 오해 않고 다 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결국 내 마음의 그릇을 넓히는 수 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