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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17. 2023

아빠의 꿈

당신의 오랜 꿈은 무엇인가요?

말레이시아에서 취업한 후, 출국하기 전 합법적 백수(?)가 허용되는 시기에 가족들이랑 최대한 많은 시간을 보내려 했었다. 함께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그 소중했던 시간 속 어느 날, 아빠랑 둘이 저녁을 먹었던 날에 써놓았던 글을 이어 써 내려가 본다.


아빠랑 오랜만에 둘이 저녁을 먹으러 나갔다.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가도 바람이 시원하고 따뜻하게 느껴지는 날이었다.

-아빠는 유진이가 그렇게 항상 도전하는 게 대단하고 멋있어. 이제 엄마 아빠가 우리 딸들한테 더 이상 해줄 것도 없고 아빠가 할 수 있는 일은 항상 우리 딸들 응원해 주는 것뿐이지. 유진이도 유진이가 뭘 하고 싶은지 잘 고민해 보고 앞으로 유진이가 원하는 삶을 살어~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아빠와 되게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가치관이나 삶을 대하는 태도 같은 면에서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아빠는 나의 조금은 돌발적인 행동들을 언제나 이해해주고 지지해준다. 남들과 다르게 살아도 괜찮다고, 소위 사회적으로 말하는 성공적인 삶이 아닌 삶을 살아도 된다고, 너만 행복하면 되는 거라고 말해주는 아빠와 이야기를 할 때면 나는 항상 용기를 얻고 더 똑바로 서는 듯하다. 아빠도 마음속에 어떠한 낭만을 가지고 사는 걸까.

-아빠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뭐였어?

-음.. 아빠는 사실 아빠 이름으로 역사책을 하나 내고 싶었어. 근데 이미 너무 늦어버렸지.

워낙 책을 좋아하는 아빠이지만 이런 꿈을 갖고 있는지는 전혀 몰랐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집에 역사 관련 책들이 유독 많은 것 같기도 하다. 이미 늦어버렸다며 담담하게 말하는 아빠의 말을 듣는 순간 마음이 아팠다. 어쩐지 우리들을 키우느라 아빠의 꿈을 더 적극적으로 펼치지 못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괜스레 어딘가 찔리는 마음에 나는 오히려 더 당차게 말했다.

-그래? 신기하다. 그럼 지금이라도 내면 되지!! 뭐가 늦은 거야!!

-그런가? … 그래! 지금이라도 하면 되겠네? 아빠는 이 꿈을 잊고 살고 있었는데 유진이가 얘기하니까 진짜 그렇네. 아직 늦지 않았네?!

외부의 현실적인 것들에 휘둘리지 않고 온전히 내 마음이 다해서 생긴 은밀하고 소중한 꿈.

내가 아빠의 그 소중한 꿈을 다시 꺼내주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벅찼다. 아빠가 진심으로 용기를 가지고 시간적 여유가 될 때 해보고 싶었지만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다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빠가 내게 용기를 주는 것처럼 나도 그 과정에서 아빠에게 힘을 줘야겠다고 다짐했다. 아빠가 나를 아빠가 원하는 본인의 딸의 모습이 아닌 나의 고유하고 유일한 인생을 응원해주는 것처럼 나도 아빠가 아빠로서의 삶이 아닌 당신의 고유한 삶과 꿈을 찾을 수 있게 그리고 이룰 수 있게 도와주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아빠, 우리 나중에 같이 책방 하자! 책방 운영하면서 아빠는 역사 공부하면서 책도 쓰고 그럼 좋겠다. 그치?

아빠는 너무 좋은 생각이라며 나중에 아빠가 은퇴하면 같이 집 근처에 작은 책방을 만들자고 했다. 아빠와 내가 함께 그리는 근사한 꿈이 하나 더 생겼다. 우리의 마음속에 낭만이 가득 차오른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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