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2011)의 가족처럼
2011년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다. 평소 좋아하던 배우인 맷 데이먼과 스칼렛 요한슨이 출연했다는 점과 어느 가족이 갑작스레 동물원이 딸린 집을 인수하면서 겪게 된 일들을 그리고 있다는 점 정도만 기억이 난다. 그래도 인상적이었던 점은 가족의 ‘무모한 모험’이다. 어느 누가 쉽게 동물원을 살 수 있겠는가? 그래도 그런 무모한 도전은 가족이 함께여서 가능하지 않았을까?
약간 과장해보면 우리 가족은 동물원을 사진 못했지만, 오두막을 지었다. ‘오두막을 지었다는 게 뭐?’라고 묻는다면 할 말이 없지만, 도시에서 맞벌이로 살며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지극히 평범한 가족이 갑자기 오두막을 지었다면 호기심이 좀 생기지 않을까? 오두막을 짓는다는 게 사실 별 거 아닌 일이지만, 생각해보면 내 주위에 오두막을 갖고 있는 사람은 없다. 특히나 우리 가족처럼 도시에서 두 아이를 키우며 맞벌이로 하루하루 바쁘게 살아가는 가족들에게 오두막은 동화 속에나 나올 법한 것일 뿐이다. 그래서 우리 가족이 만든 오두막은 영화 속 ‘동물원’ 만큼이나 특별하다. 우리 가족은 어찌하다 오두막을 짓게 되었을까?
2년 전, 우리 부부가 신혼 때부터 10년간 살던 정든 아파트를 떠나 주택을 짓고 이사 오게 되었다. 원래 주택살이에 대한 로망이 강했던 나(남편)의 추진력과 결혼 전까지 줄곧 주택에서 살았던 탓에 알게 모르게 아파트 생활에 불편을 느껴온 아내의 관용 덕분이기도 했지만, 결정적으로 아파트의 고질병인 층간소음 문제가 컸다. 결국 요즘 말로 ‘영끌’하여 도심지 내 몇 남지 않은 택지 중 하나와 인연을 맺을 수 있었고, 우리 부부 또래의 사람 좋은 설계사와 시공사 사장님을 만나 작은 집을 지을 수 있었다. 아파트 천지인 대한민국 도시에서 땅을 사고 집을 짓는다는 건 아마도 동물원을 사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모험일 수 있다. 집을 지으면 10년이 늙는다는 말이 괜히 나왔겠는가? 쉬운 과정은 아니었지만, 돌아보면 집을 지었던 경험과 추억은 우리 가족의 안식처를 만드는 일이기 때문에 다른 어떤 일보다도 즐겁고도 보람 있었다.
만 2년 간의 주택살이는 크고 작은 삶의 변화를 이끌었다. 우선 아이들은 어느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밤낮으로 신나게 뛰어놀게 되었다. 아내와 나도 간접적인 생활소음과 이사 걱정에서 벗어나 보다 편안하게 쉴 수 있게 되었다. 주택에 살면서 작은 소망이 있다면 아이들이 자라서도 집에서 엄마, 아빠와 집에서 보내는 걸 좋아해 주었으면 좋겠다. 집이 주는 안식이 가족들을 가정으로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다.
하지만 아파트 공화국에서 주택에 사는 건 쉬운 일은 아니다. 집을 재테크의 수단으로 보는 가치의 문제는 어려운 문제이니 차치하더라도, 당장 주택에는 관리사무소가 따로 없는 만큼 모든 관리를 가족이 직접 해야 한다. 물론 집을 관리하면서 소소하게 이것저것 배우는 재미가 있다. 마당과 담장 등을 관리하는 건 전적으로 나의 일이기 때문에 나는 주택에 살면서 기본적으로 목공에 관심을 갖게 되었으며 몇 가지 공구를 사게 되었다. 게다가 평소 관심도 없고 적성에도 맞지 않는다 여겼던 식물들에게도 마당을 가꾸면서 자연스레 관심을 갖게 되었다. 아파트 살 때에는 우리 집에 살아남은 식물이 없을 만큼 부부 모두 식물에 관심이 없었고 식물을 가꿀 만큼 여유도 없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작은 마당에 심어 놓은 식물들은 우리가 특별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아도 잘 자라주었고, 철마다 예쁜 옷을 갈아입으며 우리 가족에게 자연만이 주는 위안을 일깨워주었다.
코로나와 관계없이 나는 2020년 1년간 휴직을 하게 되었다. 아이들이 더 크기 전에 집에서의 추억을 더 많이 만들어주고 싶었다. 공교롭게 휴직을 하자마자 코로나라는 쓰나미가 덮쳐왔고, 2020년 1년 간 나는 대한민국의 어느 아빠보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집에서 보내게 된다. 돌아보면 9개월 전인 3월 한 달 동안 마당 한편에 작은 오두막을 짓게 된 건, 아마도 아이들과 집에서 아주 많은 시간을 지내게 될 것 같은 본능적인 느낌 때문이었던 것 같다.
영화 ‘우리는 동물원을 샀다’에서 “왜 동물원을 샀죠?”라는 질문에 맷 데이먼은 답한다. “Why not?” 영화의 맥락을 떠나 나에겐 그 말이 ‘가족들과 함께라면 뭐가 문제겠어?’라는 말처럼 들린다.
태블릿으로 그린 오두막
직접 지은 오두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