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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셔블 밝은 달에 Jun 20. 2020

 '역사 도시 경주'를 느끼고 싶다면

뻔해 보이지만 뻔하지 않은 여행지, 발굴조사 현장  by 꽃작가

나의 살던 동네는, 궁궐이었다. 말 그대로 소풍 가서 보물찾기 하던 곳이 월성이었고, 친구들과 집 앞에서 술래잡기하던 곳은 황룡사였다. 분황사와 월지가 뭐하는 곳인지도 모른 채 그 위를 뛰어다니며 컸다. 어린 시절 내가 매일 뛰어놀던 그 터들은 지금 모두 발굴 조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신라왕경 핵심유적 복원정비사업’이라는 거창한 이름과 함께.      


2014년, 월성의 발굴조사 작업이 진행되기 직전 남편과 나는 매우 복잡한 심경으로 월성을 찾았다. 어린 시절부터 내 집 마당처럼 드나들었던 곳, 조용히 산책하기 좋았고, 이제는 내 아이들이 뛰어 놀기 좋았던 곳을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눈에 담고 추억으로 남기자는 뜻이었다. 발굴조사 작업이 시작되면 짧게는 수년 길게는 수 십 년 간 더는 그곳에 들어가 볼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 애잔했던 마음이 무색하게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모든 발굴 과정을 일반에 공개한 채로 작업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사진출처_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인스타그램


처음 월성 발굴 조사 개방 행사에 갔던 기억이 선명하다. 통일신라시대의 유물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는데 발굴지의 깊이는 생각만큼 깊지 않았다. 수 천 년 전의 시간을 확인하려면 적어도 2미터는 파내려 가야 하는 게 아닐까 싶었지만 어린 시절부터 밟고 뛰어다닌 자리에서 고작 몇 삽의 흙을 퍼냈을 뿐인데 통일신라시대의 흔적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시간’에 대해 생각했던 것 같다. 그 많은 역사가, 사람들의 삶이 묻히는데 몇 삽의 흙이 필요하지 않구나. 내가 이렇게 머리 싸매고, 때로는 고통스러워하며 보내는 시간들이 묻히는 데는 몇 줌의 흙이면 충분하겠구나. 시간 참 덧없구나, 사는 거 별거 아니구나, 약간의 위안 비슷한 감정을 느꼈던 것도 같다.      


동궁과 월지 개방 행사에 갔을 때는 너무 신기하고 재밌어서 아이들보다 더 흥분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공개된 것은 돌로 만들어진 수세식 화장실이었다. 지금의 변기 모양과 별반 다를 거 없는 타원형 구멍이 있는 돌에 일을 본 후 바로 물을 떠서 흘려보낼 수 있는 배수시설까지 완벽했다. 계단의 기단석과 배수로의 돌들이 방금 공장에서 떼 온 것 마냥 반듯한 모습으로 드러나 있었다.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남아있을까. 과거와 현재의 시간이 겹쳐지는 듯 한 그 신비로운 느낌을 잊을 수가 없다. 


사진출처_문화재청(변기형 석조물/동궁과 월지)


SF 작가인 ‘코니 윌리스’의 ‘옥스퍼드 시간 여행자’ 시리즈에는 역사학자들이 과거에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는 장소를 ‘강하 지점’이라고 명명했는데 경주의 발굴 조사 현장은 내게 그런 ‘강하 지점’과도 같았다. 그 시간의 흔적들을 엿보고, 역사를 추정해보고, 옛사람들의 삶을 그려볼 수 있는 곳. 나는 경주를 찾는 사람들에게 이 기가 막힌  ‘강하 지점’에 꼭 와보라고 추천하고 싶다.     


국립경주 문화재 연구소는 발굴 조사 현장은 학자들만의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시간을 함께 살아가고 있는 시민들과 공유해야 하는 또 하나의 역사적 현장이라는 신념으로 다양한 개방 행사와 상시 해설 등의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프로그램이 알차고 재미있어서 나는 되도록 빼놓지 않고 매년 아이들과 참여하고 있다. 경주의 발굴 조사 현장들 가운데 상시 개방 중인 두 곳을 우선 소개한다.           


