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님이 담임 선생님이었던,
조금은 특이했던 국민학교 시절.
(80년대이기에 초등학교가 아닌)
정신 연령이 또래 같지 않은
조금은 아픈 친구가 있었습니다.
수녀 선생님은 그 아이와 나를 짝꿍으로 앉히셨지요.
수업 시간에 교과서의 어느 페이지를 펴야할지,
어떤 준비물을 꺼내야할지 모르는 친구였지요.
매번 저의 손이 필요했지만,
그리 힘들지는 않았어요.
저 자신을 그 친구의 꼬마 선생님이라고 여기며
역할 놀이처럼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저를 불편하게 했던 건,
그 친구가 아니라
그 친구 엄마와의
짧은 만남이었어요.
부모 참관 수업날.
(저희 엄마는 일이 바빠서 못 오셨고요)
수녀 선생님은 친구 엄마에게 저를 인사시키셨어요.
평소 무서웠던 목소리의 수녀선생님이
굉장히 밝고 높은 톤으로 말씀하셨어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기억이 나요.
제가 그 친구를 많이 돕고 있고.
그런 저를 칭찬해주셨던 말들.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력이 거의 없다시피한
제가 이 순간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이유는,
젊고 세련된 친구 엄마의 옷과
"안녕하세요" 인사하는 저를 한번도 쳐다보지 않았던,
차갑게 굳어있던 그녀의 얼굴이었어요.
저는 그 때 그 친구의 엄마 보다,
좀 더 많은 나이가 되었네요.
이제서야 그때 그 얼굴의 서늘함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친구 엄마가 수녀 선생님에게 듣고 싶었던 말은 아마도
당신의 아들이 얼마나 학교 생활을 잘 하고 있는지.였을 것 같아요.
세련되고 아름다웠던 친구 엄마에게
자녀의 부족한 부분은 받아들이기 힘들었을 것 같아요.
친구 엄마는 국민학교 3학년이었던 나를
바라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 아니었어요.
자신의 아들이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한 상태라는
그 사실을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산책을 하다
문득 그때 그 시절이 떠올랐어요.
(이제서야 오해가 풀렸네요.)
사랑하고, 소중한 것일수록
어그러진 부분은 보지 않으려
시선이 옆으로 돌아갑니다.
그런데 어그러진 부분이 그릇의 바닥처럼,
중요한 부분이라면....
내가 바라는 이상과
내가 서 있는 현실의
넓은 틈 사이에서
자주 아찔해지는 마음에
힘을 뺀 말투로 툭 던져봅니다.
"조금 어그러지면 어때.
바닥에 금이 가면 또 어때.
고치면 되지.
거기서부터 시작하면 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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