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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리스타 KM Jun 08. 2023

딸아, 통장은 그저 월급이 스쳐 지나가는 곳이었더냐

브런치에서 소중한 인연을 맺어 안부를 묻고 지내는 작가님이 계시다. 며칠 전 그분의 글을 읽었는데 읽은 후 나는 나의 딸 콩이의 최근 생활이 생각이 나면서 그분의 자녀들과 오버랩이 되었다. 콩이보다 1살 위인 그분의 딸은 대학생 신분으로 인턴을 해서 엄마와 아빠께 용돈도 드리고 선물도 드렸다는 감동적인 가슴 뿌듯한 내용이었다.

나의 딸 콩이도 대학교 입학을 앞두고 6개월의 기간이 있어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콩이는 책을 좋아해서 JC(싱가포르 고등학교) 때부터 얘기했었다.

"엄마 나는 키노쿠니아(서점)에서 아르바이트해보고 싶어."

"좋지, 네가 좋아하는 곳에서 아르바이트도 하면서 용돈도 벌면."


싱가포르는 책을 구입할 수 있는 오프라인 경로가 크게 둘로 나뉜다.
Popular라는 곳과 Kinokunia
파퓰러는 일반적으로 학교 교육 과정을 위한 책과 문제집, 문구류와 그 외의 교육기계들도 판매한다. 파퓰러는 많은 쇼핑몰에 입점해 있다.
키노쿠니아는 대중적인 책과 베스트셀러, 잡지, 문구류, 각 나라의 다양한 책 등을 판매한다. Orchard 와 Bugis 두 곳뿐이다.


콩이는 대학시험을 끝내고 작년 12월에 키노쿠니아 아르바이트에 서류를 냈고, 그 후 연락이 와서 면접을 보러 간다고 하더니 그다음 주인 월요일부터 근무한다고 했다. 그곳에 일하려면 검정 신발이 있어야 하고, 정장 바지 같은 것이 필요하다고 해서 아르바이트를 위해 지출을 먼저 시작했다.

(그래, 돈을 벌기 위해서는 일단 어느 정도는 지출이 필요하지)

콩이는 아르바이트가 너무 즐겁다고 신이 나서 일을 했다. 나의 관점에서는 그저 일인뿐인데 뭐가 즐겁냐고 묻자

"엄마, 사람들이 무슨 종류의 책을 사가는지 관찰하는 것이 재밌어. 어느 나라 사람들이 많이 오는지, 나이대별로 사가는 종류의 책도 다르고."

콩이의 대답이 나에게는 예상치 못한 답변이었지만 그녀의 그런 관점이 신선했다.

그런데 어느 날은 오면 진상 손님 때문에 힘들었다고 넋두리를 하기도 했다.

"엄마, 일단 책을 사서 카운터에 던지듯이 놓는 손님들이 있어. 그리고 동전으로 주겠다며 테이블에 쏟아놓듯 동전을 주는 손님도 있고. 어떤 손님은 책들을 여러 권 가져와서 계산이 다 끝날 때쯤 책 1권 바꾸겠다고 해서 다시 총액을 계산하면 다른 책을 1권 더 가져오니 기다리라 하고, 또 기다리니 그 계산한 책 중 한 권을 빼달라고 하더라고. 뒷 손님이 기다리는데…”

(그렇지, 얘야. 돈 버는 게 쉽지 않단다)

콩이의 소중한 아르바이트 월급은 그렇게 모아지는 것이었다.




“콩이야, 월급날이 언제야?”

“엄마, 왜 자꾸 물어. “

“우리 딸 첫 월급 기대돼서.”


나는 내가 월급을 처음 받았던 때가 기억이 났다. 1999년 3월 2일부터 출근을 했는데 17일이 월급날이었다. 한 달이 채 되지 않았었지만 월급이 나왔고, 대학생활 내내 내세울만한 아르바이트를 경험해보지 않은 나에게 첫 월급은 아주 특별한 날로 지금까지도 기억된다.

하얀 봉투 안에 들어있는 만 원짜리 현금 뭉치.

