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플립> 내가 사랑하는 나무 한 그루
영화 <플립> 속 어린 소녀 줄리는 집 앞에 있는 한 나무를 정말 아낀다. 나무에 올라가 평화로운 마을을 지켜보기도 하고, 학교버스가 오는 걸 지켜보기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줄이는 인부들이 그 나무를 자르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나무에 올라가 이 나무를 자르지 말라고 울며 애원한다. 하지만 결국 나무는 잘려 나가고 줄리는 슬픔에 빠진다. 이 영화를 여러 번 봤지만 왜 줄리가 그렇게까지 나무를 아끼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 감정이 궁금하지도 않았다. 줄리는 그저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재작년 여름, 이제껏 지나쳐만 가던 커다란 나무를 만났다. 무더운 날 산책을 하다 나무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는데 순간 이 나무가 이다지도 소중하게 느껴졌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말이 그늘을 내게 내어주는 이 이름 없는 나무를 말하는 것 같았다. 엄청나게 큰 이 나무에서 뻗어 나온 수많은 가지들이 내게 내게 안락함을 안겨주었다.
나는 이 말 없는 나무가 좋았다. 내가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내 마음을 알고 위로해 주는 듯했다. 커다란 나무가 모든 것을 내어주고 나를 감싸 안아줬다. 몇백 년이 넘는 세월 동안 한자리를 지켜가며 지나가는 이들을 위로해 줬을 이 나무가 애틋하게 느껴졌다. 사랑에 빠지는 순간이었다. 나는 비로소 줄리가 왜 그 나무에 매달려 자르지 말라고 울부 짖었는지 알게 되었다.
나는 이 나무를 여전히 사랑한다. 나무와 만날 때면 잘 지냈냐고 인사를 하고 두 팔로 포옹을 한다. 물론 내 팔로 이 나무의 절반도 안아줄 수 없지만 말이다.
이 나무의 아름다움과 가치를 나 혼자만 아는 것 같아서 아쉬웠던 적이 있다. 이 나무가 유명해지고 모두에게 사랑을 받았으면 했다. 하지만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방영 이후에 많은 사람들이 그 나무를 보러 가는 것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다. 어쩌면 그 많은 인정과 관심이 독이 될 수도 있겠구나. 나무는 그저 한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인데,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자 하는 욕망은 지극히 인간의 관점이구나.
이제 나는 이 나무에게 아무런 욕심이 없다. 그저 내가 사랑하는 이 나무가 영원토록 안녕하길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