<월성> 

월성 / ('2018 천년 궁성 월성을 담다' 사진 촬영대회 출품용으로 찍었다.) 

지금까지 월성에서는 화려한 동물 모양이 다리에 새겨진 다량의 벼루와 터번을 쓴 토우, 각종 동물의 뼈와 씨앗, 목간 등이 발굴되었는데 현장에 있는 ‘월성이랑’ 사무실에 신청하면 해설사들의 자세한 설명을 들을 수 있다. 모르고 보면 파헤쳐 놓은 벌판 돌무더기 사이에서 붓질하는 사람들만 보일 테지만 전문가의 해설을 들으면 그곳에 수십 채의 건물이, 사람들이 머물렀던 공간이 그려질 것이다.      


사진출처_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 인스타그램



월성에서는 1년에 두 번 공식 개방행사를 열고 있다. 5월에는 ‘월성 사진 촬영 대회’가 9월에는 야간 개방 행사인 ‘빛의 궁궐, 월성’이 진행된다. 다양한 이벤트와 발굴 현장 해설, 출토 유물 전시 등 볼거리가 많은 만큼 한 번쯤 꼭 참가해보길 추천한다. 사진 촬영대회 수상작들은 전시를 거쳐 도록으로 제작되고 있는데. 이 역시 시민들이 기록하는 ‘문화재 발굴사’의 한 페이지가 되고 있다.      


*‘월성이랑’ 운영 안내

-정기 해설 프로그램 : 매일 10:00, 11:00, 13:30, 15:00, 16:30 총 5회, 회당 30분 내외

-해설 신청 : 현장 신청(월성 발굴 현장 내 월성이랑 교육 사무실에서 접수) 

 사전 신청(단체 위주, 유선 054-777-5027 / e-mail ws_irang@naver.com)

-해설 운영은 시기, 날씨 등에 따라 유동적일 수 있으니 사전 문의 후 방문을 권합니다.      



<쪽샘 발굴관> 

쪽샘발굴관의 주변 풍경도 근사하다. 고분군 정비를 거쳐 산책하기 좋은 길이 이어져있다.


봄이면 관광객들로 붐비는 대릉원 돌담길 입구에는 하얀 돔으로 덮인 건물이 하나 있다. 44호 고분의 발굴 현장을 공개하고 있는 ‘쪽샘 발굴관’이다. 거대한 적석목곽분을 둘러싸고 2층으로 돔을 올려 1층에서 이뤄지고 있는 발굴 과정을 2층에서 직접 볼 수 있게 했다. 현재는 쌓여있던 돌무지가 거의 해체되고 내부 유물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무덤 주변으로 동물을 함께 묻었을 법한 큰 항아리들이 발굴되었고, 최근에는 신라시대 행렬도를 담은 토기가 발굴되기도 했다.      


좌>2018년 촬영 모습 / 우> 2019년 촬영모습 :   발굴 진행과 함께 달라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쪽샘 발굴관에서는 현장 해설사의 설명을 들을 수 있고, 어린이들을 위한 금관 만들기, 신라복식 의상 체험이 준비되어 있다. 내가 특히 애정 하는 장소는 대릉원 방향으로 나 있는 외부 테라스인데 벚꽃 시즌 그곳에 가면 여유롭게 대릉원 벚꽃길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벚꽃 명당. 대릉원을 향해 나있는 테라스. 나는 이 공간이 너무 좋다. 솔직히 안 알려주고 싶었다. 


*‘쪽샘발굴관’ 운영 안내 

-찾아가기 : 경주시 태종로 788

-관람시간 : 매일 09:30-11:30, 13:00–17:30(문화해설 가능) 

-관람료 : 무료 

-문의 : 054 748 2671     


*발굴 현장을 흥미롭게 둘러봤다면 천존고 특별전을 찾아봐도 좋겠다. 

 쪽샘과 탑동의 발굴 성과를 볼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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