아빠 엄마가 퇴근을 하시면서 나의 퇴근 시간과 비슷해서 차로 나를 픽업하러 오셨었다. 나는 하얀 봉투를 들고 가슴이 콩딱 거리며 기다리다가 멀리서 오는 아빠의 차를 발견하고 함박웃음을 지으며 얼른 차 뒷문을 열고 타서 뒷자리에 앉아 차가 학교를 벗어나서 도로에 진입하기 전에 그 하얀 봉투를 조수석에 앉아 있는 엄마를 향해 건넸다.

“엄마, 나 월급 탔잖아. 엄마 이거 다 가져. 그런데 나 용돈은 줘야 돼.”

뒷좌석에 앉아 있었지만 엄마 아빠의 뭇해하시는 표정이 엄마 아빠의 머리 뒤로도 느껴졌었던 그때의 기억이 스쳐갔다.

  

드디어 콩이는 첫 월급을 받았고 목돈을 손에 쥐어 본 콩이는 그 맛을 아는 듯 그 티가 팍팍 났다.

“엄마 아빠 앉아봐. 내가 줄게 있거든.”

이미 다 알고 있었지만 태연한 척 기다려줬다. 마치 이벤트를 처음 해보는 사람이 상대방이 이벤트 해줄 것임을 알아차리듯 나는 콩이의 표정에서 일찌감치 나에게 무언가를 줄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엄마 아빠 첫 월급 타면 주고 싶었어.”

빨간 봉투를 나에게 내밀었다. 그 순간은 감동적이었다.

(그래, 엄마도 기다리고 있었어. 이 순간)

나의 입꼬리가 머리로 향해 올라가고 있었다. 여러 감정이 들었다.

(돈 버느라 수고했어. 이제 우리 딸 다 컸네. 이제껏 너를 키우느라 엄마도 수고 많았단다)  

그런데 그 시간도 잠시

“그런데 엄마 나머지 돈은 내가 써야 할 거 같아.”

(뭐라고? )

콩이는 나에게 이십만 원 정도를 주고 대부분의 돈을 본인이 쓰겠다고 했다.

“그래, 알았어. 네가 수고해서 번 돈이니까 계획 있게 잘 써.”

콩이가 그렇게 하겠다고 나에게 통보를 했고, 그녀의 돈이니까 나는 알았다고 했다.


콩이는 그때부터 돈 쓰는 재미가 들린 고삐 풀린 망아지 같았다.

“엄마, 나를 위한 선물로 해외 구매 대행으로 목걸이 하나 샀어.”

“어, 그래? 알았어. “

“엄마, 그동안 내가 읽고 싶었던 책들이라 샀어. “

“아니, 키노쿠니아에서 점심시간에 읽으면 되는데 책을 샀어?”

“엄마, 이 책들은 소장하고 싶은 책이야.”

“엄마 이 바지 어때? 괜찮아?”

“엄마 향수는 Jo Malone이 좋지?”

콩이에 방에 들어가면 새로 산 물건들이 하나둘씩 늘어났고 나는 그녀의 방에 들어가면 무의식적으로 새 물건들이 있나 스캔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콩이는 친구들을 위한 선물이라며 쓰레기봉투 만한 봉지 안에 한국 브랜드 허니버터 아몬드를 가득 사놓았다.


나는 콩이의 경주마 같은 씀씀이에 브레이크를 걸어줄 타이밍이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석 달째 월급이 나올 즈음 콩이를 앉혀 놓고 정신교육에 들어갔다.

버는 돈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저축은 수입의 얼마 정도를 하면 좋은지를 이야기해 주면서 돈을 모으고 있는 좋은 사례의 또래 친구들 얘기를 한참 해주고 돈을 절약해야 하는 필요성이 절정을 향해 가고 있을 때 콩이가 말했다.

“엄마, 쓰지 않을 돈을 통장에 왜 놔두는 거야? 통장에만 놔두려면 차라리 엄마 가져.”

