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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 Mar 04. 2023

그때 그랬던 이유를 알 것 같아요


수녀님이 담임 선생님이었던,

조금은 특이했던 국민학교 시절.

(80년대이기에 초등학교가 아닌)

정신 연령이 또래 같지 않은

조금은 아픈 친구가 있었습니다.


수녀 선생님은 그 아이와 나를 짝꿍으로 앉히셨지요.

수업 시간에 교과서의 어느 페이지를 펴야할지,

어떤 준비물을 꺼내야할지 모르는 친구였지요.

매번 저의 손이 필요했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았어요.

저 자신을 그 친구의 꼬마 선생님이라고 여기며

역할 놀이처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를 불편하게 했던 건,

그 친구가 아니라

그 친구 엄마와의

짧은 만남이었어요.


부모 참관 수업날.

(저희 엄마는 일이 바빠서 못 오셨고요)

수녀 선생님은 친구 엄마에게 저를 인사시키셨어요.

평소 무서웠던 목소리의 수녀선생님이

굉장히 밝고 높은 톤으로 말씀하셨어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기억이 나요.

제가 그 친구를 많이 돕고 있고.

그런 저를 칭찬해주셨던 말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력이 거의 없다시피한

제가 이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젊고 세련된 친구 엄마의 옷과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저를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던,

차갑게 굳어있던 그녀의 얼굴이었어요.


저는 그 때 그 친구의 엄마 보다,

좀 더 많은 나이가 되었네요.

이제서야 그때 그 얼굴의 서늘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친구 엄마가 수녀 선생님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당신의 아들이 얼마나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였을 것 같아요.


세련되고 아름다웠던 친구 엄마에게

자녀의 부족한 부분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친구 엄마는 국민학교 3학년이었던 나를

바라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어요.

자신의 아들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그 사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산책을 하다

문득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어요.

(이제서야 오해가 풀렸네요.)



사랑하고, 소중한 것일수록

어그러진 부분은 보지 않으려

시선이 옆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어그러진 부분이 그릇의 바닥처럼,

중요한 부분이라면....


내가 바라는 이상과

내가 서 있는 현실의

넓은 틈 사이에서

자주 아찔해지는 마음에

힘을 뺀 말투로 툭 던져봅니다.


"조금 어그러지면 어때.

바닥에 금이 가면 또 어때.

고치면 되지.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되지."




#명동성당옆 #계성초등학교 #빨간벽돌의멋진학교

#부자자녀들만다니던 #어쩌다가 #학구열높은엄마덕분에

#추억그램 #초등학교시절 #그때는그랬지 #장애인친구

#인정의어려움 #엄마와자녀 #사랑의방법

#이상과현실 #현실을받아들이는것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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