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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음음 Apr 04. 2023

소망이 있는 슬픔

사순절 묵상

왜 그녀는 슬픈 표정이었을까요?


질문으로 응시하게 된 그림 한 장.

한 장의 그림을

보고 또 보며 분석하는

도상해석학 수업 시간.


비잔틴 시대의 이콘.

신앙을 표현하는 정형화된

그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그  안에는

가늠할 수 없는 깊은 묵상의 시간이

담겨있더군요.


당시의 교회미술은,

단순한 이미지가 아닌

두툼한 신앙책과 같았습니다.


마리아가

아기 예수님과 다정하게 볼을 맞대고 있습니다.

다정함이 가득한 순간에,

왜 그녀는 슬픈 표정을 짓고 있는 걸까요?



코발트블루에 새겨진 금빛 장식으로도 가려지지 않는

마리아의 슬픔.

(지금은 변색되어서 코발트블루가 아닌

검은색 옷으로 보이네요)

그녀의 슬픈 표정에 대한 힌트는

성경 한 구절에 담겨 있었습니다.


"이 아이는 이스라엘의 많은 사람들을 넘어지게도 하고

일어서게도 할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의 비난을 받는 표적이 될 것입니다.

..... 당신의 마음을 칼로 쪼개듯이 아플 것입니다."

누가복음 2장 34-35 (쉬운성경)


성전에서 만난 시므온이 들려준 이야기.

천사의 방문부터 시므온과의 만남까지,

마리아는 알고 있었습니다.


아기 예수님의 미래와

마리아의 두 눈으로 보게 될

고통스러운 십자가.


아기 예수님이 감당해야 할 십자가.

그리고 피가 뚝뚝 떨어지는 십자가 아래서

이 모든 것을 지켜보게 될 마리아.

칼로 찢기는 듯한 고통.


<블라디미르의 성모>

그림 어디에도 십자가는

그려져 있지 않습니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마리아의 슬픔 가득한 표정만을

그려두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슬픔은

예수님이 지게 될 십자가를

상상하게 합니다.



요즘 같은 이미지 과잉의 시대가 아닌

그림 한 장이 귀했던 12세기의 동로마의

믿는 이들은 어떤 시선으로 이 그림을 보았을까요?


자신의 고달픈 인생에

함께 슬퍼해주는 자비의 마리아를

떠올린 이들도 있었겠죠.

아니면 저처럼 그림에 그려져 있지 않은

십자가를 떠올린 이들도 있고요.

(한 장의 그림은 보는 이의 인생 수만큼

많은 이야기를 만들어내고는 하니까요)


한 장의 그림을 오랫동안

바라보는 도상해석학을 공부하며,

깨닫습니다.


응시하는 마음과

묵상하는 마음이

닮아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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