콩이는 나의 이야기를 듣고 앞으로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은 하는 듯했지만 당장에 지금은 이해가 잘 안 가고 그렇게 할 필요를 못 느끼는 듯했다.

우리는 서로를 이해가 잘 안 돼서 같은 표정으로 바라봤다. 나는 지금 갓 스무 살인 아이한테 그 의미가 잘 와닿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말을 하고 나서 한동안은 소비가 줄어드는 듯 보였다. 그래도 기특하다고 나를 위로하는 한 부분은 월급을 받을 때마다 엄마 아빠 감사하다고 월급에서 일부를 떼어 빨간 봉투에 넣어서 우리에게 주었다.

그런데 웬일!

물건을 사들이는 지출은 줄었는데 이번에는 다른 방향의 지출이 늘었다. 마치 허리를 조이니 허릿살이 윗 배가 되어 튀어나오는 꼴이랄까.

(오 마이갓이었다)

콩이의 이번 명목은 사회적 관계와 소통을 위한 지출이었다.

동생인 쏭이가 시험 끝날 때를 기다렸다가 쏭이와 놀이동산 가고, 워터파크 가고, 친구들을 만나 먹고 즐기는 것, 학교 선후배 만나 이야기하기, 기타 등등의 소비 형태로 바뀌었다. 물건을 사는 것보다 돈이 더 지출이 되는 것이었다.

그동안 돈이 충분치 않아 지출을 못했지 여유가 되면 지출을 할 영역들은 널려 있었다.




“콩이야, 너 돈 많이 썼을 거 같은데 용돈기입장 좀 가져와볼래?”

나는 그녀의 씀씀이에 또다시 브레이크를 걸었다. 중학교 때부터 용돈 기입장을 써왔지만 학창 시절 용돈이 뻔할 때는 간식값 기재하는 정도였었다.

그런데 지금의 용돈기입장을 보니 수입란에 검은색 펜으로 한 줄 달랑 쓰여 있고, 그 밑에는 줄마다 지출들이 쫙~ 줄지어 있었다. 본인도 생각해도 너무하다 싶었는지 어느 항목들은 흐리게 글씨로 써 놓았고, 어느 항목은 옆에 물음표가 있기도 했다. 지출 항목의 글자들이 살아서 움직이면서 말을 하는 것 같았다.

“콩이야, 이렇게 다 쓰면 안 되는 거 아냐?”

나는 한숨이 절로 나왔다.

“엄마, 나 다음 달부터 저축하려고 생각하고 있었어.”

“어, 그래? 알았어.”

(정녕 그러하니)

나는 반신반의했지만 본인이 번 돈이니 그녀의 계획대로 믿었다. 돈도 써 본 사람이 잘 쓰고 아낄 필요성도 느낀다는 말도 생각하면서 마음을 다스렸다.


어제 콩이와 외출을 하는데 그녀의 가방에 꽂힌 새로운 양산이 나의 눈에 또 들어왔다.

“콩이야, 너 양산 샀어? 엄마가 산다고 했잖아. 그래서 여러 개 사서 두었는데. “

“엄마, 엄마가 주문하기 전이었을 때 산 거야. 내가 내 양산 잃어버려서. “

“어, 그래…“

(정말 돈 쓰임이 가지가지구나)




나는 오래전 대배우 김혜자 님이 한 말이 생각이 났다.

“있잖아, 충고해 주고 그런 거 있잖아 다 소용없어. 지가 다 겪고 나와야지. ‘아, 그때 내가 그러지 않았어야 됐었어’ 그러지. 겪어야 될 일은 다 겪고 나서 아는 것 같아.”

지나고 나면 당연할 것 같은 쉬운 일도 그때는 잘 모르나 보다.

겪고 나서 아는 것이 어리석은 것 같지만 나도 콩이 같은 그 시절에는 그러한 것들이 많았겠지 생각도 해본다.


6개월이 지난 지금

콩이의 통장엔 고작 몇 십만 원 정도 밖에는 없다.

(딸아, 너의 통장은 그저 월급이 스쳐가는 곳이었더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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